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년 만에 해본 빨래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1.04 14:08
  • 수정 2016.01.08 10:34
  • 댓글 0

빨래를 했습니다. 마침 날씨도 좋고 햇볕도 따뜻해서 속옷과 양말을 빨고 내복도 손으로 빨아서 빨래 줄에 걸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물기가 떨어지는 빨래를 한 발짝 떨어져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절에 계신 노보살님 덕분에
편히 지냈던 시간 부끄러워
노인만 남은 시골 풍경보며
그들 외로움 달랠 길 찾아야

가슴 밑에서 뭔가가 쑥 밀고 올라옵니다. 감동이랄까! 남의 빨래도 아니고 거대한 이불빨래도 아닌 일상의 옷가지 몇 개 빨아놓고 혼자 감동하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빨래입니다. 제가 미타선원에 온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빨래해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누군가가 대신 해주었던 것입니다. 직접 빨아 널어보고 걸려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그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옵니다.

제겐 고마운 노보살님 한 분이 계십니다. 올해로 77세가 됩니다. 작년 여름까지 10년이나 제 옷을 관리해주셨습니다. 그 보살님과의 첫 만남은 거사님이 돌아가시고 제가 오기 전 막재를 마쳤을 즈음입니다. 이 절에 있으면 거사님 생각이 더 날까봐 떠나기로 하고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이절 저절 다니셨답니다. 그런데 제가 새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다가 그냥 마음잡으시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도 갓 40을 맞았으니 아들 같기도 해서 보살펴 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저는 누구에게 빨래를 부탁해본 적이 없는데, 보살님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제 방에 들어올 명분이 없다고 하면서 굳이 하시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힘들 때도 함께하고 슬플 때도 함께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보살님도 손 떨림 증상이 와서 이제 그만하셔야 했지만 몇 년을 더 끌었습니다. 혹여 또 마음 붙일 곳을 못 찾을까봐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3~4년 전쯤부터 우리 절에 시민선방이 만들어졌습니다. 보살님은 왜 이런 것을 몰랐나 하면서 매일 정진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제 방에 들어오시거나 제 물건을 관리하지 않으셔도 마음 붙일 곳이 생긴 것입니다. 보살님과의 10년 세월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빨래가 널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보살님께 사진을 보내도 볼 수 없을게 뻔해 잘 간직했다가 동안거를 해제하면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보살님과 감회를 나누고 싶어 몇 번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는 말을 하지 않고 어디를 가면 섭섭해 하시더니 이젠 홀로서기가 되신 것 같아 너무 안심이 됩니다.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를 자식처럼 살펴주시는 노보살님들이 제 곁에 늘 계십니다. 아침이면 바쁘게 집안 정리를 하고 일찍 나오시는 모습을 보면 기쁩니다. 밤새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안심이 됩니다. 제게는 이분들이 가족입니다. 가족은 자주 봐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한솥밥을 먹는다고 해서 식구라고 합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그 노인들에게 가족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 분들과 함께 공양합니다. 그 분들의 식성을 보면 건강상태가 보입니다. 서로 얼굴을 보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게 가족입니다. 자기 삶을 살기에도 벅찬 환경 속에서 노인들에 대한 부양책임을 젊은 사람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회구조로 활로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인이 될수록 친구가 필요합니다. 동네의 큰 정자나무가 온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듯이 사찰이 노인들에게 큰 정자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빨래가 말라갑니다. 보살님들에 대한 고마움도 그렇게 사라질까봐 걱정입니다. 제도 앞으로 10년간 봉사할 기회가 있겠지요. 늘 받는 것이 많은 삶이라 세월이 갈수록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분들이 부처님 세상으로 잘 갈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