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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행위는 있되 행위자는 없다

기자명 서광 스님

여래는 조건 따라 생멸하는 무위적 존재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라는 말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여래에는 ‘진실한 실제’ 뜻 담겨
있는 그대로 오가는 부처님 상징
인연 따라 변화하는 무상과 상통
여래 보려면 상에서 자유로워야

우리가 알다시피 ‘금강경’ 전체에 걸쳐서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킬 때, ‘나’ 라는 말 대신에 ‘여래’라는 말을 사용하신다. 왜일까? 왜 부처님은 자신을 1인칭 대신에 3인칭을 사용하셨을까?

우선 ‘여래’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래(如來)는 팔리어/산스크리트어로 ‘Tathāgata’다. 영어로는 ‘one who has thus gone’ 또는 ‘one who has thus come’으로 표현한다. 여래에서 ‘여(如, thatā)’는 있는 그대로(suchness, reality as it is), ‘래’는 온(來, gata, come), 또는 간(āgata, gone)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래’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 오고 가는, 진아(眞我, true self) 또는 진실한 실제(眞實際, true reality)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오고 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온다는 것은 발생을 의미하고 간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므로, 있는 그대로 생멸한다는 뜻이다. 이는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행위를 할 때 자아의식(ego)의 작용 없이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생주이멸(生住移滅)하는 무위(인위적인 조작이 없는)적 존재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여래라는 말의 다른 이름은 무아(無我, selflessness)다.

한편 무아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무상(無常), 즉 고정되지 않고 인연에 따라 생멸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자아(我, ego)에 의해 변덕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무아(無我, no-ego)에 바탕을 둔 연기적 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변화의 원인, 또는 초점이 ‘나’가 아니라 환경, 조건에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의 작용에 의한 변화는 고통을 초래하지만, 무아의 작용에 의한 변화는 수용과 연민심을 유발한다. 그래서 우리가 소위 인생무상을 느낄 때, 그 무상함을 인식하는 과정에 자아, 즉 아집이 개입되면 허무를 느끼고, 고독해지고 우울해진다.

반대로 아집이 없는 무상을 보게 되면, 삶에 대한 감사,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일어나고, 자비심이 자라나게 된다.

우리는 이제 왜 부처님께서 외적인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래’로서의 부처님은 그냥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고 머무르고 변화하고 소멸되는 현상으로 존재할 뿐, 거기에는 어떤 고정된 실체도 없기 때문에 여래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달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능가경’에서는 ‘행위는 있으되 행위자는 없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고통이 싫으면, 또 여래를 보고 싶으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볼 때까지 고통이라는 보살은 항상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고통의 열기가 우리의 가슴을 터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아집, 편견, 고집이라는 빗장을 열게 된다. 만일 그 순간마저도 놓치게 되면, 종국에는 고통이 우리의 가슴을 태우고 녹여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은 아집의 그림자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아집의 빗장을 풀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집의 해독제인 지혜와 자기연민을 닦고 수행해야 한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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