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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5. 해탈품(解脫品)-상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2.29 16:48
  • 수정 2016.02.29 16:50
  • 댓글 0

운명의 장애물인 번뇌·업장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방법

▲ 법안 스님은 해탈에 이르기 위해 몸·입·뜻을 가꾸는 일상의 노력들을 강조했다.

오늘은 ‘우바새계경’ 해탈품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비심 닦으면 해탈분 얻는다
‘우바새계경’에 여러 방편 제시
듣고 사유하는 문혜·사혜 강조
법문·불서 가까이 하며 접해야

평소 몸·입·뜻 살피고 돌보며
부처님 말씀 지키도록 노력해야
계율 철저히 지키는 시도 필요
현재의 지옥서 벗어나기 위해선
긍정적 생각으로 마음 가꿔야

“선남자여,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자비심(가여워하는 마음)을 닦으면 이 사람은 모든 법의 체(法體)인 해탈분을 얻을 것입니다.”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체(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선남자여. 몸과 입과 뜻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몸과 입과 뜻은 방편에 따라 얻습니다. 방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귀로 듣는 것 이고, 둘째는 사유(思惟)하는 것입니다.”

몸과 입과 뜻을 통제하고 조복을 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귀로 듣고 얻는 지혜인 문혜(聞慧), 그리고 생각해서 얻는 지혜인 사혜(思慧)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천수경’의 개경계를 보면 아금견문득수지(我今見聞得受持)라고 나와있지요? 보고 듣고 받아 지닌다는 뜻입니다. 해탈을 위해선 몸과 입과 뜻을 잘 조복해야 되는데, 몸은 몸이 좋은 데로만 자꾸 가려고 하고, 입은 말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고, 또 생각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잖아요? 이걸 통제해서 부처님 말씀에 잘 맞게 만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방편’입니다. ‘방편’은 쉽게 접근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편리를 준다. 즉 몸과 입과 뜻을 훈련시켜서 남들도 좋고 나도 좋도록 자비를 베푸는데 쓰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 몸과 입, 뜻을 밀교에서는 3밀이라고 표현합니다.

부처님 되는 공부로 업을 돌려서 자량으로 바꿔 주는 것이죠. 그래서 귀로 듣는 것이 중요하고 들은 것을 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서 문혜와 사혜를 아주 중요시 하는 거예요. 여기에 더해 세 가지로 할 때는 문·사·수라고 합니다. 들을 문(聞), 생각 사(思), 닦을 수(修-몸으로 하는것), 즉 몸과 입과 뜻 세 가지를 공부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몸 조심, 입 조심, 생각 조심하는 것이 곧 기도가 됩니다. 이를 위한 방편이 귀로 듣는 문혜, 사유하는 사혜 두 가지가 있는 것이지요.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둘째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셋째는 많이 듣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입과 뜻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려면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설하셨습니다. 세 가지 모두 실천적인 형태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바새계경’은 이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직접 행할 수 있는 실천들을 담고 있습니다. 잘 읽고 숙지하여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용해봐야겠다는 마음을 지니는게 중요합니다.

‘대지도론’에 보면 재가불자들은 근본적으로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라고 나옵니다. 우리 불자들은 계율에 대해 철저하게 지키지 않는 모습이 많지만, 계율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지킬수 있는 한가지 계율을 정해서 하나하나 늘려나가는 노력을 해보세요.

언젠가 대학 동창들이 법문을 요청해서 겸사겸사 신년모임을 했습니다. 한정식 전문점에 갔는데 제가 평소에 안 먹는 음식들만 나오더라구요. 평소대로 “안 먹는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식당 사장님이 환한 웃음을 띠고 직접 나오시더니 “우리 스님 뭘 드시면 좋겠냐”며 오대산에서 가져 온 송이버섯과 더덕을 막 갖다 주시대요. 제가 거기서 VVIP대접을 받고 왔다니까요.

그 주인은 틀림없이 불자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스님이 육식, 홍어 삼합 등을 쳐다도 안본다며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그때 느꼈지요. “아! 세상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불심은 살아있구나.” 그리고 느낀 점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계율이라는 게 참 중요하구나. 계율은 스스로 나를 지키는 가장 큰 무기에 다름 아니구나”하는 깨달음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셋째로 많이 듣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법문을 많이 들어야 돼요. 우리 불교가 지구상에서 가장 멋지고 좋은 종교임을 배우고 알 수 있는 방편이 바로 법문이거든요. 조금 아쉬운 것은 한국에 좋은 법문은 많이 있지만 쉬운 법문이 없다는 겁니다. 이해하기 쉽고 자기 수준에 맞는 다양한 법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좀 부족한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에게 맞는 법문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지 않으면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해버리고 거기에 머물러있게 됩니다. 고인 물은 썩는 것이 당연한 이치죠.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듣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아집과 독선이 생겨나게 됩니다. 늘 읽고 듣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우리 불자들은 변화해야 합니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독서량이 없는 종교인이 아마 한국 불자들이 아닐까 싶어요. 읽고 듣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여러분들은 바쁘겠지만 반드시 법문을 듣고 불서를 읽어야 합니다.

선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세 가지 방편으로 해탈분을 얻는다면, 이 세 방편의 수를 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세상에 한량없는 재물을 한량없는 사람에게 보시하여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지만, 어떤 이는 한 때 한 줌의 보리가루를 한 거지에세 베풀어도 그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습니다.”

해탈에 대해 우리 불자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어요. 해탈은 계·정·혜나 진·선·미를 벗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걸림없다고 해서 부처님 다문도 벗어나고 계율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해탈은 오직 우리가 번뇌·업보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번뇌·업보는 우리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운명의 장애물’입니다.

운명의 장애물을 보통 세 가지로 표현하는데 첫 번째가 번뇌의 장애인 ‘번뇌장’, 두 번째 업의 장애인 ‘업장’, 세 번째가 결과로 얻은 장애인 ‘보장’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우리가 해탈분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무조건 벗어나라고 다 벗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번뇌는 무엇일까요? 대체로 ‘탐진치만의(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의심하는 마음)’로 대표되지요. 근본 번뇌는 여기서 벗어나는 거예요. 즉 탐냄과 성냄, 어리석음과 교만함,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업의 장애라고 하는 것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장애를 말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인간 몸을 받았어도, 몸이 사는 게 지옥인 사람이 있고 입이 사는 게 지옥인 사람이 있고 생각이 사는 게 지옥인 사람이 있잖아요. 몸이 여유가 없고 늘 부대끼고 힘들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뛰어다녀야 되는 것이 곧 지옥이죠. 입으로 “재수 없어, 죽겠어, 환장하겠어, 미치겠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또 말의 장애가 오니 입이 지옥입니다. 이게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말은 우리의 생각을 대변해 주니까요. 쓸데없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면 이게 또 생각의 지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잘돼, 할 수 있어’라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가요? 몸과 입과 생각이 다 긍정적으로 변하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지옥이 변하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정말잘돼’를 늘 말하고 생각하고 다니다보면 어느새 ‘잘되는 것’이 당연하게 됩니다.

여기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의 마음이 다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량없는 재물보다 보릿가루 한 줌을 베푼 이가 해탈분법을 얻기도 하니까요. 바로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른 차이입니다. 아무리 많이 베풀어도 내 개인의 사리사욕만을 위한다면, 이는 남을 위하는 진심이 담긴 한 웅큼의 보릿가루보다 못한 것입니다. ‘빈여일등’이 대표적이지요.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계율을 받아 지켜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지만, 어떤 이는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팔계(팔관재계)를 지키고도 해탈분법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세상의 한량없는 부처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을 수지 독송하고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지만, 어떤 이는 사구게(四句偈) 하나만 읽고서도 해탈분법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의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베풀고 듣고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나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면 건성으로 하게 되고 건성으로 한 것은 생각보다 그 의미가 크지 않아요. 우리 인생살이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롭고, 괴로운 것은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우리가 인생에서 느꼈다면 해탈분법을 이미 얻은 게 되는 거예요.

금생의 부족함으로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여러분들은 감사한 일이지요.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생사의 허물(육도윤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차츰차츰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한 생각 잘못하면 무조건 또 한 생을 태어나서 지지고 볶고 해야 됩니다. 불교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육도윤회를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생사의 허물을 알아야 합니다. “기뻐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뛰겠는데 생사의 허물이 뭔 필요가 있대요?” 그러면 금생에선 안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은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여차하면 업을 쌓아 지옥·아귀·축생이 기다리고 있고 천상계를 간다 해도 업이 다하면 다시 지옥으로 떨어져서 고통 받지요. 그래서 부처님이 인간 몸 받기 힘들다고 하신 거예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또 불법을 만날 수 있을 지 아무도 몰라요. 우리가 불퇴전지(수다원)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다시 어느 곳에 가서 방황할지 모르죠. 이걸 생사의 허물을 알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또 우리네 인생이 아무리 기뻐도 그 기쁨은 다 한계가 있잖아요. 결혼하고 5년 만에 아들 낳았다고 좋아했는데 그 아들이 속을 썩이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이구, 내가 저걸 왜 낳았나’ 싶은 사람도 많이 있잖아요. 그렇지요?(웃음) 아무리 기쁘다고 한들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고 순간일 뿐입니다. 기쁨은 잠깐이고 고통은 길다는 것 또한 생사의 허물일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열반의 기쁨, 그 안락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반의 기쁨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부처님 법을 먼저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그 생사의 허물을 알고 그 다음에 열반의 안락함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보릿가루 한 웅큼을 주어도 그것으로 해탈분법을 터득하게 되고 알게 된다는 거예요. 불교가 이렇게 멋진 종교입니다. 그렇지요?

오랫동안 바둑을 배웠다고 해서 다 실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18급끼리 20년간 하면 뭐해요. 그래봤자 18급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스승한테 가서 배우면 잠깐 동안에도 실력이 늘어나는 거예요. 해탈분법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생사의 허물을 싫어하고 열반공덕의 안락함을 깊이 보는 사람은 비록 베푼 것이 적고 계를 지킨 것이 적고 들은 것이 적어도 해탈분법을 얻습니다. 다음을 봅시다.

“선남자여, 이 법을 얻는 자는 세 때 중, 즉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때나, 연각이 나오는 때나, 이 두 때가 없으면 아가니타천(색구경천, 色究竟天)이 해탈을 설할 때 이 사람이 듣고 해탈분을 얻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해탈법문에 대해 부처님이 오셔서 하시거나 벽지불 연각이 와서 하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색구경천의 하늘에 계신 천신이 와서 이를 설할 때 듣고 해탈분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은 욕계천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방일하기 때문입니다. 또 색천(색계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세 가지 방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무색천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법의 체는 이 몸과 입과 뜻인데 몸과 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구로주 사람들도 역시 얻지 못하니, 이 세 가지 방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방편은 앞서 공부한 혜시, 지계, 다문인 것 기억하시죠? 여기서 거듭 강조됩니다. 욕계천은 욕계육천으로, 사천왕천부터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입니다. 이들은 방일하기 때문에 해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무색천에는 공무변처천, 식무변천, 비상비비상처천, 무소유처천 등 사선천이 있습니다. 무색계에는 생각만 있고 몸과 입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당장 쌀 빌리지 않으면 굶어죽는 상황이 아니라면 혜시와 지계와 다문을 자꾸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북구로주는 어디일까요? 불교에서 북구로주를 장수천(우타라쿠루)이라고 칭합니다. 이곳은 복보가 가장 뛰어나므로 가난과 부유함이 없고 장수하고 요절함의 차별이 없어 혜시, 지계, 다문이 본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수천에 태어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8난(八難) 가운데 하나예요. 장수천에 태어나면 부처님 법을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곳에 태어나면 혜시를 할 기회도 없고 계율을 닦을 기회도 없고 다문할 기회도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가요? 살기 어렵고 조금 부대끼더라도 은혜를 베풀 수 있고 계율을 지킬 수 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이 곳이 가장 좋은 세계겠지요? 여러분들은 좀 지지고 볶고 힘든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복이 가장 많다고 생각을 하셔야 돼요.

“이 해탈분은 세 종류의 사람이 얻을 수 있으니, 이른바 성문, 연각, 보살입니다. 중생이 선지식을 만나면 성문의 해탈이 바뀌어 연각의 해탈을 얻고, 연각의 해탈이 바뀌어 보살의 해탈을 얻습니다. 보살이 얻은 해탈분법은 물러나거나 잃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보살의 해탈분이 최고인 이유가 나왔네요. 성문승은 오온사제, 즉 색수상행식온과 고집멸도 사성제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칭합니다. 그 다음에 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 쭉 하는 것을 12연기라 하는데 이를 공부하는 분을 연각 또는 벽지불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보살은 잘 기억하고 있겠지요? 바로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의 분법이 최상이고 또 현실적으로 우리가 좋으면서도 물러남이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오온사제나 12연기를 공부해야 되는 줄 아는데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무상 고 무아는 저절로 터득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왜? 우리가 ‘내 꺼’라고 고집 부리는 것은 베풀다 보면 없어지게 되어있어요. 무상과 고 무아는 내가 베푸는 마음을 갖고 자비심을 갖고 이렇게 되면 금방 소멸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최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보살이 얻는 해탈분법은 물러나거나 잃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게 육바라밀로 닦은 공덕이 되는 거예요 그죠? 해탈분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입과 뜻으로 얻을 수 있어요.

해탈품은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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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잘돼’ 법어장에 깃든 무한 긍정의 힘

안심정사서 만난 특별한 글귀
법안 스님 친필…만장 훌쩍 넘어
크고 작은 영험담 이어져 ‘눈길’

 
“3년간 아무리 노력해도 집이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썩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친구를 따라 간 안심정사에서 법안 스님의 글 ‘정말잘돼’를 액자로 받아 거실 벽에 걸어뒀어요. 그 후 2주 만에 그토록 팔리지 않던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재수를 하는 아들이 공부할 때 집중을 못하고 의지력이 없어 걱정이 많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법안 스님의 ‘정말잘돼’를 어렵게 구해 책상 앞 벽에 걸어줬지요. 아들이 글귀를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난다고 하더라구요. 그 해 수능에서 아들은 소위 말하는 ‘대박’ 점수가 나왔고 애초 계획했던 수준보다 더 높은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 다니고 있습니다. 가피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행복도량 안심정사를 널리 알리고 있는 글귀 하나가 있으니 바로 ‘정말잘돼’다. 회주 법안 스님은 매년 한지에 이 글귀를 친필로 작성해 만든 법어장을 신도들에게 전해오고 있다. 법어장은 ‘정말잘돼’라는 글귀 하나 써 있는 단순한 형태다. 그럼에도 신기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영험담들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안심정사 신도가 아닌 일반 불자, 또 종교가 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입소문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잘돼’ 법어장은 이미 2013년 1만장을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스님이 직접 친필로 작성하는 까닭에 소장하기 힘든 ‘희귀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에 안심정사는 법어장을 원하는 이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간단한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논산에 거주하는 한 신도는 “그 스티커도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며 “벌써 친구들의 부탁으로 몇 번이나 스티커를 얻어온 줄 모르겠다”고 반응을 전했다.

안심정사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이 법어장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불자는 “지인인 송호창 배달풍수지리학회장에게 법어장을 보여준 적이 있다”며 “송 회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 정도로 기의 파장이 대단한 글은 처음 본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 불자에 따르면 집무실에 찾아온 송회장은 거실과 안방, 서재 등을 둘러보며 수맥을 점검했는데, 작은 아들 방에 수맥이 흐른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법어장이 책상 근처의 수맥을 차단하고 있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라고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법안 스님은 “글을 쓸 때 받는 사람이 복을 짓고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할 수 있도록 축원의 마음으로 정성을 들일 뿐 ‘기’가 있을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도움이 됐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미소 지었다.

같은 글귀를 1만번 넘게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안 스님은 법어장을 쓸 때 남다른 정성을 기울인다. 이 법어장으로 인해 더 많은 불자들이 긍정의 마음을 가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말잘돼’ 글귀 하나를 만들기까지 수없이 고민을 거듭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법안 스님은 “1만장을 넘어가자 모든 글귀가 똑같은 모양으로 써진다”며 “그래서 획을 살짝 기울이거나 길이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전했다. 스님은 특히 “정말잘돼는 긍정의 함축과도 같아 글을 쓸 때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축원과 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법어장은 단순한 글귀이지만 그 속에 담긴 발원이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힘을 주고 잘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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