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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전을 대하는 마음가짐-중

“가난하고 어려워야 발심하고 정진하고 분발합니다”

▲ 불광산 종무위원 스님들이 수행과 전법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 100만명이 학교건립에 동참했습니다. ‘일필자’(一筆字)를 써서 포교를 위한 공익신탁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재물에 대한 관념은 신도는 잘살고 절은 가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불광산의 모든 일은 다 역대 주지 스님이 맡아서 하고 있는데, 현 주지는 제9대 주지로서 종무위원회를 대표하여 수많은 업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 개인은 32년 전에 이미 주지 직무에서 물러났으니 불광산 재무와 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저 역시 불광산 신도 가운데 한 명으로서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신앙의 중심인 불광산에 기꺼이 보시하고 즐겁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설립하는 일처럼 현재 대만 불자들은 지식수준이 아주 높아져서 사찰불사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교육불사도 중요하다는 관념 또한 갖고 있어서 인재양성을 위해서 다음 세대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꺼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만인 교육불사 운동’ 제안을 하면서 진행기획 일부를 담당자들에게 제공하였지만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참견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두 다 불광산 역대 주지들과 대학건축을 집행하는 자혜 스님 등 담당자들이 처리하였습니다. 이 또한 기한이 정해진 것으로 3년 동안 한 사람이 매월 3700원을 냈습니다. 기한을 정한 것은 무기한이란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외로 불타기념관은 방대한 건축비용과 매일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비용 지출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사찰 1000곳과 개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불타기념관 불사에 37만원의 찬조금을 내고 동참하는 사람의 이름을 돌 비석에 새겨서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동참으로 이곳의 모든 시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불타기념관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물론 이 희사금 역시 제 손을 거치지 않았고 이 많은 일들은 다 공덕주회 소임을 맡고 있는 자장, 영평, 만익 등 스님들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불광산 총림은 시방대중의 공양을 받고 있으므로 많든 적든 사중에 모아둔 돈이 있게 되더라도 저는 단지 불광산 수많은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고 저는 여전히 빈승으로서 대중들과 똑같은 보살핌을 받으며 모든 것은 사중에서 일괄적으로 안배하기 때문에 금전 언저리조차 가까이 할 일이 저한테는 없습니다.

심지어 사중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저도 일을 하여 사중에 기여하고 있는데 왜일까요? 제가 책을 출판하니 저에게는 원고료와 인세수입이 있지만 모두 다 사중에 내놓고 개인적으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또 일필자(一筆字 : 스님께서 시력을 잃으신 관계로 종이에서 붓을 떼지 않고 한 번에 쓰는 글씨, 역자주)를 써서 공익적인 용도로 쓰는데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글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필자로 모인 돈이 도대체 얼마인지 저는 물어본 적이 없으며 전부 다 공익신탁기금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저 개인이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위원회 회의를 거쳐서 결정됩니다. 저는 이 한평생 금전과 연루되지 않으려고 하면서 개인 것을 공(公)으로 돌리면서 살았으니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빈승은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돈을 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중 공무로 비행기를 타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해서 차비가 필요하면 사중에서 대신 처리해줍니다. 저의 속가 가족은 친가 쪽으로는 친척이 많지 않고 외가 쪽 친척은 많은 편입니다. 저는 중국대륙과 대만이 처음 왕래를 시작하였을 때 약간의 물건들을 사서 마음을 전달한 적이 있지만 이 또한 제 능력이 닿는 상황에서 원고료와 갖고 있던 돈으로 약간의 물건을 전달하였습니다.

젊었을 적으로 기억하는데 언젠가 먼 친척이 “중이 가진 돈은 다 염불해서 번 돈이야”라고 저를 비웃으며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 인격에 대한 가장 큰 상처이고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염불해서 받은 돈이라 할지라도 수고를 통한 소득이지만 하물며 이 돈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노력을 통한 수확일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저를 우습게 보는 것으로, 친척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으니 저는 왕래를 끊었습니다. 불교에 몸을 담고 있는 저는 이러한 친척의 인정에 있어서 빚을 지지도 않고 받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금전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불교에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는 사람과는 불법의 인연에서 저는 왕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병이 있기 때문에 매번 병원에서 퇴원할 때마다 시자에게 사중의 돈을 쓰지 말고 사중의 복전금고에 저금해 놓았던 돈을 찾아와서 모든 입원비용을 내도록 합니다.

빈승이 80세가 되었을 때, 저에게 얼마의 돈이 있는지 제자에게 물었더니 7억5000만원이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돈이 있는지 저는 아주 의아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은 좋다고 하겠지만 도리어 저는 두려워서 모두 인출해서 공익신탁기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직책이 없으니 홀가분하다”고 하는데 저는 “재산이 없으니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평생으로 즐겁고 걸림이 없었던 것은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물론 불광산을 오랫동안 이끌어오고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사업을 펼쳐왔으니 제가 계산이 엉망이고 금전적인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재물을 취하는 이치에 있어서 저 나름의 ‘성운식’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저는 ‘재물은 신도에게 쌓아둔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출가 제자들에게 우리는 ‘재물을 신도한테 쌓아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가령 신도가 자신의 능력부담에 넘게 지나친 신심을 내는 경우 저는 사중의 소임자에게 희사금을 당사자에게 되돌려 주라고 합니다. 아주 신심이 깊은 홍콩에 사는 신도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자혜 스님에게 시킨 적이 있는데 그 신도가 저한테 항의하러 일부러 대만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신도가 부유해지도록 해야 불교도 부유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신도가 가난해지면 안 됩니다. 불교사업에는 재물이 필요하지만 우리 개인은 돈을 가져도 필요한데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도는 사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신도에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희사금이 지나치면 필히 본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물을 절에 쌓아두거나 불교가 갖고 있으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모든 개인은 다 절에 소속되어 있고 모든 사찰은 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불교 안에서 우리에게 무슨 재물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불교 신도들이 모두다 부자가 되도록 하고 그들이 부유해지면 불교 역시 부유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재물에 대한 첫 번째 관념입니다.

둘째, 문화교육사업을 펼쳐서 불광산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학을 설립하고, 이동도서관, 이동병원을 만들어서 시골과 산골오지에 의료혜택과 도서책자를 전달하고 신문사 설립과 텔레비전 방송국 운영 등등의 문화교육사업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업을 합니까? 그 목적은 불광산을 ‘가난’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가난이 나쁘다고 여기지만 저는 가난이 불광산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당신은 나아지려고 분발하고 부지런히 수고하며 노력하고 정진하며 나태하지 않고 사중을 발전시키고자 발심하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가난하지 않으면 이러한 에너지가 어떻게 발산되겠습니까?

빈승이 역사적으로 봤을 때, 부유한 사찰이나 부잣집 자제들이 있는 돈으로 즐기고 쓸 줄만 알고 발전하려고 애쓰거나 노력이라는 것은 모르다가 결국에 문제를 일으키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워야 사람은 고군분투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서 적극 애쓰게 됩니다. 수행자는 약간의 병이 있어야 신심을 더 내게 된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래서 수행에도 어느 정도의 궁색함이 따라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일생을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기 때문에 불교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불교를 위한 사업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셋째, 신도가 정재를 보시하는 마음을 소중히 아끼는 것입니다.

저는 신도가 큰돈을 가져와서 희사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불광산에 큰 보시를 하는 공덕주가 없지는 않지만 우리들 사이는 마치 군자의 교류(君子之交)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3000원, 5000원의 보시금을 내는 많은 신도들과 그들의 보시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저는 불광산 제자들에게 신도가 불교에 보시한 몇 천원이 어쩌면 그 사람의 하루치 반찬값일 수 있고 한 달 치 월급 몇 퍼센트의 수입일 수도 있는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사중에 희사한 것인데 어찌 우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며 항상 가르칩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에는 모든 공덕에 대해서 다 받아들일 수도 있고 베풀 수도 있다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불교를 위한 사업을 펼치고자 한다면 제가 받지 못할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 역시 기꺼이 베풀 수 있으니 좋고 선한 일이기만 하다면 저에게 능력이 있는데 제가 왜 베풀어 주지 못할 것이며 제가 왜 보시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는 것’과 ‘받는 것’ 가운데서 저의 일생은 ‘준 것’이 ‘받은 것’보다 더 많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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