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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대로의 붓다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1.09 18:16
  • 수정 2015.11.09 18:17
  • 댓글 0

인도는 다신의 나라다. 심지어 남성의 성기를 본뜬 ‘링가’에 예배하는 여인들을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다양한 신들은 민중들의 마음에 의지할 곳이 되었고, 다양한 신화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붓다는 본인의 삶 속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서 이러한 신격화 된 문화를 걷어냈고, 지금 이 자리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했다. 2600여 년 전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인도에서 이것은 파격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가 상식화 된 현대에는 다신론보다는 무신론이 보다 더 익숙한 세계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신통력 가진 목건련 존자도
졸음 빠지는 인간일 뿐
경전 속 이들 신격화보단
인간적 모습 그대로 보길

부처님의 신격화가 신앙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장점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석가모니 붓다와 그의 위대한 제자들, 그리고 역대 조사들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부처님도 우리처럼 대소변을 보는 인간이었을까? 부처님은 교화하는 데 실패하신 적이 없을까?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는 모든 난문에 훌륭하게만 답변하셨을까?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가 정말 이교도들의 돌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셨을까?’

붓다의 신격화는 인간 붓다를 모르는 것에서 기인하는 상병(相病)이다. 이 상병은 인도 사회의 다신문화 속에서 혁명적 가르침을 펴신 붓다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 변화 된 다양한 불교전통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근본불교 속의 인간 붓다를 있는 그대로 보는 공부 또한 매우 중요하다.

역사 속 붓다와 제자들은 지금의 우리와 같이 현실 속에서 웃고, 울고, 슬퍼하고, 걱정하던 인간이었다. 경전 속에 묘사되는 완성형의 모습이 아닌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가진 신이 아닌 인간이었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헤매던 중생이 발보리심을 통해 붓다, 아라한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다는 점에 불교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법회 시간만 되면 수마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안쓰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을 들으려고 계속 법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면 참 기특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법회 시간마다 쏟아지는 그 졸음이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가르침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는 것이다.

뛰어난 신통력을 가진 목건련 존자는 수마에 꺼들려 부처님께 경책 받은 적이 없을까? 그가 아직 아라한과를 이루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리불 존자와 함께 출가한 목건련 존자는 붓다를 친견한 순간 마음에 큰 환희로움이 일어나 용맹한 정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간 계속된 수행으로 졸음에 빠져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천안통으로 보신 부처님께서 목건련 존자를 위해 수행 중 졸음이 쏟아질 때 대처하는 방법 9가지와 올바른 수행에 관한 조언들을 해주시는 내용이 앙굿따라니까야 ‘졸고 있음 경’에 묘사되어 있다.

목건련 존자도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고, 번뇌를 극복하지 못했던 중생이었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붓다의 경책과 설법을 듣고, 그날 목련 존자는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지고 또 지는 가련한 중생이었고, 그렇기에 신통제일 목건련의 그 모습이 더욱 감탄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큰 마음으로! 올바른 정진을, 용맹하게 실천했기에 그의 삶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한 것일까!

또 흥미로운 점은 혁명적 변화의 그 일곱째 날, 졸음에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만약 수마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의 삶 속 혁명적 변화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이렇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여러 대중들 중에 졸음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졸음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진하던 수행주제를 올바로 다잡고 집중한다면 그날이 바로 그에게 혁명적 변화가 찾아오는 순간 아닐까? 졸음의 철벽 뒤에 숨어 있는 행복한 보석을 보고 싶다면 우리도 목건련 존자처럼 수마를 극복해보자.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경전 속 붓다와 제자들의 삶을 신격화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들 삶의 교훈들이 중생인 나와는 먼 이야기가 아닌 현실 속 나를 향한 간절한 조언이 된다. 인간 붓다의 모습을 바라볼 때 경전이 살아 있는 현실이 된다.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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