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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섣부른 ‘대승관’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협상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협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질곡의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새 동력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협상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의 원칙을 지켜왔으니 이번 결과를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 큰 논란
박 대통령, 피해 할머니에

“대승적 견지서 이해” 호소
‘대승’ 이해부터 새로 해야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한일협상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인 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약속 없이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 등 일본의 희망사항만 고스란히 받아줬기 때문이다. 특히 당사자들은 “우리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외교참사’라는 말까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면 이 같은 논란은 국민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번 합의를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보지 않아서 생기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승(大乘, Maaha-ya-na)’은 자기 홀로 깨달음을 얻어 타고 가는 1인용 승용차가 아니라 누구나 차별 없이 올라탈 수 있는 정토행 초대형버스이다. 대승의 조건 중 하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다. 나도 좋고 상대도 좋아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순간 결코 ‘대승적’일 수 없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일본 정부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자금 등을 지원받으며 일본과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약속해줬다. 이 때문에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등 개인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배상 논의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런 여건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순전히 민간 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1992년 1월부터 지금까지 24년간 매주 수요집회를 열어오고 있고, 일본대사관 앞을 비롯한 국내외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워 일본의 잔학함을 지적해왔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점차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고, 결국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이 자발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기에 한국정부도 철저히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 맞춰 협상을 진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협상 전 한 번도 당사자들은 찾지 않았다. 민간의 노력으로 일궈낸 성과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아버렸다.

꽃다운 나이에 성노예가 되어 살았던 치욕과 분노의 세월. 흉터 마냥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애써 숨겨가며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 생의 막바지에서도 일본의 진정어린 참회와 명예회복만을 바라며 사는 팔순 구순의 할머니들에 또다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어찌 대승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은 이번 협상에 반색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협상 직후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지 않게 됐다고 평가했고, 아베의 부인은 이날 일본 전범들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에 참배하러 갔다. 일본 외무상을 통해 전달했다는 아베의 사과에 진정성이 전혀 없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불교에선 참회를 깨달음의 출발로 중시한다. 다시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처절한 참회가 선행돼야 악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에 참회는 요구해도 참회를 강요하기는 어렵다. 진정성 없는 사죄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결코 참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재형 국장
한국정부는 일본과의 협상을 단기적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비록 시일이 걸리더라도 일본인과 세계인의 양심을 향해 끊임없이 호소하고, 이를 통해 일본인들 스스로 주변국에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하도록 해야 했다.

그것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참다운 명예회복인 동시에 그 악업으로 인해 두고두고 업보를 감당해야 할 일본인들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이번 한일협상을 무효화하고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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