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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래 불교는 대문 활짝 열어야

기자명 김정빈

문밖의 변화, 얼마나 수용해야 할까

종교는 인간을 초월한 무엇(법·신)을 중심 삼는 체계이지만 그 이전에 인간의 활동이다. 이는 종교 진리가 인간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즉 신이 인간에게 자신(자신의 뜻)을 계시할 경우 그 계시는 신이 먼저 존재하고 계시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①인간의 요청이 있고 그 응답으로 ②신의 계시가 있게 되는 것이며, 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 열어 논 우리 대승불교
자칫 정체성 잃을 수 있어

유연함 등 개방 이점 살려
정체성 강화 방법 찾아야

종교에는 신교(神敎), 즉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 법교(法敎), 즉 법(법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가 있다. 전자로서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교는 기독교이고, 후자로서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교는 불교이다. 따라서 두 종교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세계사를 살펴보면 두 종교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발흥하였다. 기독교는 구약시대까지 포함할 경우 3300여년 전, 신약 시대부터 잡을 경우 대략 2000여년 전에 중동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불교는 대략 2500여년 전에 인도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초시대적·초공간적 교리를 선포하는 면과 시대적·공간적 제약을 받는 인간의 체계라는 두 가지 면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교는 외재적인 면에서는 시대적·공간적 제약을 받는 체계이고, 내재적인 면에서 보면 초시대적·초공간적인 교리를 진리로 믿는 체계이다.

따라서 두 면의 소통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비유하면 종교에는 두 면을 분별하는 대문을 닫고 있는(물론 열리는 때가 있다) 종교와 대문을 열어놓은 종교(닫힐 때가 있다), 대문을 반쯤만 열어놓은 종교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종교를 보면 개신교는 문을 닫고 있는 종교, 불교는 문을 열고 있는 종교, 가톨릭은 문을 반쯤 열고 있는 종교이다.

대문을 열어놓는다는 것은 들고나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문을 닫아놓는다는 것은 들고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서 대문을 열어놓으면 내외간에 소통이 원활해져서 밖에서 바라볼 경우 대화가 잘 되는 집으로 비치고, 대문을 닫아놓으면 내외간의 소통이 막혀서 밖에서 바라볼 경우 대화가 단절된 집으로 비친다.

그렇지만 안에서는 긍·부 면에서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 문을 닫아놓으면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유지·강화할 수 있지만 문을 열어놓으면 자기 정체성이 희박해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종교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분야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한국 개신교가 왜 밖의 사람들로부터 배타적인 집단으로, 불교가 말이 통하는 집단으로, 가톨릭이 그 중간 정도로 인식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개신교인의 신심이 가장 강하고, 가톨릭인의 신심이 그 다음이며, 불교인의 신심이 가장 약한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시야를 불교 안으로 좁혀보자. 불교는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분별되는데, 두 불교를 비교해보면 남방불교는 문을 닫고 있는 불교이고, 북방불교는 문을 엶으로써 시작된 대승불교를 이어받은 종교이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본고를 통해 북방불교로 하여금 문을 더 넓히자고 제안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문을 더 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문 밖에서 시간적으로는 대승불교의 발흥부터 2000여년 동안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났고, 공간적으로는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졌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①종교를 향한 인간의 요청이 대승불교가 발흥하던 시점에 비해 많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② 또한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인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문을 넓히는 것이 무작정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외적인 변화를 수용하면 하는 만큼 내적인 결속, 즉 신심이 약화되리라는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외적인 변화를 수용하되 신심은 더욱더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런 절묘한 방법이 있을까?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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