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대둔산 마천대-마애불-태고사
27. 대둔산 마천대-마애불-태고사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6.02.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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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길 따라가니 ‘은빛 깨달음’ 기다리고 있었네

▲ 한파를 거슬러 온 나그네에게 오늘의 산행을 허락한다는 듯 하늘은 구름을 걷어 내고 푸른 길을 열어 주었다. 저 너머에 태고사가 있다.

총 길이 36m, 계단 127개, 경사 51도. 대둔산 삼선계단 앞에 섰다. 얼핏 올려 보았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아찔하다. 발 끝 하나 헛디디고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뒤로 휘청거리면 100m 절벽 아래로 추락이다. 철제 난간을 ‘콱’ 움켜잡았다. 이 계단을 건너 이 산의 정상 봉우리 마천대를 넘어야만 태고사에 닿으니 기필코 올라야 한다.

원효가 ‘도인 출현’ 예언하고
덩실덩실 춤추었던 태고사엔
안온·호쾌함이 절묘히 깃들어

경허의 세 달 중 하나인 수월
그 손자 도천이 선지식 나기를
바라며 50년 간 두문불출 가꾼
잣나무 숲이 수행가풍 보여줘


당초 안심사(安心寺)를 들머리로 태고사를 날머리로 떠난 길이었다. 태고사는 익히 알아도 안심사를 아는 이 의외로 드물다. 신라 선덕여왕 당시(638년) 부처님의 치아 1개와 사리 10과를 봉안한 금강계단 있다는 사실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많다. 조선 세조 때 이 사리 좀 더 진중하게 봉안키 위해 부도전 조성했는데 세조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글씨를 써 보냈고, 그 어필 보관하기 위한 어서각(御書閣)도 함께 건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서각은 대웅전과 함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됐다.

▲ 대둔산 정상 설경. 오른쪽 높은 봉우리가 '마천대' 다.

비록 사진으로 만났지만 절은 나그네를 들썽거리게 했다. 산사 앞에 펼쳐진 산은 부처님께서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해 ‘열반산’ ‘와불산’ 이라고도 불린다. 절 뒤편으로는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룬 암릉과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천년 넘는 역사와 태산의 절경을 안은 고찰을 품고 설산을 오른다면 그 얼마나 가슴 벅차겠는가! 허나, 그 마음 접었다.

안심사서 마천대로 향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틀 전부터 대설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큰 폭설도 내렸다. 길 찾기 녹록치 않을 터. 기온은 이미 영하 15도를 찍고 있는데 저 눈바람 속이라면 체감온도는 20도를 훌쩍 넘을 게 분명하다. 전문 산악인도 아닌 사람이, 대둔산은 초행인 사람이 저 눈보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부호를 끝내 떨쳐낼 수 없어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로 들어섰다.

▲ 길이 36m, 127 계단, 경사 51도의 삼선계단. 금강다리와 함께 대둔산 상징이기도 하다.

대둔산 정상 봉우리 마천대는 한파를 거슬러 오른 나그네의 산행을 허락한다는 듯 희뿌옇게 어렸던 구름도 걷어 내고 푸른 하늘 길 열어 둔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왕관 바위를 필두로 장군바위와 칠성봉이 우뚝우뚝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름 모를 암릉이 보란 듯 줄지어 서 있는데, 그 너머의 천등산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저 끝에 아스라이 서 있는 산이 아마도 지리산 천왕봉일 게다. 진묵대사가 창건한 봉서사가 자리하고 있는 완주 종남산은 어디쯤 있나! 그 진묵대사 이 산에 오른 후 그 어떤 걸림도 털어버린 듯한 오도송 토해냈었지!

‘하늘을 이불로 산을 베게 삼아 땅에 눕고/ 구름 병풍에 달을 촛불로 바다를 술 삼아 마신다/ 한껏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 추려하나/ 긴 소매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하노라’

▲ 대둔산 정상서 내려다 본 '금강구름다리'.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금강구름다리는 높이 70m, 길이 50m에 이른다.

원효 스님이 이 봉우리 가리켜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며 마천대(摩天臺)라 이름 하고는 “이 산서 도인이 세세생생 출현할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저 너머 태고사 터를 보고는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도 추었다지. 신라의 의상, 고려의 보우, 조선의  진묵 대사가 태고사를 찾은데 이어 근대에 이르러서는 수월 스님도 그 도량서 정진하며 한 소식 했으니 원효의 그 한마디는 결코 허투루 던진 게 아니었다.

수월! 경허 선사 문하에는 수월(水月), 혜월(慧月) 그리고 월면(月面, 만공·萬空)이 있었는데 이를 일러 후학들은 ‘경허의 세 달’이라 칭했다. 수월은 북간도서, 혜월은 남녘땅서, 월면은 중간 지점인 예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법을 펼치며 꺼져가던 선풍(禪風)을 새롭게 일으켰다. 북간도서 주먹밥과 짚신을 손수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줬던 수월 스님은 말년 즈음  만주 송림산 아래 터에 화엄사 지어 놓고는 그 곳서 유유자적하게 밭 일구며 8년을 지내다 열반에 들었다. 놀랍게도 수월 스님이 입적하자 호랑이와 새는 물론 산천초목이 우는가 하면 화엄사에서는 7일 밤낮 동안 상서로운 빛이 끊이지 않고 내뿜어졌다고 한다.

▲ 마천대서 바라 본 왕관바위 쪽 설원.

설원 속에 자리한 태고사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극락보전 뒤편으로는 의상봉과 관음봉이 서 있고, 탁 트인 전망 저 끝에 오대산이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다. 안온함과 호쾌함이 절묘하게 깃든 도량이다.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승지(勝地)를 논하지 말라” 했던 만해 용운 스님의 일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밤새 내린 폭설 온 몸으로 안은 채 우뚝 서 있는 지장전 앞 잣나무가 늠름하다. 경내 살펴보니 지장전, 극락보전, 관음전, 보현전 주변은 물론 종각 주변에도 무수히 많은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 차 있다. 아! 도천 스님이 50년 동안 키웠다는 그 잣나무 숲이다. 수월 스님의 상좌가 묵언 스님이고, 그 묵언 스님의 상좌가 도천 스님이다.

▲ 저 돌문(석문·石門)으로 들어서야 태고사에 닿는다. 암벽 석문(石門)은 태고사서 공부한 바 있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1962년 도천 스님은 움막 하나 짓고 나물죽 한 그릇 공양으로 정진해 가며 6·25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태고사를 복원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그 시작은 잣나무 심는 일. 잣으로 쌀을 사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부처님 가피로 태고사 중창하겠다는 깊은 뜻이 담긴 불사였다. 작은 시주라도 들어오면 곧바로 묘목을 사 심었는데 30년 동안 심은 잣나무만도 5천주. 그러나 수확은 별달리 없었다. 잣이 익기도 전에 산짐승들이 따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 뻔히 알고도 스님은 별다른 조처도 하지 않았다. 산짐승에 주는 공양도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과 다름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리라. ‘가는 곳마다 부처요, 하는 일마다 불공’이라 했지 않은가.

▲ 태고사 대웅전 전경. 나뭇가지에 앉은 눈덩이가 폭설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바람도 세차게 들지 않는 도량임에 분명하다.

수월 스님도 말년에 8년 동안이나 직접 밭을 일궜고 도천 스님은 평생 동안 일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 말라’는 백장청규의 정신이 올곧이 배어 있는 도량이다. 두문불출 한 채 50년 동안 지금의 태고사를 일군 도천 스님은 2011년 9월 적멸에 들었다. 생전에 도천 스님은 태고사 복원에 매진한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이 성지서 정진한 후학들 모두 번뇌의 굴레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 이끌 선지식 어서 나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내포되어 있다. 원효와 만해가 품었던 그 뜻과 맥을 같이 한다.

▲ 종각을 받치고 있는 듯한 잣나무가 폭설에도 꿈쩍 않고 서 있다. 50년 동안 두문불출 한 채 태고사 불사를 주도했던 도천 스님이 심은 잣나무다.

설원 속 태고사 경내를 한동안 걸었다. ‘밭을 일군다는 것’은 곧 ‘마음을 일구는 것’이라고 잣나무 스쳐 온 바람이 속삭이는 듯하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대둔산 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케이블카 매표소 왼쪽으로 등산로가 있다. 금강계곡을 따라 동심정 휴게소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그러나 동심바위부터의 등산길은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전망대 갈림길에 이르면 길을 잘 잡아야 한다. 왼쪽 길은 금강다리로 가는 길이지만 오른쪽 길은 장군봉을 거슬러 칠성봉 전망대로 향한다. 금강다리와 삼선계단을 지나면 대둔산 정상 마천대와 태고사(배티재) 갈림길이 나온다. 마천대까지는 10분 거리. 정상으로 오르기 직전 안심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겨울철 안심사 길은 등산객들이 이용하지 않아 위험하니 가급적 택하지 않는 게 좋다. 태고사 방향으로 하산하다 보면 낙조산장에 닿는다. ‘대둔산 수락리 마애불’은 낙조산장 바로 뒤편에 서 있다. 낙조대를 지나 태고사로 내려오는 길은 완만하다. 태고사서 태고교(太古橋)까지는 30여분 거리. 태고교와 대둔산 국민관광단지를 오가는 교통편은 그리 원활하지 않다. 가능한 한 원점회귀 코스를 택하는 게 좋다. 태고사와 대둔산국민관광단지를 들머리로 잡아 등산할 경우 어느 코스 든 3시간 안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것만은 꼭!

 
안심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이곳에 와 보니 산세가 부처의 열반상을 닮았으므로 절을 짓고 안심사라 했다고 한다. 새 대웅전은 소실 65년만인 지난 해 2015년 11월 복원됐다. 태고사로부터는 27Km, 화암사로부터 18Km 거리에 있다.

 

 

 
화암사: 원효, 의상대사가 머물렀으며 설총도 이 도량서 공부했다고 한다.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양식인 극락전(국보 316), 한국 고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우화루(보물 662호)가 있다. 태고사로부터 34Km, 안심사로부터는 18Km 거리에 있다.

 

 

 

 

 

 
이치전적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이치(梨峙)의 험한 지세를 이용해 왜군을 물리친 격전지로 ‘이치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3대 전첩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치(梨峙)는 대둔산 기슭인 운주와 진산 사이의 고개로 완주와 금산의 군계. 여기서 바라보는 대둔산 암릉 풍광도 일품이다. 태고사로부터 15Km, 안심사로부터 10Km 거리에 있다.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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