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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파리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로 시작한다. 파리는 유럽의 꽃이자 진주이다. 파리를 처음 찾았을 때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벌한 황막한 야만의 땅 갈리아의 세느 강변에 서구문화의 정수가 한 송이 고혹적인 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었다.

2015년 파리에서 21세기 인류의 미래를 규정할 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즉 11월13일 130여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참혹한 IS 테러와 12월12일에 전 세계의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협정이다. IS 테러는 유일신을 믿는 배타적 종교가 인류에 얼마나 커다란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이 야만적 행위는 테러의 세계화(globalization), 즉 이제 세계 어느 곳도 테러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각성시켰다.

지구온난화로 파멸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소집된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0P21)에서 선진국·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2021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합의됐다.  

파리 협정의 요지는 참가 당사국들이 새 기후변화 체제의 장기 목표로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2℃보다 작은 1.5℃까지 제한하기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각국은 온도 상승 억제방안을 자국 여건·역량에 따라 정하기로 하되 대신 ‘진전 원칙’을 채택해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이 협정은 구속력이 있으며 국가별 이행여부는 2023년을 시작으로 5년 간격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검증을 받게 된다.

영국 가디언지가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라고 평한 파리협정은 화석연로 사용의 점진적 종료를 의미하는 세계경제의 코페르니쿠스적 대 전환이다.

이회성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의장은 “이 협정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나라는 대규모 화석연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중국·미국·캐나다·호주·사우디아라비아 등이고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잃을 게 없다”고 코멘트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이고 경제규모 세계 15위인 한국은 이미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37%를 줄이겠다는 감축안을 UN에 제출했다. 파리 협정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인 우리나라 경제가 입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성 의장은 파리 협정으로 이제부터 세계 각국이 완전히 다른 에너지 경쟁을 시작해야 함으로 어쩌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기조연설에서 “2030년까지 에너지 신산업을 100조원 규모로 키우고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산업에 강점이 있고 노력한다면 태양광, 지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과 효율화 부문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새 기후체제의 출범으로 이런 분야에서 연간 1800조원(세계 총생산의 2%)의 새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기민하게 이 새로운 기후변화 체제에 적응한다면 파리협정은 우리에게 시련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

2015년 파리는 21세기 전 세계인이 배타적이 아닌 형제애로써 서로 손을 맞잡고 해결해야 할 두 가지 중대한 글로벌 화두, 즉 테러와 기후변화를 제공했다. ‘미라보 다리’는 “손과 손을 붙잡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 갈 때”라 노래한다. 우리가 그리한다면 괴로움에 이어 오는 기쁨을 또한 기억하게 되리라.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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