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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기자명 강용주

어둠이 깊어가는 화요일 저녁. 광주 무각사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5·18 유가족들, 부상자들, 구속자들 그리고 수녀님들, 학생들, 직장인들…. 7시가 되면 ‘오늘의 주인공’과 정신과의사 정찬영씨가 자리에 앉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임금단 어머니입니다. 그는 5·18 최초의 희생자인 고 김경철씨 어머니입니다. 고 김경철씨는 어렸을 때 아파서 청력을 잃었고 당시는 충장로 국제양화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5월19일 오후 2시반 퇴근하다가 공수부대의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에게는 갓 백일 지난 딸 혜정이가 있었습니다. 혜정이가 3살 때 며느리가 떠나버리고 임금단 어머니는 ‘울지도 못하고’ 손녀딸을 도맡아 키웠습니다. 손녀딸은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지요. 그 세월 내내, 어머니는 누구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도 못했고 손녀딸이 없는 곳에서 홀로 울었답니다. 나지막이 들려주는 어머니의 말씀은 고요한 무각사의 밤을 눈물로 적셔줍니다. ‘오늘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은 눈물로, 박수로, 침묵으로 어머니의 삶을 응원합니다.

‘마이데이(My Day)-맘풀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고문을 당하여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이 고문 없는 세상을 위해 만든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처음 시작한 ‘치유 프로그램’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2013년 9월부터 지금까지 무각사의 작은 방에서 2시간 동안 5·18 생존자를 모시고 ‘마이데이’를 열고 있습니다. 6명 주인공의 얘기를 담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라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5·18 광주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횃불회’사건으로 끌려갔다가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편을 잃은 박유덕씨. 1980년 5월27일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끌려가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지 못한다고 수없이 맞고 고문 당한 ‘빨간 추리닝’ 박천만씨.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던 중 누나 결혼식을 위해 찾아온 광주에서 폭행당하는 시민들을 보고 5·18에 참가했다가 헌병대, 경찰서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삶이 절단 나버린 최용식씨, 그리고 김춘국씨. 이성전씨…. 고문당하고 감금당하고 풀려나서도 감시 받았던 날들,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날들,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날들. 30여년이 지나도 여전한 고통, 떠오르는 부끄러움, 생생한 두려움이 조금씩 펼쳐집니다. 참았던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을 말할 때 곁에서 손잡아 줍니다. 2시간 동안 무각사는 진심과 공감의 자리가 됩니다. 말하는 주인공과 듣는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 서로가 연결되는 자리, 그것이 ‘마이데이’입니다.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마이데이’의 부제입니다. 주인공은 “듣는 이들이 80년 5월의 역사를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줘서, 진심으로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 감동 받았다”고 말합니다. 관객은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얘기합니다. 우리들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그 상처를 마주하며 드러내어 말하고, 그것을 공감하고 지지하며 귀 기울여 듣는 가운데 시작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서로 공감하고 서로 위로하는 치유자들입니다.

‘마이데이’는 ‘트라우마 공동체’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치유 공동체’ 광주의 다른 이름입니다. ‘마이데이’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기원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는 광주 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http://tnt.gwangju.go.kr) 자료실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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