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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리움미술관 고려 수월관음도

기자명 신대현

‘가장 완벽한 미학’ 수월관음도 중에서도 압도적인 작품성

우리 미술의 여러 분야 중에는 전 국민이 모두 전문가 못잖은 지식을 갖고 있는 주제들이 있다. 그 만큼 모든 사람들이 평소 관심을 많이 갖고 잘 아는 미술품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여기에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면 언제든 옆에서 한두 마디쯤은 거들 줄 아는, 또 기꺼이 그러고 싶어 하는 토픽이다. 예를 들면 석굴암과 불국사,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등이다. 이렇게 ‘국민 미술’로 꼽히는 주제 중 하나가 고려 불화일 것이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작품으로 꼽혀 
필법·채색·표현기법 ‘훌륭’

다른 작품에 비해 화폭도 길어
대나무·꽃 등 배경도 남달라
14세 초반 제작된 것으로 판단

비슷한 구도는 ‘화엄경’서 비롯
혼란의 시기 해외유출 아쉬워

고려 불화는 글자 그대로 고려시대의 불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화인데다가 구도나 필법도 독특하고 하나같이 예술적 수준이 아주 높다. 우리 이상으로 외국 사람들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 세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고려 불화의 주제로는 아미타내영도가 가장 많고 그 밖에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나한도 등이 있다. 이중에서 수월관음도는 신비한 색채감, 정교한 필법, 관음보살의 인자하고 따스한 존재감이 돋보이는 고려 불화의 백미이다.

▲ 리움미술관 소장 수원관음도. 수월관음도는 어느 작품이나 모두 구도가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리움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는 필법과 채색, 표현기법 등이 단연 뛰어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에 몇 점밖에 전하지 않는 고려 수월관음도 중에서 리움미술관 수월관음도는 가장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은 필법이나 채색이 특히 뛰어나며 표현기법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완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위와 대나무의 묘사가 한층 자연스러워 마치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같고, 수월관음의 얼굴 표현도 훨씬 부드럽고 회화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전하는 다른 수월관음도 대부분 14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만들어진 데 비해 이 그림을 14세기 초반으로 두는 이유도 최고조에 다다른 기법을 갖고 판단한 것이다.

▲ 대덕사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는 어느 작품이나 모두 구도가 비슷한 게 특징이다. 화면을 세로로 기다랗게 만들고 오른쪽에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않은 수월관음이 대각선 방향 아래를 바라보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관음의 시선을 따라가면 두 손을 맞잡고 합장하는 선재동자의 환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선재동자는 허리와 무릎을 약간 굽히고 합장하며 관음보살을 우러러보는 자세인데 관음보살에 비해 크기가 아주 작게 표현되기 마련이다. 선재동자 앞에 있는 파도와 물결로 볼 때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만나는 이곳이 바로 바닷가임을 알 수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관음보살의 뒤로 절벽에 난 암굴(暗窟)도 보이고 그 위에 대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다. 바다인 것도 그렇고 암굴이나 대나무를 표현한 이유는 분명 뭔가 특정 장소를 암시하려는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선 뒤에 다시 설명하겠다.

리움미술관 수월관음도 역시 이처럼 거의 공식처럼 반복되던 14세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이전 스타일을 답습만 한 게 아닌 것이, 자세히 보면 여느 수월관음도와는 다른 이 작품만의 뚜렷한 장점이 돋보이고 있어서다. 먼저 관음보살의 얼굴 묘사에 있어 눈·코·입의 표현이 보다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주화면(主畫面)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졌다. 그리고 전체적인 필법이 한층 부드러워져 있는 것도 눈에 띤다. 대나무는 가늘고 섬세하며 암석도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하게 처리되었다. 사실 보통의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의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암석이나 파도 등 주변의 장식이 강하고 세게 표현되어 있어 전체적 분위기가 언밸런스한 게 약점이었는데, 이 그림에서는 이런 면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서구방의 작품인 일본 천옥박고관(센오쿠하코우칸) 소장 수월관음도.

관음보살의 자세는 바위 위에 풀잎을 방석 삼아 한쪽 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좌를 하고서 한 손은 무릎 위에, 다른 한 손은 돌출한 바위 위에 얹고 있다. 어떤 그림이든 관음보살은 거의 한결같이 흰 옷을 입고 있는데 그런 패턴이 이 그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투명에 가까운 엷은 비단옷인 흰 사라(紗羅)를 입었다. 관음의 옷을 이렇게 백의(白衣)로 표현한 것은 “관세음보살은 의당 희고 깨끗하며 가는 털옷을 몸에 걸치고 백의로 연꽃 위에 앉아있다” 는 경전 내용에 따른 것이다.

바위 뒤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대나무는 다른 수월관음도에 비해 유난히 굵고 기다랗다. 이것은 이 그림의 독특한 화면 구성과 관련 있다. 다른 그림들에 비해 화폭을 길게 썼기에 자연히 상부 공간이 많아졌고 이에 맞춰 대나무를 표현한 것이다. 수월관음도에는 바위나 암굴이 표현되기 마련이라 자칫 분위기가 딱딱하고 긴장될 수도 있다. 이를 완화하는 데는 꽃 장식이 긴요하다. 관음보살의 오른손 옆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凈甁)과 수반(水盤)이 놓였고, 또 왼발을 받치는 자리를 연화좌로 하였고 그 옆에도 연꽃과 활짝 핀 꽃다발을 그려 화려함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사이에 펼쳐진 바다 위에도 산호와 연꽃을 흐드러지게 표현해 화면을 한층 부드럽게 장식한 점도 이 그림의 미덕이다.

리움미술관 수월관음도는 채색기법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붉은 선염(渲染,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칠하는 기법)으로 양감을 더 두드러지게 표현했으며, 주색(朱色)에 호분(胡粉)을 섞어 만든 살구색으로 피부의 부드러운 질감을 잘 살린 것도 우수한 테크닉이다. 여기에 더해서 그림의 바탕색을 어두운 갈색으로 칠함으로써 관음보살이 어둠 속에서 마치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顯身)하는 것 같은 신비한 효과를 주고 있다.

▲ 혜허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일본 천초사(센소지) 소장 물방울 수월관음도.

앞에서 거의 모든 수월관음도가 일관된 구도를 지닌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벗어난 작품도 있다.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에 있는 ‘물방울 수월관음도’가 그 작품으로, 커다란 물방울 같은 광배 안에 서 있는 수월관음을 배치한 아주 독특한 구도 작품이다. 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있어 ‘양류관음’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혜허(慧虛) 스님이 그렸다는 글씨가 화면에 적혀 있다. 이로써 센오쿠하코우칸(泉屋博古館) 소장 수월관음도를 그린 서구방(徐九方)과 더불어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두 작가의 이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월관음도의 이 같은 구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모든 그림마다 어김없이 이런 구도를 취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고 이렇게 해야 할 어떤 이유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해답은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도 특히 세상의 53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 도를 구하다 맨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 드디어 진리를 터득하고 아미타불국토에 왕생했다는 선재동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최고의 구도자인 선재동자와, 그가 구도행각 중 28번째 때 만났던 관음보살의 두 캐릭터를 핵심 주제로 하여, 그들이 드디어 만나는 장면을 화면에 옮긴 것이 바로 수월관음도인 것이다. 재밌는 점은 그림의 공간적 배경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조의 공간 묘사와 아주 닮았다는 점이다. ‘낙산이대성’은 의상 스님이 홍련암 암굴에서 수행할 때 관음보살을 친견한 이야기인데, 여기에 나오는 파랑새 ‘대나무’ 바위 등의 묘사가 수월관음도에 표현된 주변 배경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수월관음도와 ‘낙산이대성’ 기록이 서로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추정한다. 특히 관음과 파랑새에 관한 묘사는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에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동국이상국집’(1241년)에도 나온다. 이렇게 그림의 한 형식이 역사적인 고사나 경전의 내용에 입각해 표현되는 미술 장르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수월관음도는 단순한 그림의 가치를 넘어서서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한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월관음도는 요즘도 가끔씩 새로 발견된다. 가장 최근에는 8월 일본 도쿄의 한 개인이 14세기 수월관음도를 소장하고 있음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작년 10월에도 일본 도쿄 미쓰이(三井) 기념 미술관에서 ‘히가시야마 보물의 미(東山 寶物の美)’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수월관음도 한 점이 일반에 처음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14세기 고려 왕실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그림과 구도나 필법이 비슷한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 역시 일찍이 ‘가장 완벽한 미학’이라는 절찬을 받았으니 고려 불화, 그 중에서도 수월관음도의 예술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수월관음도의 가치가 새롭게 인정되는 추세로,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조선시대 수월관음도가 18억의 고가에 낙찰된 것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또 최근에는 미국 시애틀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수월관음도가 우리나라에서 보존 처리되어 공개되며 국제적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소중한 고려 불화의 대다수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근대의 어지러웠던 혼란 틈에 해외, 특히 일본으로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소장하는 기관이나 개인도 많아서 정확한 고려 불화 목록을 알기 어렵다. 고려 불화를 연구하는 도연 스님(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 대략 200점 정도가 있고 그 중 수월관음도는 40여 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수월관음도는 얼마나 될까? 겨우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니, 믿기 힘든 숫자지만 현실이다. 리움미술관 수월관음도와 함께 수월관음도의 4대 걸작으로 꼽는 센오쿠하코우칸 수월관음도, 다이토쿠지 수월관음도, 미쓰이 기념미술관 수월관음도 모두 일본에 있다. 우리가 고려 불화 그리고 그 정수인 수월관음도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학술적 연구를 좀 더 드높여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연구위원  buam0915@hanmail.net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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