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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에 실려, 바람을 품고

기자명 이미령

세속의 바람조차 서원이 될 수 있을까요

▲ 일러스트=강병호

성원 스님, 안녕하세요?

언제부터인가 업무에 필요한 메일만을 주고받다가 이렇게 법보신문의 연재를 통해 서신을 나누게 되어 참 좋습니다. 제주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온힘을 쏟고 계시는 스님이시니 저와의 서신교환에는 부처님 향기가 담뿍 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만나는 세속 팔풍
칭찬에 기분 좋아 들뜨고
비난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순풍만 취하려는 과한 욕심이
역풍에 휘말리는 원인인 셈

어떤 바람도 담담히 맞겠노라
굳건한 바람의 서원 세우길

몇 년 전 딱 한 번 제주도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품었던 제주의 첫인상이 지금껏 시퍼렇게 가슴에 남아 있답니다. 당시 찾은 제주는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제주의 바람에 실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제주도’하면 제게는 가장 먼저 바람이 떠오릅니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 불린다는데 돌과 여자는 세월 따라 불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테지요. 하지만 바람은 처음부터 영원히 제주도를 휘감고 있겠지요.

바람이 부는 제주, 바람이 밤낮으로 불어대는 제주.

가지런히 빗은 머리를 흩어버리거나 치맛자락을 휙 날려 당황케 하는 바람이지만, 섬사람에게 바람은 피부처럼 익숙할 테지요.

스님은 바람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이 바람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한곳에 붙박이가 되어 고지식한 성품으로 굳어버리지 않고 자유롭게 훨훨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이 한껏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팝가수 루 크리스티(Lou Christie)의 ‘Saddle the Wind’를 수도 없이 거푸 듣다가 바람의 나라 중국 베이징으로 배낭여행까지 떠났겠어요. 물론 이른 봄에 간 탓에 황사바람을 제대로 맞았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밤새 불어대는 바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은 지금껏 생생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에게는 이 바람이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나 봅니다. 세속 사람들은 언제나 바람을 맞고 살고, 바람에 휘말려 떠다니고 있다면서 하시는 말씀이, 세속팔풍(世俗八風)이란 가르침 아니겠어요?

부처님은 이렇게 운을 떼십니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은 여덟 가지 원리로 펼쳐진다. 그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이익과 불이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경전에서 이 가르침을 만났을 때 밑줄을 쭉쭉 몇 번이나 그었습니다. 참 맞는 말씀이지요? 일생을 살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는 이 여덟 가지 바람을 맞습니다. 어느 날은 이익의 바람을 맞기도 하고 다음 날은 여지없이 손해(불이익)의 바람을 맞습니다. 심지어는 아침에 이익의 바람을, 한낮에 손해의 바람을 맞기도 합니다.

칭찬과 비난의 바람은 또 어떻고요. 누군가가 저를 칭찬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어느 사이 칭찬의 바람은 비난의 바람으로 변해서 저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칭찬의 바람에 높이 올라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속도와 절망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제주 약천사에서 불사에 여념이 없는 스님께서는 언제나 대중과 함께 호흡을 하고 계실 테지요. 그러다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홀로 무위의 경계에 노닐 여유가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저런 일로 노상 바쁘게 세상을 뛰어다니다 보니 늘 사람들 앞에 제 자신을 드러내고 삽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양식으로 삼고 지금까지 버텨왔지요.

하지만 세상이 저를 대하는 낯은 참 드라마틱하더군요. 박수와 칭찬이 따뜻하게 제 어깨를 감싸는가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비웃거나 날선 비판이 고개를 듭니다. 세상의 반응에 웃다가 울다가…. 이게 세속을 살아가는 제 본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덟 가지 바람이 쉬지 않고 저를 흔들어대지요. 세속팔풍이란 가르침이 유난히 제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이따금은 세상을 향해 “내가 뭘 그리 잘못했지? 왜 나를 못 살게 구는 거야!”라며 따지고 싶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세상의 비난을 잠재우고 순풍만을 맞고 싶은 심정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빨리 깨달아야겠지요. 무슨 수로 세상의 바람을 제가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이익과 불이익, 칭찬과 명예, 행복과 불행은 손등과 손바닥 사이 같은데, 어찌 그 둘을 갈라내서 순풍만을 취하고 역풍을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런 바람이 불어온다고, 또는 제대로 알지 못해서 바람에 휩쓸리게 된다고 부처님은 걱정하십니다. 문제는 이렇게 세속의 팔풍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미 생겨난 이익에 휩쓸려서 불이익을 혐오하고, 이미 생겨난 명예에 휩쓸려서 불명예를 혐오하고, 이미 생겨난 칭찬에 휩쓸려서 비난을 배척하고, 이미 생겨난 행복에 휩쓸려서 불행을 혐오하게 되며, 그 결과 휩쓸리거나 배척하는 상태에 빠져서 온갖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것이라는 게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단, 잘 배운 성스런 제자도 이 여덟 가지 바람을 맞게 되지만 이익이건 손해건, 칭찬이건 비난이건 이 모든 바람이 덧없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기 때문에 담담히 대할 수 있고 그 결과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바람이 불어오는지를 제대로 알되 이 바람이 더 세지거나 약해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멎을 것이라는 것도 알면 괴로울 일이 없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스님, 밥벌이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파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여덟 가지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음을 상상해보면 부처님 이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바람이란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요.

하지만, 다른 바람도 있지요. 서원(誓願)이라는 뜻의 ‘바람’입니다. 어떤 것에 마음을 굳건하게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게 만드는 그 바람입니다. 부처님처럼 세세생생 윤회하면서 깨달음을 위한 서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성품의 인간으로 삶을 지내고픈 바람입니다.

이 편지도 바람에 실려 스님께 닿게 되겠지요. 그 바람은 바람(風)일까요, 바람(願)일까요?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평안하시길.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25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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