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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날, 제주공항을 바라보며

기자명 이미령

약속을 지키면 손해 보는 세상이라니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제주를 한껏 덮었던 눈들은 지금쯤이면 말끔히 사라졌겠지요. 지난번 편지에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주공항에 발 묶인 사람들 
혼란·분노하는 모습 보며
‘왜 저러나’ 섣부른 비판

스스로의 이기적인 모습
안일한 공직사회의 민낯
불안한 대중의 모습들은
약속 불신하는 세태 산물

“추위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금세 기온이 뚝 떨어져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되었다. 나를 위해 추워진 것이 아니라 더위를 좋아하는 보살님에게 심술부리느라 그랬나보다.”

이 글귀가 적힌 스님의 편지를 받는 날, 하필 추워도 너무나 추운 날이었습니다. 강의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무치도록 추웠는데, 그날 이후 저는 호되게 앓았습니다. 끙끙 앓자니 괜히 스님에게 심술도 좀 나더군요.

‘아니, 이런데도 추위가 좋다시니 말이 되냐고?!’

혹시 제 심술이 제주도까지 가 닿은 건 아닌지, 그 심술 때문에 제주도에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공항에서 힘들게 했던 건 아닌지 은근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저는 미안한 마음을 내려놔도 되겠지요?

이틀 내리 제주공항에서의 북새통 소식을 접하면서 착잡해지더군요.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그 와중에 바가지 상혼도 들끓었다는,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뜨는 제주공항에서의 속보를 보면서 ‘천재지변인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렇게 매사에 화부터 내지?’ ‘어련히 알아서 대책을 세워주지 않겠어? 왜 기다려주지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일었고, 심지어는 ‘저렇게 항의해서 호텔 숙박이나 비행기 기종이나 좌석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거 아냐?’라는 생각에 그들이 미워지기까지 했지요. ‘나 같으면 차라리 느긋하게 더 즐기고 오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스님, 이런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는 순간 저는 몹시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함께 겪지도 않으면서 멀리 떨어진 곳의 따뜻한 내 집 내 방안에서 작은 화면에 비치는 부분적인 모습들을 보며 일방적으로 그들을 흉봤던 것이지요.

역지사지라고 하잖아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는 이 말은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기 입장에서 말을 하지요. 남의 입장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아니, 심한 경우는 ‘내가 왜 남의 입장까지 생각해야 해?’라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에 해당하는 영어문장은 ‘putting oneself in another’s shoes’ 다른 사람의 신발을 직접 신어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디언 속담에는 ‘다른 이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본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냥 자기 자리에서 ‘너를 이해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의 처지에 서본다는 것입니다. 처지(處地)라는 말도 ‘놓여 있는 땅’이란 뜻으로, 상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지점에 가서 서본다는 뜻이니, 어쩌면 이렇게도 동서양의 슬기로움은 한결같은지요.

그 말대로 저는 제 처지를 제주공항으로 옮겨보았습니다.  

그날 공항에서 며칠에 걸쳐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때때로 천재지변을 당하기도 하지만 눈보라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일생에서 그리 자주 겪는 일이 아니지요. 36년만의 폭설로 당황하기는 항공사와 공항공사 측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늘 시간과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처럼 뜻밖의 일을 당하면 불안감부터 비쳐져 나오지요. 게다가 관광지로만 다니던 외지인이 눈이 쏟아지는 밤중에 시내로 나가서 숙소를 잡는 일도 여간 난감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당황하지 않도록 똑 부러지게 일처리를 하지 못한 항공사와 공항공사 측이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차례를 기다리자니 울화가 치밀기도 했을 테지요. 기껏 기다렸다가 급한 볼일에 잠시 자리를 비우면 자기 자리가 없어져서 그 오랜 기다림이 허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아마 저 같아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에 공항에서 노숙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관계자들이 이런 재난에 대비해서 매뉴얼대로 대처해준다면 설령 제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했을 겁니다. 천재지변인 걸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울화가 치밀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저 같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믿었던 도끼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발등을, 아니 목숨을 잃은 세월호의 참사가 떠오릅니다. 가만히 있으면 구조된다는 말을 믿었던 사람들. 믿은 탓에 목숨을 내놔야 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때 학생들과 승객들이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서로 살겠다고 밀치고 갑판 위로 올라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재난에 대처하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없거나 또는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분노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이번 폭설과 제주공항의 일대소동을 지켜보면서 제 자신의 이기적인 짧은 생각과 안일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현재 공직사회의 민낯과 그에 따른 대중의 불안을 봤습니다.

믿음은 부처님처럼 인간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분에게만 향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버리지는 못했지만 사바세계의 중생들 간에도 믿음은 아주 큰 역할을 하지요.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건, 약속이 지켜진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사회적 규약을 믿었더니 공정한 세상이 되었더라, 정치인의 공약을 믿었더니 실제로 삶의 질이 좋아졌더라, 종교인의 말을 믿었더니 내 욕심이 줄어들고 지혜로워지더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분명 약속을 잘 지키신 분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분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이 출재가를 막론하고 그토록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스님과 저도 그럴 테지요. 부처님 하라시는 대로 하고 살았더니 정말로 인생이 행복해지는 체험을 했으니 이렇게 불교계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지난번 편지에서 ‘금강경’ 속 수보리의 눈물을 말씀하셨지요. 아마 수보리도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다보니 실제로 자신의 지혜가 껑충 높아지는 걸 느꼈을 테지요. 부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보리는 부처님을 믿고서 그 어떤 경계에도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디언들은 2월을 홀로 걷는 달이라고 한다지요. 겨울과 봄의 공백, 이 2월의 끝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이곳에서 솟아나겠지요. 그러니 지금은 홀로 걷는 길이 외로워도 참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북칼럼니스트 이미령 드림.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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