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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간화선과 관련된 이슈들 (1) 공안선과 화두선

기자명 인경 스님

문자에 머문 상투적 선적 경계를 비판하다

우리에게 간화선은 무엇인가? 간화선은 보조국사에 의해서 도입되었고, 그의 제자인 혜심국사에 의해서 널리 유행하여 고려 말에 융성하였다. 이런 간화선의 전통은 염불과 함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전승돼 왔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중요한 수행론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유식불교나 화엄불교가 교학적 사상으로만 남아있고, 현실에서는 죽어버린 것과 비교하면 간화선의 실천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간화선에 대한 쟁점이 상존하고 있다.

공안은 수없이 존재하지만
언어적인 이해에만 그치고
의심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여전히 화두가 아닌 공안

먼저 지적할 점은 간화선에서 공안과 화두는 동일한 개념인가 하는 것이다. 남송의 대혜종고에 의해 확립된 간화선은 북송의 공안선을 비판하면서 성립됐다. 간화선이 공안의 문자에 빠져 상투적인 선적 경계를 말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역사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공안선과 화두선은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

공안선은 송나라에서 성립됐으며, 목판 인쇄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구술된 당시의 선문답을 모으고 출판하면서 선문답을 모은 공안집이 유행하고, 사대부를 중심으로 공안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활발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공안선은 공안을 의리나 문자로 이해하는 사대부들의 접근방식을 부르는 말이다. 간화선에서 말하는 화두의 개념은 바로 공안선을 비판하면서 대두된 개념이다.

예를 들면 대혜종고는 공안에서 공부하는 방식을 냉혹하게 비판했는데, 주지하다시피 그는 공안을 해설한 스승의 저술인 ‘벽암록’을 불태워버렸다. 나아가 대혜는 공안에서 공부하는 방식을 궁극의 도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쓰레기이고, 불태워야 하는 잡독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안선은 의심이 없는 문자선에 불과함을 역설하면서, 그는 매우 강경한 태도로 공안이 아니라 화두참구를 강조한다.

이런 송대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간화선은 공안선의 병폐를 지적하면서 대두되었다는 표현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절하다 할 것이다. 만약 공안과 화두가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된다면 실질적인 의심에 의한 수행과 옛 선사의 문답에 대한 언어적인 이해를 수행으로 착각하는 것을 서로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화두란 수행자가 실질적인 자기의 삶 속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공안은 단순히 옛 조사의 문답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공안은 수없이 존재하지만, 언어적인 이해에만 그치고 의심이 없다면 그것을 화두라 부를 수 없다. 이런 경우 그는 화두에 의한 간화선자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주체적인 자기 의심과 체험도 없으면서 간화선을 공부하고 있다면, 간화선의 정체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두와 공안은 구별해 사용돼야 한다.

오늘날 공안을 강조하게 된 계기는 일본 조동종 계열의 선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남겨진 잔재로서 변질된 형태다. 일본선의 주류는 묵조선 계열의 조동선으로 그들의 선학사전에는 간화라는 용어가 없고, 공안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대혜가 묵조선을 비판한 점은 바로 묵조선의 공안선을 비판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설사 부처의 말씀이고 그것이 조사의 언구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량 분별하여 언어적인 이해에만 만족하고 실질적인 자기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내 개인의 삶 속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전히 박물관에 안치된 과거의 유물로서 공안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국 간화선은 공안과 화두에 대한 구별이 애매하기 때문에 당송대 선문답을 동어반복하고 앉아 있으면서, 여전히 간화선을 수행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필자는 본다. 이런 판단의 증거는 교단 내에 간화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거나 문답하는 관례나 제도적인 장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의심과 더불어서 참구의 동기를 유발하는 점검시스템이 없으면 간화선은 결국 문자선에 머물기 때문이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22호 / 2015년 12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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