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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보조국사의 비명 (11) 입적-2

기자명 인경 스님

“도의 작용 한계 없고, 사람의 행함 같지 않다”

“문도가 향을 피우고 단을 만들어 공양하길 7일간 했다. 입적한 스님의 안색은 살았을 때와 같고 수염과 머리털이 계속 자랐다. 다비 후 유골을 수습하니 유골이 모두 5색이었다. 사리가 큰 것이 30과였고, 작은 것들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임금이 소식을 듣고 시호를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 하고 탑은 ‘감로(甘露)’라 하였다. 세수는 53세요, 법랍은 36세였다. 평생 지으신 것은 ‘정혜결사문’‘상당록’‘법어’‘가송’ 각 1권이며, 종지를 선양한 것으로 모두 가히 볼만하다.”

사람들이 의심 많고 신심 적어
스승이 방편으로 설명·인도해도
흠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거룩한 도로 나가기 어려울 것

스님께서 입적하면서 보인 경이로움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죽음에 이르러서 마치 건강한 사람처럼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하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당시에도 논쟁이 되었던 같다.

“어떤 이가 말한다. 죽음과 삶은 큰일이다. 그런데 스님은 열반에 들 때 걸림이 없고 자재하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남이 있다. 그러나 지극한 도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하면, 노자(老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을 귀하게 여겼으며, 장자(莊子)는 행위에 남과 다른 일을 하지 않고자 하였다. 옛날 도 닦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괴상하고 기이한 자취를 보여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법 중의 왕이라 불리우며 신통한 작용으로 자재롭게 노닐었지만, 쌍림(雙林)에서 입적할 때는 ‘내가 이제 등이 아프니 곧 열반에 들 것이다’하고, 마침내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고 입적하였다. 또 당나라 은봉 선사는 서서 입적하였는데, 비구니가 된 누이가 ‘오빠는 평생 법과 율을 따르지 않더니, 죽어서도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하였다. 이제 스님은 개당하여 대중에게 보인 것이 많은데 죽는 날에도 법고를 쳐서 대중을 모으고 자리에 올라 설법하고 법상에 걸터앉아서 입적을 알리니, 이것이 도에서 본다면 군더더기가 아니겠는가?”

고승들이 죽기 전에 기이한 형태를 보이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특히 은봉 스님은 물구나무를 서서 죽었는데 입적 이후에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누이인 비구니 스님이 기이한 행에 대해서 꾸중을 하자, 그제서야 법구를 다비장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점에 대해 비명은 이렇게 말한다.

“답한다. ‘그렇지 않다. 도의 작용은 한계가 없고, 사람이 행함에는 같지가 않다. 이치는 천하에 하나뿐이지만, 작용에는 백 가지가 있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모두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역대 선문의 조사들이 임종에 법을 부촉할 때, 반드시 신이함을 나타내었으니, 승사에 자세히 실려 있다. 후대의 조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승들은 법당에 올라 법을 설하고 입적을 하였다. 홍선사의 유관(惟寬)은 상당하여 임종게를 설하고, 편안하게 입적하였다. 수산의 성념(省念)은 임종게를 남긴 다음 온종일 상당하여 설법하고 편안하게 앉아 갔으며, 서봉의 지단(志端)은 삭발목욕하고 법당에 올라 대중에게 하직하고 편안하게 앉아 입적하였고, 대종 은미(隱微)는 상당하여 임종게를 설한 다음에 입적을 하였다. 이들 모두 잘못된 것이라 하겠는가? 슬프다. 상법과 말법의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신심이 적어서 먼저 깨달은 고승이 교묘한 방편으로 설명하여 보이고 권하고 인도하여 흠모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지 않으면, 비록 거룩한 도에 나아가려 해도 이 또한 어려울 것이다. 스님의 마음을 보면 근기에 맞추어 이롭게 하려는 한 부분인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법문을 하면서 그대로 입적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의심할 수도 있다. 비문은 이런 의심을 방지하면서 법문을 하고 법상에 앉아서 그대로 입적한 고승들의 사례를 열거한다. 시대가 변해도 이치는 변함이 없기에 그 작용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작용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모두 하나로 돌아간다. 이것이 삶과 죽음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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