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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오현의 ‘허수아비’

기자명 김형중

마음 다 비운 텅 빈 존재이기에 세상 모든 것 수용하는 대심보살

새떼가 날아가도 손 흔들어 주고
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어 주고
남의 논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풍년이 드는 해나 흉년이 드는 해나
-논두렁 밟고 서면-
내 것이거나 남의 것이거나
-가을 들 바라보면-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
맘 다 비우고 두 팔 짝 벌이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다 들어오는 것을

편견 사로잡히면 실상과 괴리
허수아비는 일심부동의 존재
허수아비처럼 바라볼 것 강조

내가 잘났다고 주장하는 아만심과 고집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이다. ‘금강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떠난 사람이 보살이다. “모양과 형상, 소리를 통해서는 여래를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는 인연화합의 가상체임을 아는 사람이 여래를 볼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진 사람은 사물과 사건 그리고 진실의 실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인간은 100% 객관적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미 자신이 살아온 사회나 주위 환경과 집단의 주관적인 사상, 특정 이데올로기에 지배를 당하여 오염이 될 수밖에 없다.

선불교에서는 무심, 무념, 허심을 강조한다. 어디에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마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 “머무는 바가 없는 마음으로 마음을 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선입견이나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서 마음을 일으켜야 진실,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허수아비는 막대기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삿갓을 씌어 들판에 세움으로써 참새나 동물들을 속여 곡식을 보호하려는 가짜 형상체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생각하고 행위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주관이 없는 사람, 아바타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허수아비의 부정적인 언어 이미지를 반전시켜 “남의 논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 맘 다 비우고 두 팔 짝 벌이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다 들어오는 것을”이라고 하여 허수아비를 무심(無心)의 이상적인 수행자를 상징하고 있다. 허수아비는 맘을 다 비운 텅 빈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대심(大心)보살이다.

허수아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변함이 없이 서 있는 부동심이다. 시인은 수행자가 마음이 조석변개하는 원숭이 마음이 아니라 일심부동인 허수아비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읊고 있다.

남의 잔치에 가서 술 한 잔 마시고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는 삶이 도인이다. 남의 기쁨을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 희무량심이다. “새떼가 날아가도 손 흔들어 주고/ 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어 주고”라고 읊은 시인의 마음은 자타불이의 자비심이 없으면 불가한 일이다.

현대적 지도자상은 다양한 의견을 잘 수용하여 화해시키고 소통시키는 사람이다. 소통하고 수용하고 관용하려면 내 고집과 아만이 없어야 가능하다. 꽉 찬 마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 내 마음을 비우고 가진 것이 없는 무소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구도자이다.

마른 나무인 허수아비처럼 마음을 무심하게 비우고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라.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허수아비처럼 바라보라고 시인은 읊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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