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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녹아 사라질 눈사람 같은 ‘거짓 나’에 속지 않으리라”

  • 수행
  • 입력 2016.02.18 13:27
  • 수정 2016.06.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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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 앞둔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

▲ 동안거 해제(2월22일)를 4일 앞둔 2월18일, 금봉선원(선원장 혜국 스님)에는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 등 선객 130여명이 정진 중이었다.

2월의 겨울아침 바람이 풍경을 쓸었다.

충주 금봉산 석종사 대웅전에 매달린 풍경이 운다. 한데 소리가 들릴 듯 말 듯이다. 바람이 쓸고 지나서일까. 아니다. 금봉선원에 드리운 날카로운 고요 속에 파묻혔다. 대웅전 왼쪽에 자리한 금봉선원에서 뿜어내는 적멸의 기운이 바람을 삼켜서다. 금봉선원에 똬리 튼 선객들, 묵언이다. 입 닫고 눈 닫으니 시선은 마음에 가서 앉는다. 설사 바람 소리에 번뇌가 일었다 해도 금세 사라질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힘이 예서 움텄다.

스님 30명·재가자 100명 방부
새벽 3시부터 1일 12시간 참구
사시마지 땐 전 대중 함께 예불

그래서일까. 마음수행이 최고 자리에 도달해 마지막으로 자신을 점검한다는 대웅전 앞 가파른 계단 위 천척루(千尺樓)가 하늘 향해 당당히 뻗었다. 주련은 이렇게 일언하고 있다.

“원각산 중에 한그루의 나무가 자라나니/ 하늘과 땅이 생겨 나뉘기도 전에 활짝 꽃을 피웠네/ 푸르지도 희지도 않고 또한 검지도 않으나/ 봄 바람에도 하늘에도 있지 않다네.”

동안거 해제(2월22일)를 4일 앞둔 2월18일, 금봉선원(선원장 혜국 스님)에는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 등 선객 130여명이 정진 중이었다. 하늘과 땅 생기기 전 한그루 나무가 활짝 피운 꽃의 도리를 알고자 했다. 상(上) 선원인 금봉선원(金鳳禪院)에는 스님이, 하(下) 선원 보월당(寶月堂)에 재가자 100명이 가부좌를 틀었다. 햇볕에 두면 녹아 사라질 뿐인 눈사람 같은 ‘거짓 나’를 여의는 데 출·재가 경계는 따로 없었다. 불안, 우울, 분노, 기쁨 등 감정에 끌려 다니는 노예로서 삶을 청산하고, 과연 자신이 중생아픔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마음을 닦고 있었다. 안거였다.
 

▲ 상(上) 선원인 금봉선원(金鳳禪院)에는 스님이, 하(下) 선원 보월당(寶月堂)에 재가자 100명이 가부좌를 틀었다.

금봉선원에 방부 들인 선객들은 도량석 들릴 때부터 화두와 씨름했다. 지난 3개월 간 새벽 3~6시, 오전 8~11시, 오후 2~5시, 6~9시 등 하루 12시간 참선했다. 나름 살림살이를 갖고 선원장 혜국 스님에게 점검을 받기도 했다.

“제 몸이 붕 떴다, 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속았다.”

혜국 스님은 한 재가자 질문을 단칼에 벴다.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붕 떴다’는 느낌과 생각에 속았다는 일갈이었다.

“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는데 어찌 속았다는 말씀이신지요.”
“떴다는 생각에 속은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이라고 여기는 ‘거짓 나’는 물론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세상에 쉽게 속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남에게 속은 것은 별 거 아닙니다. 감정에 속아 100년도 못사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이 물음에 답하실 수 있는지요.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 제대로 공부했다면 답이 나올 것이요 그렇지 못했다면 속은 것이지요.”

생각은 물론 모든 분별을 떠난 그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면 헛것이라는 가르침이리라. 화두에 몰입되면 몸이 받아들이는 온갖 느낌이 사라지는 듯한 생각에 젖어 거기에 집착하면 다음 단계로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다는 경책인 셈이다.

스님들은 완전한 고요에 들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생각과 분별(번뇌망상)이 끊어졌다고 여겼던 곳에 찾아온 고요에 머무르느냐 아니면 넘어서느냐는 갈림길에서 스승에게 답을 구했다.

“고요하든 말든 대분심과 대신심, 대의심으로 화두를 잡으면 고요한 줄도 모르게 됩니다. 그 고요함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는 또 하나의 분별에 불과 합니다. 정진하십시오.”

허투루 나오는 답이 아니었다. 혜국 스님 스스로가 치열한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의 조각들이 영글어 나온 가르침이었다.

“익은 것 설게 선 것은 익게”
수행가풍 속에 묵언으로 참선
감정노예로 살던 익숙한 삶서
주인으로 당당히 서고자 정진
해제 전 자자하며 잘못 참회

 

▲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수좌 혜국 스님 일언이 금봉선원 불이문 문턱을 넘나들었다.

1961년 합천 해인사로 출가한 혜국 스님은 일타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1969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0년 22세에 성불을 다짐하며 오른손 손가락 3개를 연비하는 결연한 발원으로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동안 생식으로 연명하며 장좌불와로 정진했다. 수마가 장애였다. 소지공양 하는 절절함으로도 화두는 잡히지 않았다. 성철 스님에게 길을 물었고 철발우 하나 받아왔다. 물 담은 철발우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정진했다. 물은 쏟아지기 일쑤였다. 혜국 스님은 유서를 썼다. 단 하루라도 화두가 잡히길 기원했고, 안 된다면 몸 바꿔서라도 수행을 이어가겠노라. 그날이었다. 서쪽으로 느릿느릿 지는 해는 잠깐 사이 동쪽에 있었다. 깜짝 놀라 해 보려고 일어나자, 그제야 철발우가 물 쏟아냈다.

이후 혜국 스님은 경봉, 성철, 구산 스님 등 당대 선지식 회상에서 점검 받고 미진한 깨달음을 완성하고자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했다. 그리고 제주 남국선원과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을 창건한 뒤 수행납자와 재가수행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금봉선원 수행가풍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선 것은 익게 한다.” 화내고 슬퍼하는 여러 감정에 발목 붙잡혀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너무 익숙한 ‘거짓 나’를 버린다는 뜻이었다. 대신 ‘참나’, 인연 따라 사라질 운명인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찾아가는 노력을 익게 하자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낯설고 외진 길을 걷고 걸어 오솔길처럼 익숙하게 만들자는 게 금봉선원 가풍이었다.
 

▲ 동안거 해제 뒤 산문 나서는 마음바랑에 자리이타와 동체대비심을 담고자 하는 서원이 선객들에게 있을 터다. 오전 11시 사시예불엔 대웅전에 선객 모두 모여 예불하는 모습에 그 절절함이 엿보였다.

이 가풍에 물들려는 선객들이 적지 않았다. 동안거는 물론 하안거에도 매번 출·재가 합쳐 130명에 달하는 선객들이 방부를 들인다. 그 중에는 절절한 심정으로 출가한 사연도 있었다. 혜국 스님에 따르면 국제변호사를 관두고 출사사문의 길을 만류하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출가한 스님이 있었다. 누군가를 변호하면 다른 쪽이 피해를 입는 부조리한 세속을 버리고 참나를 찾고자 삭발염의한 것. 비단 이 스님뿐만 아니리라. 동안거 해제 뒤 산문 나서는 마음바랑에 자리이타와 동체대비심을 담고자 하는 서원이 선객들에게 있을 터다. 오전 11시 사시예불엔 대웅전에 선객 모두 모여 예불하는 모습에 그 절절함이 엿보였다.

“오른 손을 들든 왼손을 들든 몸뚱이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같습니다. 에너지는 바로 생명이지요. 우리 에너지는 스스로 만든 역사가 없습니다. 나무 한그루와 풀 한 포기에서 나오는 공기, 비로 내리는 물, 태양이 주는 빛,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에서 잠깐 빌린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는 내 것이 아니라 우주 자연이지요.”

별의 아픔까지 느껴진다는 혜국 스님의 말씀엔 부처님 가르침이 녹아 있었다. 여기 까지 이르기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혜국 스님은 치열한 수행정진을 당부했다. 안거 해제인 산철이든 안거 때든 감정의 노예로 살지 않기를 바랐다.

“검색만 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스스로 직접 답을 구하지 않는 세상이지요. 자신이 내면을 살펴 찾아낸 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처절하게 자신을 참구하는 노력이 설어서 힘들어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잠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은데 12시간식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노동이지요. 과연 얼마나 중생의 아픔을 짊어질 수 있느냐 결연함이 필요합니다. 만행 나가서 중생아픔을 같이 하려면 평생 수행해야 합니다. 1, 2년 해서는 안 됩니다.”

혜국 스님 말씀대로 더러운 세상은 없다. 인연 따라 더럽기도 하고 깨끗해지는 세상을 고정불변한 더러움으로 규정해서는 답이 없다. 해서 더러워진 자신 마음부터 정화하라고 일렀다. 허공에 똥물 뿌려도 허공은 더러워 지지 않는다. 생명의 본질은 허공과 같다. 인생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에 끄달리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허공에 먹구름만 드리울 뿐이다.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수좌 혜국 스님 일언이 금봉선원 불이문 문턱을 넘나들었다.
 

▲ 마음수행이 최고 자리에 도달해 마지막으로 자신을 점검한다는 대웅전 앞 가파른 계단 위 천척루(千尺樓)가 하늘 향해 당당히 뻗었다.

해제 3일 전 금봉선원은 죽비를 놓는다. 선객들은 이불, 요, 좌복, 빨래를 마치고 정진하던 도량을 청소한다. 묵언으로 서로에게 알리지 못했던 잘못을 지적하고 받으며 참회하는 자자로 해제 전날을 보낸다.

산문 나서는 날, 선객들 마음바랑이 비리라. 산철 만행에서 얻었을지 모를 어떤 작은 깨달음들을 안고 산문에 들까. 그 낯선 깨달음을 익게 만드는 선불장, 금봉산 금봉선원 안팎 경계 사라진 어디쯤이리라.

충주=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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