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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날 새벽의 단상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1.16 14:14
  • 수정 2015.11.16 14:16
  • 댓글 1

새벽에 잠을 깼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오늘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아마 지금 수험생인 누군가도 눈을 뜨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잠을 청해야 할 텐데 걱정도 됩니다.

수능은 부모들에도 부담
합격과 불합격은 인연 몫
아이 선택·결정 존중하고
믿어주는 연습 필요한 때

언젠가 서울 동국대에 시험을 치르러 갔던 날이 기억납니다. 저는 경기도 동두천 양주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혹여 다음날 시험에 늦을까봐 은사스님께서 동국대 인근에 방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때는 조금 어색했지만 단 둘이서 방에서 나누던 대화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날 스님은 일찍 자야한다면서 밤에 가셨지만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좀 더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학교는 늦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결국 잠을 견디지 못하고 시험을 보는 도중에 그만 자고 말았습니다. 감독관 선생님이 시험을 보러 와서 자는 학생 처음이라고 핀잔을 줬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자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 선생님은 몰랐던 겁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저는 수업시간에 자는 시간이 많았고,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사는 것을 보면 수업시간에 공부 열심히 하는 것과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사는 것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이 이 새벽까지 편안하게 휴식의 잠을 취하고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어제도 수험생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험생이 걱정하는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겠냐구요. 사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더 공허해지고 불안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집니다. 또 수험생을 둔 부모들을 위해서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로 자식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자녀의 대학수준과 합격 불합격 등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런 말들로 인한 마음 때문에 마음이 더 불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더 고민이 깊어집니다. 서로 상처가 될까 봐 합격한 사람도 기쁨을 표할 수 없고 합격하지 못한 사람도 부끄럽다고 슬픔을 위로받을 수 없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감된다고 늘 말하면서도 정작 이런 상황이 되니 모두가 쉬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민해보자고 했습니다. 그 소식들을 어떻게 바꾸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흐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만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런 인연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시기는 이제 성인이 되는 시기입니다. 성인은 이제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갈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빠가 그의 선택과 결정을 대신해야 할 시기를 벗어나는 시기입니다. 이때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면 자녀는 홀로서는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도 믿어주고 놓아줄 용기가 필요합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불안해서 자꾸 잡아주다 보니 자녀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상대할 때 대부분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경험해보니 이게 좋더라, 그것은 하면 안 되더라,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더라. 그런데 그것은 자신만의 경험이라서 상대에겐 이해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 경험을 자녀의 경험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그대로 옮겨 갈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계속할 때 자녀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맙니다. 부모가 자식과의 분리가 잘 된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도록 서로가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이 되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도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수능 이후에 더 수행해야 할 이유이고 사찰에서 준비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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