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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 빛난 종무원들의 자비심

  • 기자칼럼
  • 입력 2015.12.11 19:55
  • 수정 2015.12.16 13:38
  • 댓글 19

[기자칼럼] 권오영 기자

‘절에 온 사람 내칠 수 없다’
항의 전화에 업무 마비돼도
밤새 순번 정해 절을 지키고
경찰 침탈에도 온몸으로 저항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월10일 경찰에 자진출두하면서 서울 조계사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문제가 평화롭게 마무리되기까지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특히 12월9일 경찰이 조계사 관음전을 침탈할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중재에 나선 것은 한 위원장 문제가 평화적으로 처리될 수 있게 한 분수령이 됐다.

그러나 그에 앞서 경찰 진입을 온몸으로 막으며 관음전을 지키려했던 총무원과 조계사 종무원들의 헌신적인 자비심이 없었다면 자승 스님도 쉽게 마지막 결단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위원장이 지난 11월16일 밤 불쑥 조계사를 들어왔을 때부터 종무원들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일각의 의도적인 폄하 여론 때문이겠지만 끊임없이 걸려오는 항의전화에 업무가 마비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보수단체의 항의집회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또 언제든 경찰이 침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감내해야 했다.

조계사 종무원들의 상당수는 퇴근조차 못하고 매일 밤 순번을 정해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관음전을 지켰다. 그럼에도 종무원들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한 위원장을 내보내야 한다”며 항의하는 일부 신도들에게 “우리 절에 들어온 사람을 감싸야지, 어떻게 내칠 수가 있느냐”고 설득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종무원들의 자비심은 12월9일 더욱 빛이 났다. 전날 강신명 경찰청장이 한 위원장에게 최후통첩을 하면서 조계사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경찰은 조계사를 에워쌌고, 언제든 관음전을 들어설 태세였다. 일주문 밖에는 진보와 보수단체들이 잇따라 집회를 열어 한 위원장의 거취문제를 두고 대립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신도들 간의 고성이 오가면서 혼란한 상황이 이어졌다. 오후 2시를 넘어서자 경찰은 조계사 관음전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면서 병력 투입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 순간, 관음전 입구에서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님과 종무원 100여명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시작했다. 가슴과 팔 등에 조계종을 상징하는 ‘삼보륜’을 붙이고 한 손에는 연등을 들고 목탁에 맞춰 ‘석가모니불’을 합송했다. 정치적 구호도 없었고, 오직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손팻말’만 높이 치켜들었다. 조계사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사회적 약자를 품는 공간이자 신성한 기도공간임을 알리는 무언의 함성이었다. 동시에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에 맞서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비폭력의 저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종무원들의 외침을 끝내 외면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경찰병력이 관음전을 에워싸더니 종무원들을 향해 곧바로 나아갔다. 종무원들은 서로 팔짱을 끼며 경찰 진입을 막았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찰병력의 막강한 힘 앞에 종무원들은 풀처럼 쓰러지고 밟혔다. 한두 명씩 질질 끌려 나갔다. 그럼에도 종무원들은 비폭력을 외쳤다. 쓰러지면서도 공권력의 조계사 침탈 부당성을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 박모 팀장은 갈비뼈를 다쳐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종무원들이 손에 들고 있던 연등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평화를 호소하던 손팻말도 찢겨 나갔다. 처참하게 끌려가던 한 종무원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가운데 자승 스님의 긴급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관음전 진입을 목전에 두고 철수를 선언했다. 종무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한 위원장이 자진출두를 결심했다. 전날 경찰과 맞섰던 종무원들은 다시 한 위원장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관음전에서 대웅전, 다시 일주문까지 차례로 긴 ‘인간띠’를 만들어 한 위원장이 취재진의 시달림을 피해 조계사 밖까지 편히 갈 수 있도록 지켜줬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를 나가면서 “조계종과 조계사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어쩌면 25일간 세간의 부정적인 여론을 견뎌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으로 그를 지켜주려 했던 총무원과 조계사 종무원들에게 던진 진심어린 고마움의 표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 권오영 기자
조계사가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것은 대웅전과 오래된 전각들, 그리고 총무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청춘과 열정을 던져가며 불교사상과 자비정신을 올곧게 지켜내려는 신심 깊은 불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323호 / 2015년 12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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