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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반세기 포교 위한 비용-하

“불우이웃 묵묵히 돌봤지만 선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 불광산 이동도서관은 외딴 시골의 어린이에게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대자육아원은 50년 이래로 1000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공부시키고 독립해 직업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양로원 인애지가와 불광정사에는 1000명의 노인들이 수십년 이래로 불광산의 사중식구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제자 의항(依恆)이 ‘성문장(聲聞藏)’을 맡고 있고 의공이 ‘예문장(藝文藏)’을 맡았으며 영본(永本)과 묘서(妙書)가 ‘본연장(本然藏)’을 맡고 만기(滿紀)가 ‘유식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이끌면서 동시에 경전편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십명이 힘을 모으는 30여년의 작업과정에서 불광산이 그들에게 제공한 숙식 외에도 편집업무 자원 봉사자들의 교통비와 인쇄, 출판, 운송 등으로 사용한 비용이 185억원이 넘을 것입니다.

10여년 동안 노력을 기울여 편집한 ‘세계불교미술도설(圖說)대사전’의 출판은 불교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문화계와 건축계까지 놀라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상 스님이 편찬을 주도한 ‘도설대사전’ 20권은 글자가 400만자가 넘고 그림 1만여장을 수록하고 9000여개 항목의 대형책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출판되지 않은 그림 5만여 장이 아직 불광산 자료 보관실에 남아 있습니다. 중국어판 외에 유항(有恒) 스님이 책임을 맡은 영문판이 곧 출간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불교미술도설대사전’을 출판하기 위한 자료 수집을 포함해 전문가의 집필 원고료와 번역, 인쇄, 출판 등으로 불광산에서 400억원 이상을 썼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60년전 ‘삼중불교문화복무처(三重佛敎文化服務處)’를 자장 스님이 맡으면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만제(滿濟) 등이 불광출판사를 맡고 있고 영균(永均), 채맹화(蔡孟樺), 묘온(妙蘊) 등이 이어 ‘향해문화’(香海文化 : 감성적인 불교콘덴츠 출판 및 기념품 제작유통 사업체. 역자 주)를 맡아 왔습니다. 중국 상해에 만관(滿觀)과 부지영(符芝瑛)이 ‘대각문화(大覺文化)’ 등 출판사를 이어서 맡고 있으며 ‘여시아문’(如是我聞 : 범패, 찬불가 등 불교음악의 제작 유통 사업체. 역자 주) 문화공사를 의윤(依潤), 영균, 각념(覺念)이 이어서 맡아 왔습니다. 비록 출판물은 가격을 정해 판매한다고 하지만 불교저술은 여전이 증정하는 것이 많은 편입니다. 그 외에도 증정용 소책자와 각종 서적과 ‘불광학보(佛光學報)’ ‘보문학보(普門學報)’ 등 일일이 세세하게 계산할 수 없으니 근래 몇 십 년간의 지출이 적어도 1100억원이 넘습니다.

이 외에도 의공, 만제, 영응(永應), 길광여(吉廣輿)의 책임 아래 중국과 대만 양안의 학자와 전문가를 초대하여 ‘중국불교경전보장정선백화판(中國佛敎經典寶藏精選白話版)’ 132권을 공동 편찬하였습니다. 영명(永明), 영진(永進), 만경(滿耕)이 남경대학교 정공양(程恭讓) 교수와 함께 중국 양안의 석박사 학위논문을 수록한 ‘법장문고(法藏文庫)-중국불교학술논전’ 110권을 편집 출판하였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경비도 40억원 정도가 됩니다. 여기에 빈승의 개인적인 출판저술이 2000만 글자가 넘는데 한 권 한 권의 책으로 계산하면 300여권이 됩니다.

이상의 지출을 전부 합산하면 대만 돈 4000억여원이 넘습니다. 다행히도 빈승이 저술한 책이 중국에서 10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원고료와 인세로 받은 인민폐가 저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을 지어서 기증한 곳으로 2009년 태풍 ‘모라곳’이 대만을 강타한 이후 가오슝 지역에서 구곡(九曲)초등학교도서관, 계포(溪埔)초등학교도서관, 수료(水寮)초등학교도서관, 보문(普門)중고등학교도서관 공사에 도움을 주었고 나마하향(那瑪夏)도서관과 도원향(桃源鄉)도서관을 다시 지어 주었습니다. 병동(屛東)과 대동(台東) 지역에는 무태향(霧台鄕)지역 도서관과 장치향(長治鄕) 지역 해바라기 도서관 등을 중건해 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중화문화의 부흥에 다소나마 힘을 보태고자 중국 양주(揚州) 감진(鑑眞) 도서관 외에도 남경대학교 중화문화연구원, 호남 악록서원(嶽麓書院), 중국서원박물관 등의 건립을 도왔습니다.

기실 불광산 계열에 속한 도서관으로는 서래대학교, 불광대학교, 남화대학교, 남천대학교, 광명대학교 등 각 대학도서관과 신죽시(新竹市) 무량수도서관 및 각 분원도량에 있는 크고 작은 규모의 도서실까지 합하여 30곳이 넘습니다.

이렇듯 많은 서적들을 좋은 뜻을 가진 많은 분들이 기증해 주셨습니다. 문화교육을 중시하는 수천, 수만의 신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이외에 달리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옛날 40~50년 전 재정이 어려웠던 빈승은 책 한권을 사기 위해서는 먹고 쓰는 것을 줄이고 심지어는 점심 먹을 돈을 아껴야 했습니다.

문화와 교육 이외에도 자선 또한 불광산의 네 가지 근본방향(宗旨)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자선구호는 본래부터 불자들의 책임으로서 사회에는 물론 열정적인 자비를 필요로 하겠지만 조용한 자비는 더욱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십 년 이래로 불광인들은 사회에서 잊혀진 어려운 사람들이나 외딴곳의 거주민이나 불우이웃과 소외계층 등을 묵묵히 돌봐왔지만 대외선전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긴급구조에 있어서 지난 사례는 말을 않더라도 근간에 발생한 대만921지진, ‘모라곳’ 88태풍수해 등 재난 초기에서의 적극적인 구조활동과 물자지원 및 천도위령제 이외에도 사후의 거주지와 학교 재건과 지속적인 심리적 계도활동 및 불교의 가르침으로 이재민의 두려움을 풀어주는 등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불광회의 자용(慈容), 혜전(慧傳), 영부(永富), 각배(覺培)와 자선원(慈善院)의 의래(依來), 묘승(妙僧) 등 스님과 오백웅(吳伯雄), 진묘승(陳淼勝), 조려운(趙麗雲) 회장도 모든 불광회원들을 이끌고 전력을 다해 동참했습니다.

예를 들면 921대지진(‘지지대지진’이라고도 하며 1999년 9월21일 타이완 중부 난터우 현 지지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 역자 주) 이후 불광회는 돌아갈 집을 잃은 이주민들을 위해 영평(永平) 불광촌을 조성하여 주거용 간이주택 200여채를 제공하였고 초등학교 세 곳을 전담해 학교건물 중건비용을 부담했습니다. 세 곳의 초등학교는 동세중과(東勢中科)초등학교, 중료상문(中寮爽文)초등학교, 초둔평림(草屯平林)초등학교 등입니다. 17개 학교의 점심식사와 수십 군데 학교의 시설과 9개 학교의 주방도구와 임시교실 20여곳 등을 제공하였습니다.

중국 사천 대지진으로 우리는 목어(木魚)중고등학교와 창명(彰明)중고등학교를 다시 지어 주었고 병원을 지어 기증하고 삼매선림(三昧禪林) 등 불교도량 61곳을 중건했으며 구호차량 72대와 휠체어 2000대를 기증하였던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만약 조중식(曹仲植)기금회와 공동으로 전 세계에 기증한 휠체어까지 합한다면 몇 만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동남아쓰나미, 이란대지진, 뉴질랜드대지진, 동일본대지진, 필리핀태풍, 말레이시아 수해 등 재해 현장에서 전 세계 불광인들이 4대 보살의 자비정신에 근거하여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신속하게 등장하여 적절한 구조활동과 물품보급을 해 주었습니다.

자선활동 이외로 교육은 필히 동시에 더불어서 진행해야 합니다.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한 어린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받게 해 주기 위해 불광회는 홍콩 엄관호(嚴寬祜) 거사와 광미운(鄺美雲) 회장 등과 함께 중국대륙에 200여개 소의 불광희망학교를 지었습니다. 장학금을 주고 학교건물을 건축하고 병원을 300여 군데 짓고 600여명의 고아를 입양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운수서차(雲水書車)-이동도서관’발대식을 해 마치 떠도는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도서관이 각처에 있는 학교와 외딴 시골의 마을과 지역으로 찾아가 도시와 시골의 거리를 줄여 어린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 전역에서 50대의 이동도서관 차량들이 외딴 곳과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찾아가 500곳의 방문포인트를 설정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혜택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이 만명 이상이 됩니다. 이러한 자선구호 활동과 기증에 들어간 비용도 4000억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불광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자육아원은 50년 이래로 1000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공부시키고 진학하여 독립해 직업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양로원 인애지가(仁愛之家)와 불광정사에는 1000명에 가까운 노인들이 수십 년 이래로 불광산에서 돌보아야 하는 사중의 식구로 살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나열한 것을 종합해 교육과 문화, 자선과 각지의 사찰 건축비용과 50~60년 동안 들어간 상관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수조 원이 됩니다.

빈승이 처음 은사 스님께서 주신 은화 12원을 갖고 대만으로 건너온 것 이외에 수조 원이 넘는 돈이 비록 저의 손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저라는 인연을 거치고 이름 아래서 발심을 하고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남아 있는 돈이 있다면 마땅히 여러분들께 알려드려야 하지만 ‘하루하루가 어렵지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말처럼 이렇게 들어오기가 무섭게 나가는 상황에서도 빈승은 정부기관이나 신도의 집을 찾아다니거나 바깥으로 모연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누구한테 장부를 보여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또 누구한테 도움을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까? 대만에 살고 계신 여러분들에게 빈승이 기부금을 모연한 적이 있습니까?

설사 위와 같은 정황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광산 개산 40여년 이래로 외교부에서 모시고 온 해외귀빈에게 선물한 기념품과 국방부에서 바라는 대로 전방의 군인들에게 제공한 염주와 호신불, 전국의 감옥포교 활동에서 제공한 서적과 기념품 등으로 모르기는 해도 4억원 이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정부에서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상장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2016년은 불광산 개산 50주년입니다. 지금 대만사회는 종교재산문제로 시끄럽게 말이 많은데 저는 이것도 잘된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저의 신도주인들에게 보고하는 기회로 삼아 대중을 위해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제자들과 모든 불광인 자신들이 무엇을 해냈으며 자기의 성적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도록 하고자 합니다. 또한 빈승이 개인적인 재물이 전혀 없지 않지만 언제나 개인 것을 공(公)으로 쓰고 전부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이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 빈승은 더욱 늙어서 저술 출판도 없고 일필자 붓글씨도 점점 쓰기가 어려워지고 빨간봉투도 받지 않으니 사회와 저는 더욱 인연이 멀어지는 듯합니다. 금전 문제에 대해서 저는 태어날 때 갖고 오지 않았고 가더라도 갖고 가지 못할테니 사회에서 어떠한 비평을 더하고자 하면 여러분께 참회하고 사죄를 드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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