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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고 세상을 바꾸는 발원] 3. 경전 속 불자들의 발원

기자명 김한상
  • 새해특집
  • 입력 2015.12.29 10:21
  • 수정 2016.01.08 10:24
  • 댓글 0

올바른 발원으로 무량한 공덕을 쌓았던 위대한 불자들

▲ 디팡카라 붓다에게 발원하는 수메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
초기 불교에서 발원은 선업과 공덕을 기반으로 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결의의 표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든 종교적 실천들의 출발점이다. 우바새나 우바이로서 평생 동안 오계를 지키며 살겠다는 서약이라든지, 비구와 비구니로서 독신수행을 하겠다는 서약도 크게 보면 발원에 해당된다. 붓다도 4아승지겁 10만겁 전이라는 까마득한 옛날에 수메다라는 고행자였을 때 디팡카라 붓다 앞에서 붓다가 되겠다는 원을 세우고서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 생에 정등각을 이룰 수 있었다. 붓다의 상수제자와 대제자들도 과거의 붓다들 앞에서 그러한 위치들에 오르겠다는 원을 세우고서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위사카나 아나타핀디카와 같은 위대한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외에도 팔리 경전 곳곳에서는 불자들의 발원이 많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삼보 귀의 서원 세웠던 푼나
붓다 격려로 아라한과 증득

대기근에도 음식 보시 멘다카
다음생도 가족 함께하는 과보

비구·사미의 거룩했던 발원은
밀린다·나가세 환생으로 발현

잘못된 발원 세웠던 비구니는
남편 목숨 앗았던 비극 초래

스스로 올바른 원 세우는 건
위없는 길상과 다르지 않아

원 세우는 데 머무르지 말고
계 청정히 하고 공덕 쌓아야

어느 때 붓다는 비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고 제타와나를 출발하였다. 그러자 코살라 왕과 아나타핀디카와 다른 재가신자들이 붓다에게 여행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때 아나타핀디카의 여자노예인 푼나가 나서서 “붓다에게 제타와나로 돌아오도록 간청해보겠다”고 말했다. 아나타핀디카는 만약 붓다가 제타와나로 돌아온다면 그녀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푼나는 곧장 붓다에게 가서 제타와나로 돌아오시라고 간청하였다. 붓다는 푼나에게 여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냐고 물었다. 푼나는 자신은 드릴 것이 없지만 돌아오신다면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지키겠다고 원을 세웠다. 붓다는 “장하구나!”라는 말씀으로 푼나를 축복해주고 제타와나로 돌아왔다. 약속대로 아나타핀디카는 푼나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녀로 삼았다. 하지만 푼나는 이러한 행운도 마다하고 주저 없이 승가에 들어갔다. 그리고 열심히 위빠사나를 닦았다. 푼나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무상(無常)을 보게 되자 붓다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푼나를 격려하였다. “내 딸아! 15일이 되면 달이 보름달이 되듯이, 너도 완전해진 지혜로써 괴로움의 소멸을 이룰 것이니라.” 이러한 붓다의 격려를 듣고 푼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붓다 당시의 대부호 멘다카와 그 가족의 이야기이다. 전생에도 이들은 같은 가족이었는데 대기근의 시기에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하고서 그 앞에서 음식이 풍족할 것과 세세생생 함께할 것을 발원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집안 머슴의 발원이다. 머슴은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하면서 음식이 풍족할 것과 세세생생 지금의 집안에 머슴으로 태어날 것을 발원했다! 사실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한 공덕이면 머슴은 세세생생 왕이나 부호가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도 머슴은 주인의 충직한 머슴이 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발원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벽지불이 그들을 축원해주고 떠난 바로 그날 멘다카와 그 가족은 자신들의 보시가 놀라운 과보를 맺는 것을 발견하였다. 쌀독이 쌀로 가득 찼고 만족할 때까지 먹어도 쌀은 언제나 넘쳐났다. 곡물 창고도 곡식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발원은 붓다 당시에 똑같은 가족의 일원이 됨으로써 성취되었다. 당시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은 이들이 각각 재물들을 무한정으로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대신을 보내어 조사했는데, 모두 사실로 판명되었다.

▲ 13세기경 비구 모습. 인도 첸나이 박물관.

다음은 ‘밀린다팡하’의 두 주인공인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비구의 이야기이다. 옛날 캇사파 붓다가 법을 전하고 있을 때 갠지스 강 근처에 비구 대중이 살고 있었다. 비구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긴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붓다의 공덕들을 생각하면서 경내를 청소하였는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떤 비구가 한 사미에게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라고 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비구는 어린 사미가 복종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빗자루로 때려 주었다. 사미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에 울면서 그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첫 번째 원을 세웠다. “내가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지 한낮의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되기를!” 사미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서 갠지스 강가로 목욕하러 나갔다. 그곳에서 강물이 세차게 물결치며 흘러가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원을 세웠다. “내가 열반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지 갠지스 강의 거센 물결처럼 거침없는 말재주와 다함없는 변재를 갖게 되기를!”

한편 비구는 빗자루를 헛간에 치워 두고 목욕하기 위해 갠지스 강의 목욕장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사미의 발원을 듣고서 ‘나로 인하여 그렇게 발원하는데 어찌 내게 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지 저 갠지스 강의 거센 물결처럼 다함이 없는 변재를 갖고 저 사미가 묻는 모든 질문들과 어떠한 난제도 명쾌하게 푸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이러한 발원대로 사미는 마지막 생에 밀린다왕으로 태어나 수승한 지혜와 변재를 가지게 되었고, 비구도 마지막 생에 나가세나 비구로 태어나 밀린다왕의 모든 난문들에 막힘이 없는 답변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이혼율이 세계에서 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황혼이혼도 증가하는 추세이며 얼마 전에는 간통죄의 폐지로 결혼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막조차도 사라졌다. 붓다는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할 것과 결혼하고 나서는 정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부부의 몸가짐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꾸리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saddha-), 계(sI-la), 관대함(ca-ga), 지혜(pan~ n~ a-)를 결혼의 행복과 성공을 보장하는 덕목으로 강조하신다. 이러한 자질들은 두 배우자를 굳게 맺어주며 그 인연은 현생을 넘어서 내생으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나굴라피타와 나굴라마타가 늙어서도 자신들의 부부애가 죽음을 넘어서 이어지기를 발원한 이상적인 부부로 서술되고 있다. 붓다는 이러한 발원에 대해서 위에 말한 자질들을 부부가 다 같이 갖추고 있다면 발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마지막으로 경책하는 의미에서 ‘자타카’에 나오는 잘못된 발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붓다 당시에 가정생활의 비극을 깨닫고 출가한 양가 출신의 비구니가 있었다. 어느 날 비구니는 법회에서 붓다의 법문을 듣다가 한량없는 공덕에서 생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자태를 돌아보고서 ‘대체 나는 여러 번 바꿔나는 동안 저분의 아내가 된 일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비구니에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가 생겨나 자기가 전생에 붓다의 아내였던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비구니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때 남편에게 유익했는지 아니면 해로웠는지를 살펴보자 자신이 조그만 마음의 유감으로 그의 목숨을 앗은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비구니는 치미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다. 이러한 비극은 그녀의 잘못된 발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전생에 붓다가 히말라야에서 찻단타 코끼리 왕이었을 때 비구니는 그의 둘째 왕비인 쭐라수밧다였다. 그런데 쭐라수밧다는 사소한 일로 코끼리 왕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벽지불에게 과일을 보시하고서 그 앞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발원을 하였다. 즉 내생에 맛다 왕의 집에 공주로 태어나 바라나시의 첫째 왕비가 되고 사냥꾼을 보내어 독화살로 코끼리 왕을 쏘아 죽여 그의 상아를 가지겠다는 발원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녀의 발원은 그 다음 생에 성취되었다. 하지만 그녀도 사냥꾼이 잘라온 코끼리 왕의 상아를 보고서 치미는 슬픔에 심장이 찢어져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올바른 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붓다는 ‘숫타니파타’에서 “스스로 올바른 원을 세우는 것은 위없는 길상이다”라고 말씀하면서 우리에게 올바른 원을 세우도록 당부하신다. 동시에 붓다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발원을 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신다. 즉 비구는 사리붓다와 목갈라나와 같이 되고자 발원해야 하고, 비구니는 케마와 웁팔리완나와 같이 되고자 발원해야 하며, 우바새는 짓타와 핫타카와 같이 되고자 발원해야 하고, 우바이는 쿠줏타라와 웰루칸타키와 같이 되고자 발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붓다에게 향과 연꽃을 바치는 비구. 인도 아잔타 석굴.

우리는 발원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왜일까? 붓다는 ‘담마파다’에서 “법들은 마음이 먼저 가고 마음이 으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선언하신다. 더 나아가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마음에 의해 세상이 이끌린다”고도 말씀하신다. 이러한 말씀들은 모두 발원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과 파급력을 방증한다.

그런데 발원만 한다고 그것이 저절로 성취된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발원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오롯이 그것만 생각하면서 자신의 계를 청정히 하고 공덕과 선업을 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어 발원이 성취된다. 붓다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는 사람은 청정하기 때문에 마음의 서원을 성취한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붓다의 말씀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2016년 병신년(丙申年)을 맞아 우리 모두 부처님 앞에서 각자 자신만의 올바른 발원을 해보도록 하자.

김한상 devam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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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상 강사는 1993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스리랑카 켈라니야대학 팔리·불교학 대학원에서 석·박사로 졸업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강사와 한국불교학회 편집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325호 / 2016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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