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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영암 도갑사 해탈문〈끝〉

기자명 신대현

불교 성지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번뇌에서 벗어나는 산문’

▲ 국보 50호로 지정된 도갑사 해탈문.

아름다움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꾸미지 않아도 절로 빛을 발하니 굳이 남의 시선을 끌려 할 필요가 없다. 덧바르고 자랑하려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은 떠난다. 꾸밈이 많아지면 가식이 되고 화려함이 지나치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미라고 여겨져 온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사찰은 이런 아름다움의 정의(定義)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경내를 거닐면 고상하고 편안한 기운이 온몸에 그득 퍼져온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고 또 이래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사찰의 문화재는 미에 대한 세속의 잣대를 넘어서 그 자체로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듯 하다.

월출산, 오랜 세월 불교 성지로
신라말 도선 국사 창건한 도갑사
고려 후기에 더욱 번성해 눈길

국보 50호 해탈문 대표 문화재
새로운 건축기법 ‘다포’양식
문수동자·보현동자상 봉안돼

작품 진면목은 양식보다 정신
내면에서 우러나온 가치 봐야

도갑사(道岬寺)는 호남의 명산 월출산(月出山) 기슭에 자리한다. 월출산은 워낙 품이 크고 넉넉해 도갑사가 있는 영암에서 무위사가 자리한 강진까지 한 자락에 품고 있다. 월출산을 사이에 둔 이 두 고도(古都)는 월출산 문화권이라 할 만큼 예로부터 역사 문화적으로 서로 긴밀히 연관되며 발전해 왔다. 강진은 논밭 가득 너른 들녘이 펼쳐진 곳답게 부자가 많이 나왔고 영암은 월출산 영기를 듬뿍 받아 그런지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월출산은 또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 다도해가 펼쳐진 완도를 품고 있다. 월출산이라 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다. 그 전 신라 사람들은 월나산(月奈山), 고려 사람들은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렀다는 게 조선시대 중기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모두 ‘달이 처음 뜨는 곳’을 뜻하는 말이니 시대를 가로질러 사람들마다 이 산에 대해 느꼈던 마음이 한결 같았다는 게 신기하다. 산줄기 곳곳에 불교유적이 가득한데 도갑사와 무위사 외에 천황봉 천황사, 구정봉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만 보더라도 오래전부터 이 산이 불교의 성지였음을 알 수 있다.

▲ 도갑사 보현동자상.

도갑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지었고, 고려 후기에 들어와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본래 문수사 절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중국에 다녀온 뒤 여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에 들어와서 당대의 고승인 수미·신미 두 스님이 1473년에 중건해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도갑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화재가 해탈문(解脫門)으로, 1962년 국보 50호로 지정된 것만 봐도 그 건축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1960년 해체 복원할 때 나온 상량문에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나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문(山門)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보다 100년쯤 지나 16세기에 지은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호)이 그 뒤를 잇는다. 사찰의 문 중에 중요한 작품이 여럿 있지만, 도갑사 해탈문처럼 연대가 확실한 조선시대 중기 산문은 유일하기에 우리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본래 ‘해탈문’이라고 하면 ‘문’과 같은 유형의 개념이 아니라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가는 세 가지 선정(禪定) 곧 공 해탈문·무상 해탈문·무작 해탈문의 세 가지 선정(禪定)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을 세우고 ‘해탈문’ 편액을 달았을 때는 글자 그대로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 ‘번뇌에서 벗어나는 문’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국보 50호라는 이미지만 갖고 이 해탈문을 보러 온 사람들은 건물이 그다지 크지 않고, 외양이 기대에 비해 소박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재는 무척 화려하고 기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그러다가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이런 마음이 실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종종 겪는다. 문화재는 무조건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탓이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아름다움이 겉모습의 화려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안에 간직되어 있는 내면적 가치로 인해 더욱 커지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도갑사 해탈문도 국보로 지정된 이유가 겉모습의 크기나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을 해탈로 이끌려는 갸륵한 마음이 이 문에 배어 있고, 또 건축 면에서 보더라도 건축사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요소들이 묻어있어서다.

도갑사 해탈문이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 건축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다포(多包)라고 부르는 새로운 건축기법이 정착되어 가는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붕의 무게를 직접 받는 기둥머리인 주두(柱頭)가 기둥 위에만 놓인 것을 주심포,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놓이는 것을 다포라고 하는데 주심포는 고려시대, 다포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기법이다. 어떤 미술작품이나 다 그러하듯이 한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양식이 메울 때 문이 열렸다 닫히는 것처럼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두 양식끼리 서로 절충하고 양보 화합하는 순간이다. 미술사에서 이런 과도기의 작품은 두 시기의 장단점이 함께 드러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그 시기가 짧다보니 정작 남아 있는 작품은 드물어 실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도갑사 해탈문이 다포가 나타나 정착한 시절에 전대의 성향이 고수되면서 한편으로 새롭게 선뵈는 기법이 나타나는 과도기 작품인 것이다. 조금 더 건축학 쪽으로 다가서서 말한다면 도리칸과 보칸의 비율이 7:5로 아주 안정적이라는 점도 이 문을 바라볼 때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유다.

▲ 도갑사 문수동자상.

정면 바깥 처마 아래에는 ‘月出山 道岬寺’ 편액이, 문을 들어서서 안쪽 처마 아래는 ‘解脫門’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로 좌우 두 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각각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다. 그런데 도갑사 해탈문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뒤쪽 좌우 칸에 봉안되었던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목조 동자상(童子像), 곧 문수동자와 보현동자 조각상이다.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나 조각기법이 서로 비슷하며,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와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모습도 한결같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제법 멋 나게 꾸몄고, 얼굴엔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 또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원만하다. 이후 나타나는 조선시대 동자상 대부분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 두 동자상은 곧 조선시대 중후기 동자상의 전범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전하는 동자상들 대부분 꽃이나 과일 등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나무로 만든 동자상은 지금까지는 이것 하나밖에 알려진 게 없다. 동자이기는 해도 이 둘은 바로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지금은 해탈문과 별도로 보물 1134호로 지정되어 도갑사 성보박물관에 별도로 봉안되어 있지만, 그 옛날 해탈문 안에 놓여있었을 때 이 문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이들의 천진하고 따뜻한 미소 덕분에 얼마나 마음을 위로받았을까 상상이 된다.

해탈문과 동자상 외에도 도갑사에는 볼 만한 유물이 많다. 미륵전의 석조 여래좌상(보물 89호)을 비롯해서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보물 1395호), 오층석탑(보물 1433호), 대웅보전(유형문화재 42호), 석조(石槽, 유형문화재 150호), 수미왕사비(유형문화재 152호), 도선국사 진영(유형문화재 176호), 수미왕사 진영(유형문화재 177호) 등 국보 보물 및 지방 유형문화재가 경내에 그득하다. 이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고요하고 맑은 경내의 모습 그 자체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는다.

▲ 설경이 특히 아름다운 도갑사의 겨울.

도갑사를 나오며 처음 들어갈 때처럼 다시 한 번 해탈문을 지나왔다. 해탈의 문을 건넜으니 내 마음도 정말 그런 경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불교에 ‘깨달음’ ‘자비’ ‘극락’ 등 좋은 말이 참 많다. 그 중에도 헛된 욕망에서 멀어지고 괴롭고 힘든 것에서 벗어나는 ‘해탈’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이루고 싶은 경지가 아닐까. 도갑사 해탈문을 나서며 오늘 이 걸음이 부디 해탈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우러나왔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의 모양에 초점을 맞추는 양식(樣式)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다. 양식은 미술 작품의 분류와 분석을 위해 물론 필요한 수단이지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가치를 알려면 양식 이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술사(美術史)라는 것도 양식 연구에서 나아가 미술을 통해 그것을 만들고 즐거워하며 행복해 했을 당시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를 알려 할 때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불교문화재를 바라볼 때 특히 이런 입장을 갖는 게 중요하다.

지난 두 해 동안 이 연재를 하면서 나름으론 미술을 통해 옛사람들의 마음과 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감상법을 얘기해 보려고 애썼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들이 보기에 무던하게 애는 썼구나 하고 생각해 주었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다. 2년 동안 애정으로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들과 귀한 지면을 내준 ‘법보신문’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연구위원  buam0915@hanmail.net

 [1324호 / 2015년 12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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