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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기자명 함돈균

올해는 다양한 청년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만날 기회가 많았다. 청년캠프를 통해, 평소처럼 대학의 수업을 통해. 그 만남을 나는 간단하고 세상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시 구절 하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내 직업이 문학평론가이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헬조선’이라는 자조가 들끓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힐링’시키려는 목적 때문도 아니었다. 생존의 절박함이 삶을 압박하고, 사회에 억압적인 공기가 가득하여 숨이 막히는 시대일수록 시시하고 무용해 보이는 작은 것들이 지닌 힘을 각성하고, 여기에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 능력과 상상력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시 구절 하나로 이야기의 장을 마련해 보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젊은 시인 이근화의 ‘공놀이’라는 시의 일부다. 이런 시구를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하자고 할 때 청년들의 대체적인 최초 반응은 뭔가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갈등이 심각한 시대에서 뜬금없이 웬 애들 공놀이냐고 정색을 하고 되묻는 청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일상의 말과 풍경에서부터 제대로 된 생각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인문이 아닐까. 하나의 생각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유’가 된다.

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공놀이를 하려면 우선 공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도 없는 사회가 있다. 유니세프 같은 단체에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 매년 축구공을 보내주는 일은 공도 없는 사회에서는 공 자체가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바꿔 말해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른들의 정치는 파괴적이고 정략적인 정책 소비에 열을 올리지만,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공 같은 삶의 구체성에는 관심 자체가 없다.

한국사회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축구공 정도는 누구나 집에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축구공을 가지고 놀이터에 나간 아이는 늘 심심하고 외롭다.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은 있어도 놀이터에 친구들이 증발한 사회는 저 아프리카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공놀이에는 공과 친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게임 규칙이 필요하다. 경기가 안 풀린다고 하여 한 팀의 사람들이 공을 손으로 집어 들어 골대에 넣어서도 안 되며, 그 점수가 인정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공정한 심판도 필요하다. 공놀이를 사회에 대한 비유로 생각해 본다면, 이 시구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도 하다. 공놀이에 필요한 이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 공놀이는 재미없어지고 나아가서는 억울한 공놀이가 되어 공놀이에 참여한 구성원들을 분노하게도 만들 것이다. 공놀이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그러므로 ‘왜’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열악한 조건에서도 공놀이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공도 충분치 않고, 동료들도 없고, 규칙도 잘 지켜지지 않고, 응원하는 관중들도 없지만. 그때 공놀이는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공놀이를 지속한다면 그는 정말 공놀이 자체를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나아가 그는 자유로운 공놀이에 신념을 걸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쓴 시인도 그런 종류의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시구 하나를 통해 이런 질문을 거듭하고 보다 ‘좋은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는 인문학의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헬조선에서 ‘탈출’하는 게 아니라 헬조선을 ‘극복’ 하기 위한 젊은 정신도 이런 ‘공놀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husaing@naver.com
 

  [1323호 / 2015년 12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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