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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인과 공식

기자명 최원형

어릴 적부터 “왜?”라는 질문을 했다가 혼난 기억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왜?”라는 의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래든 나보다 어른이든 막론하고 어떤 말이나 이론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을 때 나도 모르게 “왜요?” 혹은 “왜 그래?”를 입에 달고 산 듯하다. 돌아보면 그런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왜?”가 오히려 내게는 큰 자산이 되었다. “왜”에서 시작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과학을 공부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여전히 이성보다는 감성 쪽으로 기울어져있지만, 나름으로 생각의 균형추를 맞추려고 노력했다면 그건 아마도 “왜”로부터 비롯된 의문 덕분일 것이다. 내가 목도한 어느 장면이나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갖는 버릇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 11월 하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파리에서 보냈다. 파리에서는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세계기후총회(UNFCCC)가 열렸고, 총회 기간 내내 그곳에서 활동들을 지켜보며 또 한국에서 할 일들을 구상하는 시간들이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하다는 수식어에는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인류의 공멸이 기정사실화되므로 어떻게든 그걸 막아보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많이 갈리기도 할 테지만 일단 이번 파리총회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아니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은 선회했다. 그런데 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해도 정확한 항로라든가 가는 동안 만나는 무수한 파고나 태풍 등의 난관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지 못하면 애당초 향하던 방향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만다. 이번 총회 결과는 겨우 방향을 잡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구는 왜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걸까? 삼척동자도 다 알다시피 탄소배출이 주원인이다. 강의 때 만나는 수강생들에게 기후변화의 원인을 물으면 자동차 운행에 따른 이산화탄소 발생을 가장 많이 얘기한다. 그도 옳다. 그런데 우리들이 간과하는 가장 중요한 이산화탄소 배출원은 바로 전기다. 이렇게 얘길 하면 많은 이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벽면에 붙어 그저 구멍 두 개 뚫린 콘센트를 보고서 그곳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놀라는 사람들에게 콘센트가 붙어 있는 그 너머에 뭐가 있냐는 질문을 하면 “얽히고설킨 전깃줄”이라 대답하는 이들도 더러 만난다. 맞다. 전깃줄이다. 그리고 그 전깃줄을 쭉 따라가는 상상을 권한다. 요즘은 땅 속으로 많이 들어갔지만 조금 먼 과거만 해도 동네에서 전봇대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연결연결 따라가다 보면 송전탑을 만나고 발전소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화력발전소이든 핵발전소이든. 오늘날, 산업화가 이루어진 곳의 문명은 전기라는 토대 위에 건설된 문명이다. 풍족함과 편리함과 쾌적함, 그 모든 욕망의 쾌락을 확장시켜주는 전기에게 또 하나의 얼굴이 숨어 있다.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이룩한 많은 인프라, 나아가 우리의 목숨까지 앗아갈 기후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다가 한 치의 의문도 의심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는데 붓다의 인과법을 배웠을 때다. 기후변화 역시 우리 삶의 인과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진다. 이 인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렇다면 뭘까? 태양, 바람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많이들 얘기한다.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할 것은 소욕지족의 삶이다.

이번 파리기후총회에서도 정책결정자들과 정치인들은 에너지 전환을 유효한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종교인들은 정의와 평등의 윤리, 욕망 조절을 통한 소박한 삶의 방식으로 전환을 요구했다. 풍요롭고 편리함에 길들어진 내 욕망을 먼저 다스리는 일, 이 시대에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할 당위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에 변화를 줄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 의문을 가져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자 끝이 될 것 같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 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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