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인사와 자학사관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11월4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니, 회담 내용보다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에게 보낸 선물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위성사진 1장을 선물했다. 가로세로 87cm 크기의 위성사진은 프랑스 지구 관측위성이 우주에서 찍은 합천 해인사 전경이다. 청와대는 프랑스가 위성사진을 한국에 선물한 것에 대해 “우주과학이 양국 간 선도적 협력분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양국 간 우주과학 협력의미로 왜 해인사 전경사진을 선물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프랑스가 해인사 전경을 위성사진에 담아 청와대에 선물한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프랑스가 한국에 처음으로 파견했던 샹바르 대사와 해인사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프랑스 대사도 사랑한 해인사
인근에 대형축사 허가로 몸살
정부의 국정교과서 회귀로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 훼손

샹바르 대사는 1959년 한국에 처음으로 부임한 프랑스 대사다. 그는 6.25한국전쟁의 참화를 극복하지 못했던 가난한 이 나라에서 꼬박 10년을 보냈다. 고고학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과 한국불교를 너무나 좋아했다. 특히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를 너무 사랑해 틈틈이 합천으로 내려가 해인사로 향하는 소리(蘇利)길을 홀로 걸었다. 그는 1969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죽을 때까지 해인사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유골을 해인사 소리길에 뿌려달라고 당부했다. 1982년 그가 죽자 그의 유해는 한국으로 보내져 유언처럼 해인사 소리길에 뿌려졌다. 이후 그는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양국 우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프랑스가 해인사 전경을 찍어 한국에 선물한 것은 한국과 프랑스의 우호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남다른 배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샹바르 대사가 사랑했던 해인사는 대형축사 문제로 백척간두에 서있다. 합천군이 최근 해인사 인근에 소나 돼지, 닭 등을 키우는 대형축사 건립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과 불교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합천군은 요지부동이다. 대형축사가 들어서는 지근거리에는 합천군과 주민들이 함께 조성한 청정미나리단지를 비롯해 대장경테마파크, 해인사 소리길, 대장경 이운로 등이 조성돼 있다. 축사가 들어서면 오폐수와 악취, 벌레와 해충들로 인근 지역은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특히 벌레와 해충의 창궐로 해인사에 보관된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의 안전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사실 세계인들이 찬사를 보내는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하거나 훼손하는 일들이 잦다. 해인사는 외국인이 묻히고 싶은 만큼 위대하고 아름다운 유산이다. 그러나 해인사는 끊임없이 개발논리에 찌든 행정당국의 위협을 받았다. 골프장 건설 추진에 이어 이번 대규모 축사건립 허가는 우리가 일궈온 위대한 문화와 성과에 대한 부정이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도 마찬가지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검인정을 넘어서 자유발행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정화라는 군사정권 당시의 교과서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 정부는 부끄러운 역사 대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일본 우익들이 만들어 낸 자학사관 극복이라는 말도 늘어놓는다. 그러나 정부의 국정화 시도가 사실상의 자학사관이다.

▲ 김형규 부장
전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은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정부를 지지하며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체질상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위컴의 저주를 극복하고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돌려 정부는 들쥐와 같다 모욕 받던 시대로 돌아가려하고 있다. 해인사 인근의 축사가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이라면 한국사 국정화 시도는 우리 국민이 일궈낸 위대한 역사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 국민이 결코 들쥐가 아님을 정부는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