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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산마애불의 도상 문제

기자명 주수완

삼존불 형식 파괴하고 반가사유상과 봉보주보살 병행

▲ 서산마애삼존불, 백제, 7세기초~전반. 국보 제84호. 본존불입상 높이 약 2.8m. 좌우협시보살이 비대칭이라는 독특한 구도를 보인다.

서산 마애불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보원사지라고 하는 거대한 규모의 절터가 있어 유명하다. 서산마애불은 이 보원사지를 발굴하던 연구자들의 주변 탐방 끝에 1958년 발견되어 학계에 소개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운영된 사찰로 추정되며,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선종, 혹은 화엄종 계통의 사찰로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중인 두 구의 고려시대 대형 철불좌상 중 한 구가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가사유상=미륵보살’론
‘봉보주보살=관음보살’론
불상연구자 사이 논쟁인
두 개 난제가 한곳서 보여

석가·관음·미륵 삼존불 해석
일부 ‘본존=아미타불’ 주장

여하간 서산마애불도, 보원사지도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서로 연관된 유적으로 생각되고, 나아가 마애불의 규모와 수준으로 보아 백제시기부터 이미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난 회에 소개한 태안 마애삼존불과 비교해 봤을 때 서산 마애불은 보다 발전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을 깊이 파들어 가지 않고 얕은 부조로 처리하면서도 도드라진 입체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여 오히려 더 풍부한 볼륨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서산마애불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른 삼존불상과 달리 한쪽 협시보살, 즉 좌협시보살이 반가사유의 도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좌우의 대칭성을 깨뜨린 파격적 구성이 돋보인다. 또한 우협시보살은 양손을 배 앞에서 모아 보주를 들고 있는, 소위 ‘봉보주보살’이라는 도상을 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삼국시대 불상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 도상은 중요한 논쟁거리이기도 했다. 즉,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로 보아야한다는 설과 아니라는 설, 또 봉보주보살상도 마찬가지로 관음보살로 보아야한다는 설과 아니라는 설이 각각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서산 마애불에는 이 두 도상이 함께 등장하고 있으니 두 개의 난제가 하나에 모인 셈이다.

▲ 우협시보살입상은 봉보주의 도상인데, 이를 관음으로 본다면 본존은 아미타불일 가능성도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기존의 설을 둘 다 인정해서 봉보주보살을 관음보살로,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로 본다고 한다면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보살로 구성된 도상이 되는데, 우리가 아는 한 이러한 도상은 아미타 삼존불도 아니고, 석가삼존불도 아니다. 아미타 삼존불이라면 관음·세지보살, 석가삼존이라면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음·미륵보살은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인도의 경우는 간다라 미술에서 보이는 석가삼존불의 협시로서 석가보살·미륵보살이 많이 보이는 가운데, 관음·미륵보살의 구성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있으므로 서산 마애불도 관음·미륵의 구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도상이어서 쉽게 인도 도상과 직접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서산 마애불의 발견 이후 주요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제기된 해석은 석가모니, 관음보살, 미륵보살의 삼존불로 보는 것이었다.

▲ 반가상을 미륵보살로 보는 우리 학계의 전통을 따르면 본존불은 석가불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서산 마애불에 관한 본격적인 논고에서 거론된 것은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소개 글이나 교양서적 등에 보면 본존불을 아미타불로 보기도 한다. 이는 봉보주보살상을 관음보살로 보는 입장에 무게를 두어, 아미타불의 협시일 가능성을 보다 높게 본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함께 서산 마애불이 대체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서방극락세계의 부처가 아닐까 하는 것도 아미타불로 보는데 근거가 된 듯하다. 그렇다면 반대편 반가상은 세지보살이 되어야 하지만, 서산 마애불이 만들어지던 백제시대에는 아직 도상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세지보살 대신 그 당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미륵보살을 선택했다는 해석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고려불화나 조선 초기 아미타삼존불 도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미타의 협시인 세지보살을 지장보살로 대체하는 경우이다. 리움미술관 소장의 ‘아미타내영도’도 우협시가 지장보살로 표현되어 있으며,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의 우협시도 지장보살이다. 이렇게 원래의 아미타삼존불 도상에서 덜 알려진 세지보살 대신 대중적으로 중요하게 신앙되었던 지장보살을 모시는 것은 아직 경전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서산 마애불을 이렇게 아미타불·관음보살·미륵보살의 삼존구성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고려~조선초 시기에 아미타삼존도상에 등장한 지장보살 도상은 분명히 지장보살로 확인되지만, 그에 비해 봉보주보살상이 관음보살이라는 근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아울러 관음·지장보살의 조합은 비교적 여러 사례가 남아있는 반면, 관음·미륵의 조합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도상 조합이 아니라는 것도 약점이다.

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봉보주보살 보다는 반가상의 도상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나라에서 반가상은 미륵보살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이에 의하면 본존불은 석가모니, 그리고 좌협시 반가상은 미륵보살, 우협시 봉보주보살은 제화갈라보살이라는 해석이다. 일반적인 석가모니 삼존불의 도상 구성에서 협시보살은 문수·보현이지만, 그 외에도 제화갈라·미륵보살의 삼존불 구성이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도상구성은 현대에서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잘 알려져 있던 도상이었다.

▲ 파주 보광사 대웅전의 두 협시보살은 17세기의 작품으로 원래 양주 회암사에 봉안됐던 미륵·제화갈라보살상임이 밝혀졌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248호.

실제로 사찰에서 석가모니를 봉안하는 전각은 대웅전 외에도 영산전이 있는데, 그 이름으로만 보면 영축산에서 석가모니의 ‘법화경’ 설법을 재현한 공간이고, 실질적으로는 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도나 영산법회에 참여했던 16나한 등을 모시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 모셔지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은 대웅전의 석가모니 삼존불과 달리 제화갈라·미륵보살의 구성이라는 것이 이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물 조사의 축적을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나한상을 모시는 응진전도 영산전과 성격이 유사한데, 역시 석가·제화갈라·미륵보살 삼존을 모시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대웅전의 석가모니 삼존불 중에도 제화갈라·미륵보살을 모신 사례가 흥국사 대웅전 등에서 종종 보인다. 따라서 서산 마애불의 반가사유상이 만약 미륵보살이라면, 석가모니, 제화갈라, 미륵보살의 삼존불 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도상을 흔히 수기삼존(受記三尊)이라고 한다.

‘수기’란 부처가 수행자에게 다음 생에 태어날 때 성불을 이룰 것이라는 예언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석가모니는 과거세에 연등불, 정광불 혹은 디팡카라(D-I pankara)나 제화갈라로 불리는 부처의 시대에 태어나 이 부처님께 헌화공양하고 더불어 부처님이 진흙 위를 걸어가실 때 발을 더럽히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머리칼을 바닥에 펼친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내용이 ‘본생담’ 및 경전에 전하고 있다. 또한 예언대로 부처가 되신 석가모니는 ‘법화경’ 등에서 미륵보살에게 수기를 내려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을 예언한 바 있는데, 이 덕분에 미륵보살은 미래불로서 숭앙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널리 읽히는 ‘법화경’은 바로 이렇게 수기가 이어져 이 세상에 끊임없이 부처가 출현할 것임을 설하고 있는데, 태안 마애불 도상에서 언급한 과거 다보불과 현재 석가불, 그리고 미래 미륵불의 구성 역시 이러한 부처의 영원한 출현을 나타낸 것이다. 때문에 ‘법화경’ 설법을 재현한 영산전의 핵심도상이 바로 제화갈라-석가모니-미륵보살의 도상이 된 것으로 보고 있고, 서산 마애불을 이러한 도상의 시원적 형태로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삼존불의 도상 형식에서 좌우대칭을 파괴하면서까지 굳이 반가상을 좌협시로 선택한 것은 이를 통해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반가상을 보면 미륵보살임을 금방 알아봤기 때문에 서산 마애불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도상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필자는 대학원생 시절 서산 마애불을 이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한 고 황수영(黃壽永, 1918~2011) 선생님과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마애불이 전각 안에 모셔져 있었고, 관리인이 나와 전등을 비추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표정이 바뀌는 본존불의 모습을 설명해주던 때였다. 함께 갔던 중진연구자들은 이 관리인에게 황수영 선생님을 소개하며 그런 설명은 필요 없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황수영 선생님은 이 분들을 제지하며 설명을 해달라고 관리인에게 정중하게 부탁한 후 진지하게 앉아 들으셨다. 설명이 다 끝나자 황수영 선생님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부처님이 어느 부처님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며 질문까지 하셨다. 여러 학설이 제기된 이 난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노학자는 아마도 이 불상을 가장 많이 보았을 관리인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고자 했으리라. 이야말로 학문의 자세가 아닐까.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강사 indijoo@hanmail.net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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