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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와 망년회

한해의 끝자락인 12월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망년회(忘年會)’, ‘송년회(送年會)’라고 불리는 행사들이 진행된다. 축제의 성격을 지닌 이 작은 행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통과의례를 치르곤 한다. 이 행위는 한편으로 놀이적 성격도 지닌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인 요한 하이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놀이는 선악이나 진위(眞僞)와 같이 대척점이 있는 행위가 아닌, 이것을 넘어선 초월적 행위라는 것이다. 망년회나 송년회가 놀이나 축제의 의미로 진행된다면 전승해야 할 의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연말행사의 분위기는 하이징아의 정의와는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망년회(忘年會)의 망(忘)은 잊다, 다하다, 끝나다는 의미이다. 망년회에는 한 해를 끝낸다는 의미와 함께 좋지 않은 일들을 깨끗이 잊자는 뜻이 들어있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가 되면 각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부터 여러 모임들까지 앞 다퉈 한 해를 잊기 위한 여러 종류의 행사들을 진행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의 일들을 돌아보며 좋지 않은 일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자 함이다. 동시에 새해엔 좋은 일들이 다가오길 바란다. 그 마음 대부분은 흥청망청 취하는 분위기로 마무리 된다. 간혹 광란의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이 시기는 ‘동지(冬至)’와도 맞물려 있다. 동지는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대설(大雪) 15일 후 소한(小寒) 전까지의 절기다. 양력으로는 12월 22일인 동지가 음력으로 11월인 동짓달의 초순에 들면 애기동지라고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또는 청년동지라 하며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 또는 노인동지라고 했다. 이는 양력으로 정해진 동지에 음력을 연결해서 동지에 대한 세시풍속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동지는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시기’라고도 한다. 동짓날은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밤이 가장 긴 날이니 양기가 가장 약하고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하지만 동지를 기준으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해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므로 동지는 다른 의미에서 새해라고 불린 것이다. 양의 기운이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주역(周易)에서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하고 동짓달을 1년의 시작인 새해로 삼았다. 궁중이나 경사대부의 집안에서는 동지하례(冬至賀禮) 또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는 선물의례가 있었고, 민간에서는 동지부적(冬至符籍)의 풍속이 있었다. 동지를 맞이해서 서로 간에 진 빚을 청산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친척과 이웃 간에 묵은 감정을 풀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용서해 주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망년회나 송년회라고 불리는 행사들도 동지를 전후로 절정을 이룬다. 한 해를 보내는 우리 민족의 풍속은 동짓날에서 보여지듯 긍정적인 의미로 진행됐다.

하지만 요즈음 행지지고 있는 세태는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온 동지의 세시풍속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요얼(妖孼)의 기운을 부르는 망령스러운 모임이 아닐 수 없다. 동양전통의 시간 개념은 환원적이고 순환적인 개념이었다. 처음과 끝의 한계를 전제로 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개념과는 대비되는 동양의 시간은 60갑자를 근간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래서 한 해나 60년이나 모든 주기는 환원적인 시간을 바탕으로 인식되었다. 동양적 시간의 범주에서 한해의 끝자락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동지불공을 통해서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이는 탐·진·치 삼독(三毒)을 새롭게 태어나는 양의 기운으로 깨끗이 파기하고 털어내는 계기로 삼는 의미일 것이다. 몸과 마음에 찌든 때를 버리고 새해엔 더 많이 복을 짓고 망언을 삼가 삼독에 물들지 말기를 다짐하는 자리가 불자들의 진정한 망년회, 송년회이다.

장재진 동명대 교수 sira113@naver.com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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