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도 원숭이가 숨어있다. 일주문이나 대웅전에 눈과 귀, 입을 가린 원숭이 조각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나쁜 것은 보지 말고, 음란한 소리는 듣지 말고, 오만한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에는 원숭이 상이 있고 대웅전 계단 양쪽에도 화강암으로 된 나한상이 있다. 강화 전등사 나녀상(裸女像)은 법주사 팔상전 원숭이와 비슷하다.
전등사 원숭이상에는 2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창건설화에 등장한 원숭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공사에 지친 일꾼들에게 원숭이 4마리가 술을 가져다 줬다. 이 술을 자양강장제 삼은 일꾼들은 공사를 무사히 회향했다. 이를 감사히 여긴 아도대사가 원숭이 공덕을 기리기 위해 법당 네 귀퉁이에 원숭이 형상을 조각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불같은 사랑과 배신이 얽혀 있다. 전소된 전등사 대웅전 복원을 맡은 목수는 아랫마을 주모와 통했다. 노임까지 그녀에게 맡겼으나 돈에 눈 먼 주모는 불사가 끝날 무렵 줄행랑을 놨다. 상심한 목수는 대웅전 바깥 처마 들보 사이에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해 평생 업보의 무게에 짓눌리게 했다는 설이다.
이밖에 18세기 만들어진 해남 미황사 고압 스님 부도에는 몸체 받침에 원숭이가 새겨져 있다. 부산 범어사 독성전 기둥, 여수 흥국사 대웅전 뒷면 벽화에도 원숭이를 볼 수 있다.
사찰의 고건물 중 특히 앞면에 원숭이 상이 많은데 이는 사찰의 피뢰침 같은 역할이다. 불상 앞에서 나쁜 마음을 품으면 수해 등이 일어나기 쉽다는 설에 따라 사시(邪視)의 힘을 원숭이 쪽으로 돌려 사력을 감산시켜 사찰의 수원을 막는 뜻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325호 / 2016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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