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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불행위’ 이대로 좋은가

1970년대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MBC에서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었는데, 취재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길에 법안(法眼)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법안 스님이 미국생활의 애환을 들려주시면서 흑인 강도에게 당한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어느 날 새벽, 법안 스님이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왠 흑인 하나가 앞을 가로막으며 돈을 요구했다. 스님이 돈을 얼른 내어주지 앉자. 그 강도는 스님이 머리에 쓰고 있던 베레모를 벗겼다.

번들번들한 스님의 머리가 강도 앞에 노출되었다. 그 순간, 그강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님에게 물었다. “당신도 쿵푸해”. “그렇다”. 스님은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자마자 그 강도는 그만 ‘오금아 나 살려라’하며 줄 행낭을 치고 말았다.

그 당시 몇 년째 인기를 끌고 있던 TV드라마 ‘쿵푸’덕을 톡톡히 본 샘이었다. 이 ‘쿵푸’의 주인공은 스님인데, 선무도로 악한들을 때려눕히고 인생의 진리와 지혜를 전하는 드라마로 오랫동안 미국전역에서 인기를 끌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방영되었다. 이 ‘쿵푸’ 붐을 타고 스님은 곧 쿵푸도사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미국인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그래서 이 당시 스님을 만나는 미국인들은 으레히 “스님도 쿵푸를 합니까” 묻곤 한다는 것이다. 스님을 만나면 불교가 연상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먼저 쿵푸를 연상하게 된 셈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만(卍)자(字)는 곧 사찰의 상징기호처럼 사용되어 있다. 卍자는 본래 범어(梵語)의 만(萬)자라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불심에 나타나는 길상만덕(吉祥萬德)을 뜻하고 있어 卍자가 불교와 사찰을 상징하는 글자로 널리 사용되고 있고 관광지도에서도 사찰의 위치는 卍자로 표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이 卍자가 엉뚱하게도 ‘무속인의 집’을 표시하는 깃발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

옛날 우리 나라에서는 길다란 대나무 끝에 하얀 천을 매달아 무당의 집을 표시했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하얀 천 대신 아예 卍자 깃발을 내 걸고 무속인 들이 본격적인 영업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卍자 깃발만 내건 것이 아니라 아예 간판까지 ‘00암’, ‘00사’라 써 붙이고 ‘00보살’ 칭호까지 공공연히 간판에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무속인, 역술인 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단을 모셔놓고 불상을 봉안하여 마치 사찰이나 암자처럼 행세하며 수입을 올리고 있다.

불교를 앞세우고, 부처님을 빙자하여 사주관상을 보아주고 택일을 하여주고 굿판을 벌여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무속인, 역술인 들이 갈수록 줄어들기는 커녕 갈수록 늘어나고, 심지어는 인터넷에 편승, ‘사이버점술’까지 등장한 세상이 되었다.

본래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미신행위를 엄히 금하셨건만, 우리 나라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불교를 앞세우고 부처님을 팔아 무속인, 역술인 들이 활개를 치는가 하면, 자칭 ‘스님’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사주관상, 궁합, 택일까지 해준다고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하고 있으니,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이대로 방치해두어도 좋을 것인가?

미신행위가 만연한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리고 미신행위는 더욱 사회를 병들게 한다. 더더구나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가 무당의 집 깃발로 나부끼고 卍자가 무당의 집을 상징하게 된다면, 이건 참으로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더더구나 ‘스님’이라는 호칭으로 점술, 역술 광고를 제멋대로 실어 ‘스님’이 곧 점치는 사람으로 각인 되어버린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문화정책 차원에서, 종단은 범 불교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 분석하여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기 바란다.



윤청광ㅡ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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