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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안도현의 연탄 한 장

기자명 김형중

온몸 불태워 보여주는 ‘보살도’

또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추위를 녹여주는 연탄은
불보살님 자비로운 마음
자기 희생해서 이익 주니
‘연탄보살’ 부르기에 충분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지 못하면서 살았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삶이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남기 위하여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다. 그러니 옆에 누가 굶어 밥을 먹지 않는지,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지 모르고 내 일만 챙기면서 살아 왔다.

이제 내 나이 이순(耳順)이 가까워 나를 바라보니,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바라보니 부끄러움뿐이다. 짐승처럼 마냥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왔다. 그러니 한 장의 연탄처럼 남을 위하여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데워서 공양할 줄 몰랐다. 진심으로 남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할 줄 몰랐다.

추운 겨울날 뜨거운 불을 피워서 추위를 녹여주는 연탄의 고마움은 고통 받는 중생을 보살피는 불보살님의 자비로운 마음이다. 이 시를 수없이 되뇌이며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앞으로 남은 삶은 기꺼이 내 이웃을 위해서 함께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한 장의 연탄이 되리라.’

‘연탄 한 장’은 인간을 사랑하는 시인의 자애로운 마음이 흠뻑 우러나는 좋은 시이다. 촛불은 스스로 제 몸을 태워서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 우리 불자들은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만 중생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하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15살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법당에서 부처님 전에 향 사르고 촛불 밝히면서 그렇게 다짐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추위에 고통 받고 있는 옥탑방 이웃을 위해 한 장의 연탄재가 되지 못했으니 부끄럽다.

선친께서 목포중앙연탄 공장을 10여년이나 운영하였는데, 정작 그 자식은 어리석어 연탄의 깊은 보살정신을 몰랐다. 백담사 무산복지재단에서 230명의 봉사자가 참여하여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폐광촌의 369가정에 연탄 3만7000장을 배달하는 불사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올 강원도의 겨울은 따뜻하겠다.
석가모니가 전생에 구법할 때 나찰에게 몸을 던져 열반 사구게의 진리를 구하였고, 사냥꾼에 쫓기는 비둘기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허벅지 살점을 떼서 보시한 사신(捨身)공양의 일화가 있다. 연탄은 무정물이지만 자신의 온몸을 불태워서 인간에게 이익되게 하니 가히 연탄보살이라 할 만 하다. 이 시의 제목을 ‘연탄경’이라 붙여도 좋겠다.

삶이란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 사는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필자에게, 시인의 삶은 기꺼이 남에게 한 장의 연탄이 되겠다고 노래했다. 이것은 석가모니나 예수의 삶이다. 중생이 아닌 보살의 삶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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