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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2연기-⑤명색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다른 것들이 몸에 들어오면
면역반응 일어나는 것처럼
명색은 식의 작용 조건으로
나와 외부를 구별하는 기능

식이란 알기 쉽게 말하면 행동하는 어떤 것이 무언가와 만나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부정확하다. 이미 대상이 무언가를 알아보는 ‘무엇’을, 혹은 감각기관 같은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식은 아직 그런 것이 발생하기 이전의 식이고, 행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식이다. 대상을 구별하는 것은 식의 내용을 분별할 때 가능하고 그걸 분별하는 기관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 기관은 대체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물이나 식물 같은 유기체는 여러 가지 기관을 갖는다. 동물이라면 6처의 감각기관을 가질 뿐 아니라 운동기관, 소화기관, 순환기관 등등을 갖는다. 이런 기관은 대체 어떻게 발생했을까? 박테리아나 아메바 같은 생물로부터 여러 기관들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한 유기체가 발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눈이란 기관이 있으려면 빛이 먼저 있어야 하고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세포(광수용체)가 있어야 한다. 광수용체는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나 원생생물을 신체의 일부로 통합할 때 형성된다.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는 빛이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적응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즉 빛과의 만남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는 생존하려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을 가진 것들이 출현했을 것이다. 이 환경은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박테리아들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그 결과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들이 살아남아 진화하게 된다. 이런 박테리아가 다른 박테리아, 가령 스피로헤타처럼 운동능력을 가진 박테리아가 새로운 공생체를 형성하게 되었을 때, 빛을 감지하고 이용하며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새로운 능력이 발생한다. 빛에 민감한 세포나 운동능력이 있는 세포의 형성 모두 합목적적인 게 아니라, 빛이 있는 환경 속에서 발생한 우연적인 만남, 그리고 운동능력이 있는 것과 빛의 감지능력 있는 것의 우연적인 만남에 의한 것이고, 그렇게 형성된 것이 빛이 있는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했다는 이유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빛이 잘 들지 않는 땅속이나 깊은 바닷속이었다면, 빛에 민감한 것들이 출현했다 해도 살아남는 게 전혀 유리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그것과 결합된 박테리아가 있었다고 해도 다른 것들보다 생존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을 것이며, 결국 그런 종류의 신체가 진화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빛과의 만남이, 그런 점에서 빛의 존재가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진화시키고, 빛을 감지하는 기관을 발생시킨다. 원시적인 수준에서 ‘식’이란 바로 만남을 뜻한다. 빛에 반응하는 세포와 빛의 만남은 그에 상응하는 식을 산출한다. 식이란 환경과 개체의 만남이고, 반복되는 그런 만남에 대한 지각과 포착이며, 그럼으로써 발생하고 발전해간 지각능력, 그것에 의해 포착된 판단들이다. 이는 식별능력이 충분히 발전하고 분화된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식이란 언제나 그런 식별능력이 자신의 환경과 만나는 사건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신체에 발생한 변용이다.

만남으로서의 식이란 외부에서 온 자극으로 인해 신체상에 발생한 어떤 변용을 뜻한다. 그렇기에 식이란 언제나 외부에서 온 것과 신체 내부에 속한 것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가령 어떤 주파수의 빛과 만나 광수용체 상에 발생한 전기적 내지 화학적 변용이 빛에 대한 식인데, 이 전기적 및 화학적 변용에는 밖에서 온 빛과 그에 대한 광수용체의 반응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만남에서 가장 일차적인 판단은 안팎을 구별하는 것이다. 식이 환경에 대한 적절한 행의 방식을 찾기 위한 것이기에, 밖에서 온 것과 내부에 속한 것을 구별하려 하게 마련이다. 안팎을 식별하려는 의지는 식을 식별하는 것과 식별된 것, 즉 식별의 주관과 식별의 대상으로 분할한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견분과 상분이 그것이다. 식별작용을 수행하는 성분이 ‘나’라면 식별된 내용이 ‘대상’이 된다. 전자가 나의 신체에 속한 것이라면 후자는 그 신체 밖에서 온 것이고, 전자가 내게 속한 것이라면, 후자는 나의 외부에 속한 것이다. 내게 속한 것과 외부에 속한 것이 애초에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내가 외부에서 온 것을 보고 듣고 지각한 것으로 간주한다. 내부와 외부는 나와 대샹, 나와 ‘세계’로 분할된다.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미시적인 인지과정이 ‘나’와 외부세계의 대립으로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것은 동물들의 신체 안에서 발생하는 ‘특이적 면역반응’이다. 면역반응이란 말로 흔히 떠올리는 게 바로 이 특이적 면역반응이다. 백혈구(박테리오파지)와 B세포, T세포 등이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을 식별하여 잡아먹거나 공격하고 파괴하는 반응. 이런 면역반응에 대한 오래된 관념은 신체 바깥에서 침투한 ‘적’인 병균들을 내부의 면역세포들이 공격한다는, 매우 군사주의적인 모델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장기이식에서 발생하는 면역반응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난점을 갖고 있었다. 이식된 장기는 신체 안에 침투한 적이 아니라 신체가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기관인데, 이 기관을 면역세포가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후 면역반응의 개념은 신체의 내부와 외부를 식별하여 외부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반응으로 재정의되었다. 달리 말하면 나의 신체에 속하지 않은 것을 신체 안에서 식별하여 공격하고 배제하려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역반응은 6식 ‘이전’에 작동하며 6식과 독립적인 세포적이고 분자적인 식별능력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6식인 의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식한 장기들을, 면역세포들은 내부에 속하는 것인지 외부에 속하는 것인지만을 기준으로 독자적으로 식별하여 공격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러한 면역반응은 6식 이전의 식별능력이 무엇보다 우선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선을 관리하는 이 반응을 통해 ‘나’와 나 밖의 외부세계를 세포적이고 분자적인 수준에서 구별하는 것이다.

나와 외부를 구별하는 이러한 분할은 이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자신의 신체 또한 지각이나 식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신체에 대한 감각을 분할하여 거기서도 지각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지각되는 대상을 구별하는 것이다. 지각하는 것과 지각되는 것을 구별해주는 것은, 전자는 식별작용일 뿐이어서 빛이든 소리든 물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특성을 갖지 않다는 점이고, 반대로 신체는 외부의 물질적 대상처럼 지각되는 물질적 성질을 갖는다는 점이다. 마음이나 정신, 영혼 같은 것이 감지가능한 성질이 없다는 점에서 전자에 속한다면, 우리의 육체는 보고 만지고 할 수 있는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서 후자에 속한다. 이 때문에 신체는 다른 지각대상과 마찬가지로 ‘대상’이요 ‘객체’로 간주된다.

‘명색’이란 식의 작용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이런 분할을 지칭한다. 알다시피 명(名, nama)과 색(色, rup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색이란 물질적인 성분을 갖는 모든 것, 다시 말해 감지가능한 물질성을 갖는 모든 것을 뜻한다면, 명이란 그런 물질성을 갖지 않는 것을, 즉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만지고 보며 작동하는 인지작용을, 그런 인지작용을 하는 성분을 뜻한다. 물질성을 갖지 않는 이러한 성분을 흔히 ‘정신’, ‘영혼’, ‘마음’ 등의 말로 명명한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대상을 포착하고 명명하는 기능이나 능력을 지칭한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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