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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된기도

기자명 김용규

기도는 참회·정진의 시간이어야 한다

새해 벽두 친한 벗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태백산에 올랐소. 떠오르는 새 태양을 보며 우주를 주관하시는 그분께 이렇게 기도했소.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의 한 해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당신 아시죠? 내 가까운 사람 속에 당신 있는 것.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을 겁니다. 그분의 보살핌 있어 병신년 한 해 그대 소망하는 것 모두 이루기 바랍니다.” 애정 가득한 그의 문자는 따뜻했고 고마웠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고맙소. 내 사랑하는 벗. 그런데 기도하지 말아요. 차라리 다짐하세요. 그저 스스로에게 맹세하세요. 당신이 믿고 계신 그분은 아마 기도를 듣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분은 절실한 다짐이나 맹세만을 기억할 겁니다.”

연초만 되면 간절한 바람
기도라는 이름으로 표출
대부분 경건·간절함 놓쳐

이 시대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장소도 다양하다. 산에 올라서도 올리고 회당이나 절에서도 올린다. 대상도 다양하다. 해나 달, 혹은 바위를 향하기도 하고 주물로 빚어낸 어떤 인위적 형상을 향하기도 한다. 고아하거나 웅장한 나무 등 자연적 대상을 붙들기도 한다. 연 초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 주제는 대부분 한 해의 흐름일 것이다. 농부들은 입춘의 시간에 기도를 올린다. 무사와 풍년이 그들 소망의 중심에 있다. 입학시험과 취업, 자격 등 각종 시험이 넘치는 시대인 오늘날에는 합격에 대한 염원 역시 기도 주제로 가득하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온갖 기도로 가득한 셈이다.

기도는 어딘가 닿고 싶은 지점을 품고 있는 인간들이 발휘하는 독특한 정신 결집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도를 그렇게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정신 결집의 대상을 자신 밖에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힘으로 겨냥한다. 그런데 정말 외부적 힘에 기대어 내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기도는 사람들만의 일이다. 수만리 먼 길을 날아가야 하는 철새가 무사 비행을 기도한다는 소식을 나는 들은 적이 없다. 구정물 수채 구멍 근처에 태어난 돌미나리가 제 꽃을 피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도 없다. 가파른 절벽 위, 흙 한 자밤조차 허락받지 못한 그 불비한 자리에서 삶을 부여받은 민들레가 더 크고 화려한 꽃 이루겠다고 염원을 담아 기도한다는 소식도 없다.

기도는 사람만이 가진 간절하고 경건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람이라는 생명만이 가진 고유성 중 하나이다. 나는 종종 침묵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곱게 두 손을 모은 채로 겸허히 무릎을 꿇는 그 경건함 속에서 잃어버린 나와 마주한다. 또한 진짜 삶을 향한 간절한 염원 속에서 내 삶의 슬픔과 마주하고 그것에 눈물 흘린다. 또한 그를 통해 삶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 시간을 통해 종종 자(慈)와 비(悲)의 출발 지점을 품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 고유와 경건과 간절함을 놓치는 기도를 하고 있다. 참된 기도를 놓고 헛된 기도로 향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참된 기도는 참회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더 화려한 갑옷이나 가면을 갖출 수 있게 요행이나 돈벼락, 벼락 합격 따위를 가능하게 해달라는 염원은 참된 기도가 될 수 없다. 참된 기도는 자기 삶의 진짜 주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건한 성찰이 중심에 서야 한다. 참된 기도는 흘리거나 놓치거나 흩어놓은 것들을 다시 제대로 모으기 위한 정사(正思)와 정정(正定)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니 참된 기도는 외부의 힘에 의탁하는 구복(求福)이기보다는 내부를 향한 다짐과 맹세일 수밖에 없다. 참된 기도는 따라서 과거나 미래를 향하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여기의 자리를 보살피고 또 보살피는 나무나 풀처럼 정진하는 시간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문자를 보내준 귀한 벗에게 나는 오늘 이 글을 보낼 생각이다. 그리고 이렇게 문자를 넣고 싶다. “병신년 새해, 그대와 나 더 자주 참된 기도의 시간 가집시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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