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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부처님의 기구한 수난사

 
1458년(세조 4)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 명빈 김씨와 효령대군 등 왕실이 주도적으로 조성한 영주 흑석사의 국보 282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사진〉. 복장기에 불상 제작연도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이 정확하게 나열돼 있음은 물론 독특한 조성 양식으로 조선 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돼왔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과 관리 인식 부족은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잇달아 수난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는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도난 걱정에 파출소 맡겨
언론 보도로 세간의 지탄
신도회장이 복장물 은닉
8000만원에 팔아넘기기도

1980년대 후반, 예불을 드리기 위해 당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던 허름한 전각을 열고 들어간 스님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연화대 위에 앉아 계셔야 할 아미타부처님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화들짝 놀란 스님은 곧바로 경찰과 시청에 신고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사찰에서 300m 떨어진 논두렁에서 불상과 복장물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누구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문화재청 관계자와 학자들이 흑석사를 찾아 복장물이 국보급임을 밝혀냈다. 전화위복일 수도 있었던 첫 번째 수난은, 그러나 연달아 이어지게 될 수난의 전조에 불과했다.

1993년,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물이 국보로 지정되자 사찰 측의 근심은 깊어졌다. 경내에 이렇다 할 보관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보가 도난당하는 사건을 걱정한 사찰 측은 궁리 끝에 한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파출소에서 보관하도록 하자는, 황당한 방안이었다. 사찰 측은 복장물들을 여행용가방에 담아 파출소 무기고에 맡겼다. 사찰 문화재에 대한 당시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이 사건은 1997년 한 일간지가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흑석사 신도회장이었던 전모씨는 사찰 측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았다. 복장물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4권과 백지금니변상도를 보관해달라는 것이었다. 전씨는 두 유물을 집으로 가져와 은닉했다. 1993년, 국보 지정 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4권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지정에서 제외됐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복장물을 은닉해오던 전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업자금이 부족해지자 2000년 1월 문화재매매업자 정모씨에게 800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이 사건은 정씨가 매입가격의 10배가 넘는 10억원에 매매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검거되면서 들통이 났다. 결국 전씨와 정씨, 그리고 둘 사이의 거래를 주선했던 이씨까지 모두 구속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었을까?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1999년 3월20일, 3개월 동안 끈질기게 사찰 주변을 탐색해오던 백모씨가 경내로 들어섰다. 불자인 것처럼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앞에 선 백씨는, 스님이 잠시 법당에서 나가자 본색을 드러냈다. 보호 유리를 열고 불상을 꺼내 달아나버린 것이다. 법당으로 돌아온 스님은 불상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곧이어 출동한 경찰은 도주로를 차단하고 백씨와 격투를 벌인 끝에 검거했다. 물론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회수할 수 있었다.

이후 흑석사는 특수 제작한 유리 방화 금고에 불상을 모셔두고 있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카메라도 설치돼 있어 사찰 측의 원력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14년에는 도난·화재 등을 대비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매년 추진하고 있는 중요동산문화재 기록화사업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왕실의 평안을 기원하고자 조성했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정작 평안하지 못했던 아미타부처님이 이제 더는 수모를 겪지 않고 정토왕생의 길을 중생들에게 설하시게 될까.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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