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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선원 산청선원-중

“탐진치는 물에서 이는 거품과 같으니 물이 곧 불성이라”

▲ 철야정진은 공양시간을 제외하고 장좌불와로 좌선한다. 8만4000개 땀구멍으로 몰려오는 수마 탓에 머릿속이 흐릿해지기 쉽다.

채혜원(53, 성월행)씨는 비로소 보고 느꼈다.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의 새말귀와 거사풍을 조금이나마 곁에서 지켜봐서다. 백봉 거사 제자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고 싶어 참여한 철야정진이었다. 명리학과 주역으로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생사문제였다. 아직 해답으로 가는 길에 몇 발자국이나 내디뎠는지 몰랐다. 그래도 공부하는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2박3일 동안 백봉 거사의 9시간 설법, 45분씩 좌선 15번. 정진만 강요하지 않아 좋았다. 특히 백봉 거사 설법을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다. 그에게 백봉 거사는 ‘허공으로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스승이었다.

백봉 설법 9시간·좌선 675분
2박3일 눕지 않고 잠도 안 자
불쑥 밀려드는 수면욕과 싸움
아상은 사라지고 수마만 남아

“졸음에 이기려는 의지도 번뇌
고비 넘기면 불성으로 한 발짝”

▲ ‘한국의 유마거사’로 추앙받는 백봉 김기추.

백봉 거사는 ‘한국의 유마거사’라 추앙받는 인물이다. 50세를 훌쩍 넘겨 불교에 입문했지만 용맹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1963년 6월, 56세에 수행을 시작했다. 충남 심우사에서 우연히 무자 화두를 접한 그는 용맹정진 하던 중 이듬해 ‘무문관’의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는 글귀를 보고 무릎을 쳤다. 이 때 방광(放光)했고, 함께 정진했던 대중들이 삼배의 예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재가불교단체인 보림회를 결성해 지도했다. ‘금강경’과 ‘유마경’ 중심으로 재가수행 열풍을 일으켰다.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확신에 찬 언어로 대중을 오묘한 불교세계로 이끌었다. 20여년 간 수많은 사람들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안내한 그는 1985년 8월2일 여름 철야정진 해제법어를 마치고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소에서 ‘모습놀이’를 거뒀다. 김진태 검찰총장, 장순용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원, 명호근 쌍용양회 부회장, 전창렬 변호사, 성태용 건국대 교수 등을 비롯해 1000여명의 재가자들이 백봉 거사에게 참선을 배웠다.

채씨에게 눕지 않고 잠들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도 인상적이었다. 철야정진은 공양시간을 제외하고 장좌불와로 좌선한다. 8만4000개 땀구멍으로 몰려오는 수마 탓에 머릿속이 흐릿해지기 쉽다. 설법과 포행, 차담을 번갈아 가면서 정진하는 이유다.

▲ 2박3일간 9시간 백봉 거사 설법을 듣는다.

정진에 참여한 수행자들은 하룻밤을 넘기자 낮이나 밤이나 휘청거렸다. 뿌리 깊은 나무 같았다. 놀랍게도 몸은 구부러졌지만 다리는 풀리지 않았다. 뒤로 넘어가는 이도 없었다. 방선하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묵언하고 포행으로 경직된 몸을 이완시켰다. 전근홍 산청선원장은 수마와 씨름하는 수행자들을 독려했다.

“졸음을 이기려고하지 말라. 의식적으로 싸우는 것은 끄달리는 것이다. 3일 지나면 달라진다. 번뇌 중에 수마만 남는다. 이 고비를 넘으면 된다. 힘은 빠져도 정신은 맑아진다. 비로소 ‘참나’에 한 발자국 다가선다.”

다시 시작된 백봉 거사 설법은 좌선에 임하는 수행자들 마음을 ‘견고한 믿음’으로 이끌었다.

“물거품이 나타난다고 해서 물이 나오고 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거품 나타나도 거품으로서 형상을 보였고 거품이 사그라지면 물 그대로다. 물거품은 불성, 참나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아는 것은 마음이다. 진짜 마음 아니다. 경계에 끄달려 미운 대상 보면 ‘밉다’는 생각이 난다. 진짜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 망심은 사라진다. 우리는 망령된 마음을 진짜로 알고 세상을 산다. 그 망령된 마음의 경계에 들어앉지 않는 그 자리, 그것이 불성이다. 모습도 없고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허공도 그렇다.”

EBS ‘지식채널 e’에서 제작한 동영상은 이제까지 믿었던 ‘사실’을 해체했다. 애플파이가 우주에서 왔을까. 137억년 전 대폭발로 탄생한 우주는 38만년 후 우주팽창과 온도저하로 수소(H)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소는 산소(O), 탄소(C), 질소(N), 마그네슘(Mg), 철(F) 등이다. 지구의 일부가 된 원자들은 수십억년을 거쳐 때론 구름 때론 공룡, 때론 흙이나 빗물이 됐다. 흙에서 빗물 마시고 자란 밀과 사과, 밀과 사과로 만든 애플파이를 씹고 소화시켜 인간은 몸의 일부로 만들었다. 수십억조개 원자들 집합체인 몸 속 원자의 98%는 1년 안에 다른 원자로 교체된다. 내장 표면 상피세포는 5일, 피부는 2주, 피 속 적혈구는 120일마다 생멸한다. 뼈는 10년, 근육도 15~16년이면 모두 바뀐다.

인간이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분해된 원자들은 다시 흩어져 꽃이나 숲이 혹은 짐승의 몸이 되기도 한다. 한때 아인슈타인이나 붓다의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우리 몸속의 원자들. 수행자들은 ‘사실’에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과연 우리는 너와 나로 구분되고 다른 존재라 말할 수 있을까. 생로병사 윤회고리에 매인 몸뚱이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었다. 백봉 거사는 일찍이 이렇게 설했다.

“육백억 세계를 우리는 굴리고 있다. 1초 동안 (세포는) 나고 죽는다. 적혈구나 백혈구도 그렇다. 이런 세계를 ‘참나’가 굴리고 있다. 한 찰나에도 무한의 세계를 굴린다. 몸으로 탐진치 일으키며 하는 모습놀이를 관둬야 한다. 그 색신을 놔버리시라.”

이민형(40, 명각)씨에게 백봉 거사의 일성이 들렸다.

“야, 이놈아 앞소식을 알아야지.”

최홍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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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귀는 생활 속에서 참구 가능한 화두”

전근홍 보림선원 산청선원장

 
“백봉 김기추 거사는 이전 화두보다는 운전사나 기계를 굴리는 사람도 평소에 참구할 수 있는 화두를 가져야 한다 강조했습니다.”

전근홍(64, 청봉) 산청선원장은 새말귀(新話頭)부터 강조했다. 새말귀는 백봉 거사가 일상을 떠날 수 없는 재가불자들을 위해 고안한 화두다. 일할 때나 참선할 때나 법신으로 살도록 ‘허공으로서 나’를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일찍이 백봉 거사도 화두 참구로 확철대오했다. 그러나 세속에 묶여 있는 재가자들이 스님처럼 화두에만 매달릴 수 없다. 새말귀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정진할 수 있는 화두로, 결국 생사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다.”

전 선원장의 확신에는 철저한 정진이 숨어있다. 그는 백봉 거사로부터 시작된 1주일 철야정진을 1973년부터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가 장티푸스로 죽었던 과거가 그를 불교로 이끌었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는 백봉 거사와 시절인연을 맺었다. 백봉 거사는 “우리 육신이 허공에 살고 있으니 이 허공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생사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 철야정진을 여태 지키고 있었다. 도반들도 그 정진력에 감탄할 정도다. 그는 장좌불와 철야정진 효과를 몸소 느껴 알고 있다. 철야정진 2년이 지나자 언제부터인가 새말귀가 순일하게 들렸다. 좌선한지 1분이 지나면 시계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새말귀만 성성했다.

“철야정진은 잠과 새말귀와 싸우는 고된 정진이다. 그러나 평소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 수행하다 1주일, 2박3일 시간을 내서 용맹정진하면 몸뚱이 부리는 ‘참나’를 발견하는 지혜의 눈이 열릴 수 있다.”

그는 스승 떠나고 허름해져가는 선원과 거사풍 되살리고자 2013년부터 산청선원을 재정비하고 여기서 지내며 철야정진을 진행하고 있다.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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