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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전을 대하는 마음가짐-상

“개인적으로 보시를 받거나 돈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 불광산 불타기념관에 봉안되어 있는 불사공덕 동참자 명단. 대만 불광산 제공

“부처님 가르침이 5대주로 펼쳐나가고 있는데 불교에 재물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인간 세상에 행복과 안락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적인 처리에 있어서 없을지언정 미리 지출한 적이 없습니다. 신도와의 왕래 중 법규에 따라 금전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중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는 ‘빈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지금 저 역시 돌연 스스로를 ‘빈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간법에서 저는 제 자신이 ‘빈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가장 잘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은행에 저금통장을 갖고 있지 않고 돈을 모은 적도 없으며 저의 걸망이나 주머니 속에도 돈이 없습니다. 저는 금고를 갖고 있지도 않고 누군가의 이름으로 저금하고 있는 돈은 더욱 없습니다. 저 역시 불광산 대중과 같이 사중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복전금고에서 번호를 받고 사중에서 저에게 주는 약간의 용돈을 모두 그 복전금고에 저금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불자들께 저 개인이 모연한 적 있었습니까? 저는 여러분한테 모연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여러 해 이래로 신도들이 저에게 주는 빨간 봉투도 저는 받기를 거절하고 불사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주는 빨간 봉투를 거절하지 못했을 경우 저는 그 빨간 봉투를 사중에서 건네주어 처리하도록 합니다. 제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을 모두 사중에서 대신 해결해주고 있는데 제가 이 돈을 받아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쓸 곳이 없습니다. 설사 문화, 교육, 자선, 포교 등등 불교사업을 위해 곳곳으로 쓰이겠지만 금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각자 소임자의 업무이지 저 개인이 달리 나서서 챙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자신을 ‘빈승’이라고 감히 부르는 것은 저 자신이 정말 ‘빈승’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개인생각에는 가져오고 보내오는 물건들을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느낌이 있는데 저에게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유마경’에서 “나에게는 법락이 있기에 세속의 즐거움을 즐기지 않는다(吾有法樂 不樂世俗之樂)”라고 한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이치로 보았을 때 불광산의 이 많은 사업이 저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 많은 재물들과 관련이 있으므로 저와 인연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저 개인이 금전과 직접적인 왕래가 없지만 저와 금전과는 연분이나 신앙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금전에 대한 견해와 처리 방식에 대한 저 개인의 기본적인 생각과 마음자세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사례로, 불광산 공덕주 남풍철강회사 이사장 반효예(潘孝銳) 거사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었던 불광산 창건 초기 “돈이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지 이 도장을 가지고 은행에서 인출해서 쓰세요”라면서 저에게 도장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도장이 저에게 몇 년간 맡겨져 있었어도 저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고 나중에 그냥 돌려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정말 어려웠지만 저는 그분의 도장을 쓸 수 없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사중의 대중이 함께 나서서 해결하였고 저 자신은 정도를 지켜야 했습니다. 저는 불광산이 어렵다고 해도 불필요한 사단거리를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빈승에게는 빈승의 인격이 있어서 저는 제 것이 아닌 것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례로, 일월광그룹 창업주 장요굉영(張姚宏影) 여사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현재 90여세인 여사는 우리들이 ‘장엄마’라고 부르는 아주 신심이 깊은 분으로, 좋은 일에 동참하기를 좋아하는 자선가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분한테 화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분이 주동적으로 기부를 하겠다면서 저에게 불교를 위해서 써달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30여년 전, 우리는 아직 서로 만난 적이 없었는데 해외에 사찰을 지어서 포교해달라며 타이베이 보문사로 저를 찾아와서 미화 30만 달러를 내놓으셨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안목이 있는 분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19억 원을 주시면서 대학을 설립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대학설립이 제가 하려고 한다고 쉽사리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법령에 맞게 일정기준을 갖추고 설립인가를 받는 등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돈을 받지 않자 화가 난 듯이 “제가 지금 있어서 드릴 때 받지 않고 나중에 없으면 스님이 달라고 해도 저는 방법이 없어요”라고 하던 그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맞는 말이지만 일단 제가 돈을 받게 되면 당신은 저에게 “대학교는요?” “대학교는요?”라고 물을 테니 저는 그것을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대학을 어디에다 지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으로 대학도 없는데 어떻게 남의 돈을 먼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성격에는 없으면 없었지 미리 끌어다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빈승이 평생으로 돈을 대하는 원칙입니다.

세 번째 사례로, 과거에 월기(月基) 스님이 지니고 있던 3억원을 의엄(依嚴) 스님한테 맡겼습니다. 의엄 스님은 불광산 초기 입실 제자로 저는 이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습니다. 월기 스님은 저에게 선생님이 되는 분이어서 나중에 스님이 병원에서 입원 치료하는 모든 것을 다 제가 돌보아드렸습니다. 서하정사(棲霞精舍)를 지으면서 스님은 저에게 감원을 맡으라고 했고 저도 가서 도와드렸습니다. 심지어 홍콩에서 대만으로 오셨을 때 가오슝불교당(高雄佛敎堂)에서 스님을 주지로 모시도록 한 것도 다 제가 나서서 주선한 것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에도 저는 스님의 장례 등 뒷일을 보살펴 드렸습니다. 스님이 남기신 서하정사는 제가 감원을 맡고 있으니 마땅히 제가 절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저에게는 불광산이 있으니 서하정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일부 인사들이 서하정사의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나섰다고 하는데 저는 역시 일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월기 스님께서 3억원을 의엄 스님한테 맡겨놓았다는 것을 알고 저는 의엄 스님을 불러서 얼른 서하정사 신도들에게 돌려주고 월기 스님의 돈이니 정사에서 필요한 곳에 쓰라고 신도들에게 말해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의외의 재물들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서하정사가 법원에 소송이 제기된 지 이미 수십 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모르고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빈승은 평생으로 은행을 비롯해서 남들에게 돈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과거 제가 어려웠을 때, 가오슝토지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당시 은행에서는 절에 돈을 대출해주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은행과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도 잘된 것이 가오슝토지은행에서 거절당한 이후로 빈승은 일생으로 남들과 대부관계를 전혀 만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의 성격을 잘 아는 신도들이 공양금을 건네면서 항상 저에게 진지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스님 개인한테 드리는 거예요. 사중에 주지 말고 불광산에 내놓으셔도 안돼요”라고 합니다. 저라는 사람이 다 사중의 것인데 어찌 몸뚱이 이외의 물건이라고 사중 소관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많은 신도들이 자신들의 공양보시를 저한테 개인적으로 받으라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저에게는 오직 전체적인 사중이 있을 뿐이라서 저는 항상 사중의 입장에서 그들과 왕래를 합니다. 개인 이름으로는 금전을 모으지 않는 것이 저의 원칙이니 이를 ‘빈승’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 정식으로 전 세계의 신도들에게 선포합니다. 저는 신도에게 화주한 적이 없으며 돈을 빌린 적도 없습니다. 이는 바로 저의 일생이 ‘빈승’이 될 수 있었던 인격적 보증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모든 신도와 저의 관계는 불법의 인연으로 맺어진 법연(法緣)이므로 사적으로 금전적인 왕래가 없습니다. 저는 신도에게 저를 위해서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저 개인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도의 능력을 빌려서 도움을 받고자 한 적도 없으며 무슨 가치가 큰 물건을 신도로부터 빌린 적도 없습니다. 모두 다 불법의 연분으로 교류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왕래는 항상 불법을 표준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실제 불광산에서 불사를 하려면 필히 자금을 모아야 하는데 불광산은 자금조달에 있어서 제도가 있습니다. 사중에서 자금을 모으고자 하면 주지가 공고를 하고 세상의 모든 인연중생들이 이를 알고 자연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찾아옵니다. 이 역시 저 개인과는 관련이 없고 인연 있는 사람과 불광산 간에 만들어지는 연분입니다. 제가 주지를 하고 있을 때도 절을 세우기 위해서 자금을 모은 적이 있지만 돈이 제 손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권한을 가진 소임자는 돈을 관리해서는 안 되며, 돈을 관리하는 소임자는 다들 권한이 없는 작은 소임자가 책임을 맡도록 해야 재물과 권력이 나뉘게 된다고 저는 항상 주장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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