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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보조국사의 비명 (10)입적

기자명 인경 스님

선법당에 향을 피우고 자리에 오르다

“대안(大安) 2년(1210년) 2월 어머니 천도를 위한 법연을 시작한 지 수십 일이 되었다. 이때 국사는 결사 대중에게 이르기를 ‘내가 세상에 머물기가 오래지 않을 것이니 마땅히 각자 노력하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3월20일에 병을 보이고 8일 만에 임종을 하니,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입적하기 하루 전날 저녁에 목욕을 하시고 시자가 임종게를 청하니 조용히 대답하였다. 밤이 깊자 방장실로 들어가 묻고 답함이 처음과 같았다. 새벽이 되자, ‘오늘이 며칠인가?’ 하고 물었다. ‘3월27일입니다.’ 시자가 대답하였다. 국사는 법복을 갖추고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에 말하였다. ‘이 눈은 비조의 눈이 아니요, 이 코도 비상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은 입이 아니요. 이 혀도 어머니가 낳은 혀가 아니다.’ 법고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고 육환장을 짚고 선법당으로 걸어가 향을 피우고 자리에 오르는 것이 평소와 같았다.”

‘땅’ 하는 주장자 소리가
온 우주에 가득 채워지자
같고·다름 개념 소멸되고
그 자리에서 입적에 들다

비문에 의거하면 국사의 입적일은 1210년 3월27일이다. 오늘날도 송광사에서는 보조국사의 종재일로 이날을 기리고 있다. 입적한 당일 평소와 다름없는 국사의 행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눈은 비조의 눈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비조(鼻祖)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또는 모든 사물의 시초’란 의미이다. 다음 구절로 보면 ‘이 눈은 어머니가 낳은 눈이 아니요’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의 눈인가? 누구의 코란 말인가? 그러면 누구의 입이란 말인가? 그러하면 누구의 혀란 말인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온(來)한 바가 없고, 그러기에 가는(去) 바가 없다. 나고 죽음 또한 이와 같다. 아마도 국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이치로는 오고 간 바가 없지만 육체를 가진 역사적인 지금 여기의 현실은 법고를 울리고 국사는 선법당에 올랐다.

“석장을 치고 전날 방장실에서 문답한 인연을 들어서 말하였다. ‘선법의 신령한 경험은 불가사의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것을 설파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어둡지 않은 일착자(一著子)를 물어라. 이 늙은이도 어둡지 않은 일착자로 대답하리라.’ 좌우를 돌아보고 손으로 육환장을 만지면서 말하였다.

‘산승의 목숨은 모두 그대들의 손안에 있다. 한 번 그대들에게 맡길 것이니, 가로 끌던지 거꾸로 끌던지 근골이 있는 사람은 한 번 나와 보라.’ 곧 발을 뻗어서 법상에 앉아서 문답하였다. 말은 법답고 뜻은 자세하였다. 언변에 걸림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임종기’와 같다.”

국사의 임종에 대한 자세한 기록인 ‘임종기’는 아쉽게도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둡지 않은 일착자란 어떤 의미인가? 일착자란 첫 번째로 두는 바둑알이다. 그 첫 번째의 질문이나 말은 어디에 해야 하는가? 자, 이제 곧 입적할 선승에게 첫 번째의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각자마다 자기의 문제를 꺼내어서 질문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바둑판에 흑백으로 나누어진 바둑알이 없다. 그곳은 어둡지가 않다. 그곳에는 금이 그어진 곳이 없다. 그곳은 모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허공처럼 흔적이 없고, 밝고 청량하다. 어디에다가 일착자를 둘 것인가?

“그때 한 스님이 마지막으로 일어나서 물었다. ‘옛날 비야리에서 유마거사가 병을 보인 것과 오늘 조계에서 묵우자께서 병드신 것이 같은지 다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물었다. 국사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대는 같고 다름만 배웠는가?’ 이어서 주장자를 들어 올려 내리치시면서, ‘천만 가지가 모두 이속에 있느니라’ 하였다. 그리고 주장자를 잡고 그대로 국사께서 법상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채로 입적하였다.”

같고 다름의 개념이 소멸되면서, 땅! 하는 주장자 소리가 온 우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국사는 입적하였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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