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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행자가 경계할 것

기자명 성원 스님

아름다운 것도 마음서 내려 놓아야 수행자

▲ 일러스트=강병호

서신 잘 받았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제주에 넘치도록 부는 바람이 이토록 아름다운 뜻을 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난에 흔들리는 마음보다
칭찬에 고무되는 게 더 문제

산천초목 살찌우는 바람이라도
마땅히 초연해야 바른 수행자

상구보리의 길에 동행하는
동지 모두가 수행자의 도반

대승불교는 서원의 종교
바람 앞에 더욱 굳세져야

그렇습니다. 제주에서는 많은 바람 앞에 노출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내달려오는 자연의 바람도 바람이려니와 뭍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의 바람 또한 가득합니다. 육지 사람들은 휴식이나 힐링을 위해 제주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육지를 향한 바람은 또 다른 삶의 몸부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늘 바람이 불어 별달리 바람이라 의식하지 못하듯 먼 뭍을 향한 제주인의 바람도 일상화되어 그 간절한 바람이 바람 아닌 양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언어는 참으로 묘한 의미들을 내포하곤 합니다. 바람처럼. 부정의 의미와 긍정의 의미를 자주 공존시키곤 하지요.

굳이 세속팔풍이라 하셨는데 어찌 세속에만 우리들을 흔드는 팔풍이 있겠습니까. 팔풍에 흔들리는 삶은 출세간을 떠나 세속스럽다는 말이겠지요. 승가에서는 팔풍경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팔풍경계라는 말에서 바람(風)은 다소 부정적 견해이겠지요. 항상 우리의 고요한 마음을 흔들고는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덟 갈래 바람 앞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는 자아의 초라한 자화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난의 소리에 부글거리는 맘 가누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팔풍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접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비난하는 소리에서 오는 힘겨움은 결국 칭찬을 받을 때 그 소리에 빠져 부질없이 우쭐했던 기분과 무관치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바람은 비난과 험담만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과 격려에 고무되는 감정의 흐름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을 겁니다. 일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격려로 받는 활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고무되기 일쑤입니다만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우쭐함에 흔들리는 감정도 매우 문제시 됩니다.

험하게 불어 닥치는 바람 앞에서는 누구나 그 바람으로 인한 폐해에 대해 방어하며 맞섭니다. 하지만 춘풍호시절 고운 봄바람에는 마음을 탁 놓아버리고 바람에 취하기 십상입니다. 수행자가 항상 경계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험한 풍파만이 아닙니다. 살랑이며 불어와 산천의 초목을 살찌우고 꽃을 흔들어 결실을 미루게 하는 고운 바람, 여름 나무꾼의 땀을 씻어주는 바람, 나룻배를 밀어 강을 건네주는 고마운 바람까지 올바른 수행자라면 반드시 경계하고 초연해야 합니다.

참으로 힘든 것은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부터도 마음을 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출가수행의 외롭고 먼 길입니다.

무수한 역경계를 헤쳐 나온 불굴의 수행자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칭찬하는 순경계 앞에서 초라하게 허물어지기 쉽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바람 앞에서 우리의 참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도반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도를 같이 닦는 반려자. 이는 출가수행자를 상호 지칭하는 말만이 아닙니다. 함께 상구보리의 길을 나선 동지들입니다. 재가자든 출가자든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탁마하며 나아간다면 모두 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에 부는 바람을 함께 명상하며 탁마하는 길을 간다면 도반이요 같은 경전을 읽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일으킨다면 도반이라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바람을 서원으로 읽어내신 글이 자꾸 싱그러운 느낌을 줍니다.

대승불교는 서원의 불교입니다. 서원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접하는 대승의 불보살님들은 수행의 과거사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일체에 흔들림 없는 굳센 서원으로 한순간에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관세음보살도 일체 모든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구하겠다는 서원 앞에서 보살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지장보살 또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조차 미루겠다는 서원 앞에서 많은 부처님들의 찬탄을 받으시며 대원본존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이미 큰 서원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삶을 이루어가는 보살님께 굳이 이렇게 글을 드리는 것은 작금 우리들의 불교신행의 모습에서 서원의 가르침이 너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느껴져서입니다. 바람 앞에서 바람의 서원을 읽어 내셨으니 우리 흔들리는 팔풍경계 앞에서 작은 모습 보이지 말고, 바람 앞에서 대승의 서원을 더욱 굳세게 다져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중첩성이 매우 흥미로운 게 바람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일본의 어느 회사를 방문했을 때 사훈이 몽(夢)이라고 되어 있어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꿈은 허망함만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Dream’도 희망과 몽상의 중첩성을 내포하고 있네요.

삶의 이중성이 언어에서 다양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침없이 내게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꿈을 가져야 할지 꿈을 꾸어야 할지 꿈이라는 꿈을 다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새해는 꼭 바람[風]을 바람[願]으로 승화시키는 다시 한 번의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에 실려 날아 온 편지 참 좋습니다.바람[風]으로 날아와 잠시 잊혀져있던 바람[願]의 서원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주었네요. 새해 부처님 품안에서 새 꿈꾸시고 새 바람 가득한 시간 누리십시오.
제주 약천사서 행복한 사문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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