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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님과 미륵님의 대결

석가불이 탐욕스럽게 등장
기득권화 된 불교에 반발
불교의 현실참여는 필수

1923년 8월 함흥 지역 큰무당 김쌍돌씨에게서 채록한 ‘창세가’의 내용은 대단히 흥미롭다. 우주의 탄생과 인간 세상에 불화가 시작된 과정을 석가와 미륵의 대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가’에 따르면 애초 미륵님이 계시던 세월은 태평성세였다. 그런데 돌연 석가님이 내려와 이 세월을 빼앗으려 했다. 미륵님이 아직은 내 세월이라고 하자 석가님은 미륵님의 세월은 다 갔고 이제는 자신의 세월이라고 우겼다. 결국 미륵님의 제안으로 내기가 이뤄졌고 지는 쪽이 떠나기로 했다.

내기는 세 번에 걸쳐 이뤄졌다. 첫 번째는 줄에 매달려 있기, 두 번째는 여름 강물 얼리기였다. 두 번의 내기에 모두 진 석가님은 다시 한 방에 누워 모란꽃을 먼저 피워 올리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대결이 열렸다. 미륵님 무릎에 모란꽃이 피어오르자 석가님이 그 꽃을 가져다가 제 무릎에 꽂았다. 미륵님은 석가님의 속임수와 성화에 못 이겨 세상을 넘겨주었다. 미륵님은 석가님의 세상이 다하면 찾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서럽고 힘겨운 말세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불교에 대한 상식만 있어도 ‘창세가’의 내용이 터무니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세불인 석가모니는 탐욕과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혜롭고 자비로운 존재다. 그런데 ‘창세가’에서는 석가모니를 56억7000만년 뒤에 온다는 미래불과 다투는 탐욕스런 존재로 설정했다. 왜 그랬을까.

문학평론가 김현(1941~1990)은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 석가불로 대변되는 불교가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된 것에 대한 반발로 풀이했다. 지배계층에 의해 자행되는 극심한 차별과 착취에 저항하기보다 윤회와 업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기성불교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분노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실제 미륵신앙이 형성된 후 고대에서 근대까지 미륵의 이름을 빌린 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는 지배계층이 이념화한 석가적인 것을 피지배계층이 미륵적인 것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평등공동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의 뿌리 깊은 신분차별 제도인 카스트를 철저히 부정했다. 귀천은 태생에 의해 정해지지 않으며, 누구나 정진해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불교는 기득권화되고 평등사상은 크게 훼손됐다. 대중들의 고통을 뒤로 하고 권력자의 편에 섰던 것이다.

불교가 대중에게서 멀어질수록 불교의 생명력은 퇴색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종교가 짧은 시간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 불교가 현실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맞닿아 있다.

달라이라마는 ‘종교를 넘어’라는 저서에서 “무관심은 그 자체로 이기심의 한 형태”라고 지적하며 “우리가 도덕에 접근하는 방식이 진정으로 의미 있으려면 당연히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 이재형 국장
최근 조계종, 진각종 등 종단과 교계 단체들이 잇따라 새해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 노동, 인권 등 사회 전반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불교계의 이 같은 사회참여 노력은 불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지 않다. 오히려 불교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일이며 불교의 가치를 세상에 구현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보다 큰 뜻이 있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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