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 아와 아견

기자명 서광 스님

외도는 아를 말하고 여래는 아견을 설명한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말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이해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그 이름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일 뿐입니다.”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현상에 대해서 이와 같이 알고, 보고, 믿고, 이해함으로써 현상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야! 현상에 대한 모양을 여래가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자니 그렇다는 뜻이다.”

나와 현상은 마음이 그린 영상
진짜 나는 유무 범주서 벗어나
삼매 잘 이뤄지면 실상 드러내
현실 부정보다 허상임을 알아야

위의 가르침은 무아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제 수행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서 규봉선사는 ‘외도는 아(我)를 설명하고 여래는 아견(我見)을 설명하신 까닭에 인무아(人無我)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또 아견의 존재를 설명하신 까닭으로 법무아(法無我)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무착보살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새기면 새길수록 뭔가 깨달음의 본질에 대한 깊이를 더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무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있다거나 없다는 두 극단적인 범주에 집어넣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무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나’와 ‘현상’에 대한 견해, 이미지, 영상을 진짜 ‘나’ 또는 ‘현상’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 자체나 ‘현상’ 자체는 존재의 유무를 초월하는 범주에 속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와 일체 현상에 대해서 알거나 보고, 듣고, 접촉하면서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우리의 마음이 그려내는 영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에 대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견해, 이미지가 허상이라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짜 ‘나(眞如)’라는 존재는 유무(有無)의 두 범주를 벗어나 있고 초월해 있어서 공하기도 하고(眞空) 공하지 않기도 하다고(不空, 妙有) 표현한다. 우리는 삶의 생존과정에서 그 진짜 ‘나’와 멀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가짜 나에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진짜 ‘나’는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 무착보살은 집중명상(samatha, 止)과 마음챙김(vipassana, 觀)을 바탕으로 먼저 삼매(samadhi, 定)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삼매가 제대로 잘 이루어지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분별해서 얻은 마음의 영상, 이미지들이 모두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뛰어난 앎, 지견(知見)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마치 영화관의 하얀 스크린에 나타난 온갖 인물들과 사건, 감정들이 영사기가 멈추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듯이 우리의 마음 속에 들끓던 욕망과 화, 어리석음의 삼천대천세계도 5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이 그 대상들을 접촉하면서 생겨나는 영상, 이미지임을 아는 순간 홀연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굳이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나’와 새끼줄이 무아고 공(空)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익이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뱀은 나와 새끼줄이 함께 만들어낸 마음의 이미지고 영상이므로 ‘나’나 ‘새끼줄’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뱀이라는 이미지·영상을 부정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나와 새끼줄이 속한 현실자체를 부정하거나 현실과 사회를 떠난 제3의 어떤 정신적·물질적 세계를 추구하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나’와 ‘새끼줄(사회, 현실, 인간관계)’을 통해서 생겨나는 뱀/영상(더럽고/깨끗하고, 아름답고/추하고…)을 보고 그것이 허상임을 깨달아 가라는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