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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전을 대하는 마음가짐-하

“출가자에게 저금은 800만원이면 충분합니다”

▲ 불광산 성운 대사가 8m 길이의 넓은 탁자에서 도량신축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제자들에게 저는 4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의 저금은 갖고 있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만일 속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자신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사고자 하는데 쓸 수 있는 개인적인 돈을 약간 갖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받는 것’ ‘주는 것’에 있어서 저는 ‘주는 것’이 즐겁고 ‘받는 것’의 경우 고통은 아니지만 ‘부담’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으로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해 ‘남에게 신심을 주고, 남에게 기쁨을 주고, 남에게 희망을 주고, 남에게 편리함을 준다’라는 업무지침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업무지침을 실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넷째, 보시는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곤란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불광산 신도들에게는 정말 애틋한 면이 많습니다. 불광산을 위해 수시로 돈을 내놓고 회비를 내기도 하고 인등을 켜고 행사에 희사금을 내고 나서는, 또 저의 행사에 동참금을 내면서 일 년 동안 사회와 인생에 도움이 되는 행사에 수없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신도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기쁘게 보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불광산 제자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교육에 열심인 사람에게는 문화사업 동참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고 문화사업에 열심인 사람에게는 교육 쪽으로 추가적인 지출을 하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자선사업에 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선활동에 전념하도록 해주고 법회참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법회에 참석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렇게 구분해 주어야 신도들의 부담이 무겁지 않고 신앙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신도 스스로 힘들어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걱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쁘게 보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불교계의 지도자로서 신도들을 이끌면서 신도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고 신도의 수고를 인정해주며 신도의 모든 것을 잘 알아주기란 쉽지 않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래서 신도가 사중에 무엇인가를 다시 내놓았을 때, 우리도 신도에게 무엇을 또한 주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들 “베풀어라, 베풀어라, 베풀어야 들어온다”고 말하는데 우리들 자신도 이를 따라야 합니다. 저는 신도들에게 불광산에서 식사할 때 돈 내지 말라고 하고 절에서 밥을 먹는 것이 바로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항상 말합니다. 보시를 하는 당신에게 공덕이 있듯이 남들의 보시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공덕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절에 가서 기부금을 내고 불전을 놓는 것이 공덕인 것처럼 절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도 공덕이 있습니다. 불가와 맺은 인연은 꼭 무엇을 주어야 보시이고 공덕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받는 것도 연분이고 공덕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베푼 이와 받는 이 모두 다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대성(大醒) 스님이 저에게 “‘스님이 차 드시는데 쓰세요’라며 신도가 주는 봉투에는 ‘차 마시는 돈’이라고 적고 ‘스님, 과일사서 드세요’라고 하면 거기에는 ‘과일 사먹는 돈’이라고 써 놓는다”고 했습니다. 이유인즉 “신도의 보시금이 서로 섞이면 안 된다”면서 “인과가 잘못 헝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은 항상 차 마시는 돈은 차를 마시는 용도로, 과일을 구입하는 돈은 과일을 구하는 용도로 쓰면서 공덕의 항목별 용도를 적어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전은 서로 통용해서 쓰여야 하고 잘 쓰이기만 한다면 이 사람이 쓰던 저 사람이 쓰던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금전은 사회대중이 공유하는 것이므로 저는 이런 사사로운 부분에 구분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타기념관을 다 짓고 나서 불교사찰연합회 회의를 여러 번 개최하고 “불타기념관은 본래 모두를 위한 장소이니 모두들 동참해 행사를 해도 좋고 혹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나 이 장소를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속담에 ‘천 개가 넘는 방이 있는 빌딩을 가졌어도 잠자리는 여덟 자를 넘지 않고 전답을 수없이 많이 가졌어도 하루에 몇 끼를 먹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끊임없이 비교하고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한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만큼 잠을 자고, 얼마만큼 쓰는가는 다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그 범위를 넘어섰다면 당신은 빚을 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제자들에게 저는 4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의 저금은 갖고 있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만일 속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자신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사고자 하는데 쓸 수 있는 개인적인 돈을 약간 갖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을 사중의 복전금고에 저금해 두어도 사중에서는 개인 소유에 대해서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인간불교적인 성격입니다.

불광산에서 큰 소임을 맡고 있는 자혜, 자용 스님이나 심정, 심배 스님 등처럼 불광산 원로급 모든 중진 스님들이 저를 따라 출가한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지금 저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고 물어 보더라도 아마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중에서 쓰는 모든 용도에 따른 지출에 대해서 사중에서는 제도에 따라 처리해 주고 있습니다. 불광산에서 누리고 있는 선열과 법희를 그들은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불광산 사중에서는 불광산 제자들을 위해 의료와 질병간호, 은퇴양로 등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제자들의 의식주와 교통을 사중에서 전부 부담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 제자들이 부모님을 보살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현재 적지 않은 제자들의 부모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의지하면서 불광산 양로원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돕고 보살피고자 하고 있는데 어찌 제자들 부모님을 돕고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겠습니까? 물론 제자들도 나름의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하여 부모님이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빈부 균형과 평등을 추구하면서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 제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불교 육화경(六和敬 : 불교승단에서 서로 화목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생활원칙. 역자 주)의 승단에서는 본래부터 ‘이득은 골고루 나누며 화합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공산주의보다 더 공산적으로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 곳이 우리 불광산 입니다.

현재 개산 50년이 되는 불광산에서는 최고 의결기구인 종무위원회 회의를 자주 개최하는데 한 사찰이 100년, 1000년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려면 위원들이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무위원회 모두에게 금전적인 축적만 생각하면 안 되고 모두들 수행력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수행을 걱정해야 하며 수행에 힘쓰도록 이끌어 수행력을 갖추게 되면 돈이 없을까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들 역시 대중이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 끼니가 해결됐다고 해서 내일을 기다리고 내일 먹고 나서 모레를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대중의 수행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어찌 미리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 말뜻은 우리 개인은 조금 부족하게 살더라도 사찰에서는 일 년 양식을 기본적으로 갖추어 둘 수 있지만 삼 년 치 이상을 쌓아두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삼 년 치가 넘으면 축적해둔 것이 되므로 규정에 어긋납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을 모으는 것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과거에 부처님과 아난이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져있는 황금을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아난아, 이것 봐라, 이것은 독사다”라고 하셨고 아난은 “그렇습니다. 이것은 독사입니다”라고 대답한 뒤 그냥 지나쳐 걸어가셨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 부처님과 아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달려와“독사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 저건 황금이잖아”라며 주워서 신이 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의 창고에 있던 황금을 도둑맞은 것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인도의 법률에 일반백성은 개인이 황금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라의 황금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은 부자는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아, 그건 정말 독사구나”라고 했고 아들은 “아버님, 정말 독사였네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부자는 괴로움을 겪고 나서야 금전이 좋은 일에 쓰이는 정재가 되기도 하고 독사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어느 하루 부처님께서 아난과 길을 가다가 죽은 지 오래된 쥐의 썩은 고기를 차지하려고 까마귀 한 무리가 몰려들어 양보하지 않고 죽어라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이 썩은 고기를 차지하려는 이 까마귀들처럼 말법시대에는 내 제자들도 세간의 재물을 차지하려고 서로 죽어라 싸울 것이다”라고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방대중의 공양금을 마땅하게 쓰는데 있어서 사실 저에게 별다른 비밀이 있지는 않습니다. “마치 허수아비가 꽃과 새를 보듯 한다면, 만물이 거짓으로 둘러싸여도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고 하였듯이 이 모든 것들이 본래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며 시방대중의 것이므로 저에게 있어서는 단지 “꽃이 만발한 수풀을 지나가도 꽃잎 한 조각 몸에 들러붙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일 뿐입니다. 이 또한 제가 자신을 ‘빈승’이라고 감히 말하는 원인입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탐내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자신을 ‘빈승’이라고 하겠습니까?

끝으로 한 가지 더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불광산 개산 초기 일부 스님네들이 불광산을 찾아와서 둘러보더니 불광산 앞쪽 고병계(高屛溪 : 가오슝과 핑동지역 사이를 흐르는 하천. 역자 주) 물길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보고 “불광산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 물이 다 흘러나가니 재물을 가두지 못한다”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물이라는 것은 법재(法財)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길게 흘러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부처님의 법수(法水)가 오대주로 널리 흘러가게 하자”는 말은 바로 우리들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재물을 쌓아둘 필요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구촌 오대주로 널리 전해지도록 하고 있으니 불교에 재물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인간 세상에 행복과 안락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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