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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들의 사제, 범천(梵天)

기자명 심재관

신들의 사회서 사제의 지위·수행자 모습 보여주는 대표적 신

▲ 카주라호의 파르슈나나타 자이나 사원의 벽면에 조각된 브라흐마. 네 개의 손 가운데 두 손에 의례용 헌유(獻油) 도구와 경전을 각각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면의 머리 뒤쪽으로 조각된 두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있다.

사실 범천은 잊혀진 신이다. 인도 내에도 이 신을 주신으로 모신 신전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물은 여전히 많이 존재하지만, 문헌 속에서 베다 시대를 제외하면 이 신이 주목받는 경우는 썩 많지 않다. 힌두교의 만신전에서 이 신이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다른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이 신은 일부 석탑이나 부도에 불자(拂子)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지거나, 탱화 속에서 관모를 쓴 귀인의 모습으로 제석천 옆에 나란히 서있는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범천은 고행자거나 혹은 현자
사제들 신으로서의 특징 대변
손에 염주와 물단지를 들거나
머리가 여럿인 형태로 묘사돼

인도불교로 흡수되면서 변모해
탄생·출가 때 제석천과 등장
붓다 삶 곳곳에서 보조역 수행

힌두교의 신 브라흐마(Brahmā)를 흔히 범천(梵天)이라고 번역하며, 많은 사람들이 브라흐마를 힌두교의 창조신 정도로 알고 있다. 시바와 비슈누와 더불어 힌두교의 대표적인 삼신(三神)을 이루며 이들과 균형을 이루는 신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이 잘못된 이해는 아니지만 균형 있는 이해라고 할 수 없다. 시바 또는 비슈누와 달리 브라흐마는 훨씬 하위의 신이며, 창조의 역할도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다. 생산과 창조는 시바나 비슈누와 같은 다른 신들의 경우도 가능한 일이며 그 일 자체가 인도의 신학적 토대 위에서 그렇게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창조라는 것은 적어도 인도문화의 토대 위에서 ‘허드렛일’에 해당한다. 말이 좋아서 창조자일 뿐이지, 실은 제조업자에 해당한다. 직업분화의 관점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지금의 인도인들 사이에서 크게 존중받거나 선호하는 일이 아니다. 프라자파티(prajapati)나 비슈바카르만(viśvakarman) 등과 같은 베다 시대의 신들이 있었지만 이 신들도 브라흐마와 같이 거의 사라진 신에 불과하다. 지금도 네팔에서는 은이나 동과 같은 금속으로 생활용기를 제작하는 계층을 비슈바카르만이라 부르는데, 이들 또한 상층 카스트에 속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신화 속에서 브라흐마가 ‘생각으로만’ 또는 ‘생각의 질(guṇa)’에 따라서 창조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하겠는가. 육체노동을 통해서 생산한다는 것이 과거에도 신의 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브라흐마의 대표적인 창조의 장면을 떠올리면, 브라흐마 신이 하는 창조가 자유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신성한 모습이라기보다는 더 지고한 어떤 신의 창조를 대신하는 하청노역자의 모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데오가르(Deogarh)의 비슈누 신전에 묘사된 유명한 브라흐마 신의 탄생신화 묘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주의 휴지기(休止期)를 암시하듯 비슈누는 잠시 잠들어 있고 그의 잠 속에서 피어난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에 브라흐마는 창조를 시작한다. 이 모습은 마치 창조를 위해 임시로 파견된 비슈누의 화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창조신이 인도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반복적인 윤회 속에서 이 신은 생산에만 참여하고 있을 따름이지 비슈누 신이나 쉬바 신과 같이 뿌림(Pravṛtti)과 거둠(Nirvṛtti), 또는 우주적인 발현과 쇠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창조와 소멸의 우주적 사이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최고신들의 역할을 일부 대행하거나 보조하는 존재처럼 나타난다. 악마에게나 신에게, 또는 인간들에게 이들이 고행을 했을 때 그 대가로 보상을 해주거나 우주적인 고민거리가 발생했을 때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범천이 비록 오래 전부터 주변부의 신으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이 신은 신들의 사회에서 사제의 지위, 또는 수행자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이다. 신들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의식을 집전하는 사제가 있어야하는데, 이 때 등장하는 신이 브라흐마이다. 예를 들어 엘레판타(Elephanta) 석굴에 조각된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장면 속에서 결혼의식을 주관하는 브라흐마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불을 피워놓고 결혼의례를 치르던 사제의 신 브라흐마는 파르바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신의 성욕을 참지 못하고 정액을 사정하고 만다. 이 때 흘러나온 정액이 변하여 세상에 현자(賢者)들이 탄생하게 된다. 때로는 사제의 상징물로서 베다경전을 들고 있는 조각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고행자(jaṭin) 혹은 현자(ṛṣi), 또는 사제들의 신으로서, 범천은 이들의 특징을 대변하듯이 대부분 그들의 필수품을 지니고 다닌다. 손에는 염주나 물단지를 들거나 경우에 따라 경전이나 의례에 필요한 공양도구를 들고 있기도 하다. 불자(拂子)를 들고 있는 경우도 간혹 보인다. 이러한 점은 또 다른 사제의 신인 아그니(Agni)와 유사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 그러나 신체적 특징으로 이 신은 더 분명히 다른 신과 구별되는데 4개의 머리를 갖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어떤 신화 문헌에 따르면 5개의 머리를 갖고 있었으나 그의 정수리 머릿속에 숨겨져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완전한 입체로 표현될 경우는 4개의 머리로 형상화되며 부조로 나타날 때는 보통 3면의 머리로 표현하게 된다. 대부분의 힌두신들이 그렇듯 자신들만의 특정한 동물을 타고 다니는데 범천은 거위(haṃsa)를 타고 다닌다.

▲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 붓다의 출생을 돕는 제석과 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범천. 간다라 2∼3세기경. 워싱턴 프리어 갤러리.

초기 힌두교의 이러한 브라흐마의 모습은 인도불교로 흡수되면서 상당한 변모의 과정을 겪게 된다. 창조자 혹은 생산자로서의 모습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베다 문헌에서 그려지던 근친상간의 모습도 배제된다. 또한 힌두신화의 서사 패턴 속에서 하위의 신과 인간들이 고행을 통해 소원을 빌면 즉시 그에 응답하던 독특한 기능도 불교 속에서 완전히 탈락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는 범천의 다두(多頭)형태나 승물(乘物)이 표현된 사례가 없다. 대신 그는 다른 신중과 마찬가지로 붓다의 청중이나 질문자로 등장하거나 설법의 보조자로 등장한다. 또한 붓다의 주요한 삶의 국면 속에 등장해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의 탄생이나 욕불(浴佛), 출가유성 시에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보조적이지만 대표적인 신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범천의 역할은 무엇보다 붓다에게 그가 깨달은 바를 중생들에게 설파해주기를 간청하는 소위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사례일 것이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권청품(勸請品)’ 등에 묘사된 바와 같이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자신이 증득한 내용을 중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놓고 스스로 의문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의중을 알아챈 범천은 그를 설득해 가르침을 열 수 있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역할의 변모  뿐만 아니라, 이 신의 주요한 신체적 특징들과 성격도 불교 속에서 크게 바뀌게 된다.

불교에 수용된 범천은 제석천과 짝을 이루어 석가모니의 협시존으로 등장하면서 삼존상을 이루기도 하는데, 비교적 초기의 삼존상 모델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이는 인도불교의 삼존불이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우협시 관음과 좌협시 미륵으로 많이 이루어진 경우를 볼 때(물론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삼존불 양식과 특이한 일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좌협시의 미륵은 범천과 유사한 모습을 취하며 우협시의 관음은 제석천과 대응을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미륵은 본래 바라문 출신이었고 그러한 사연으로 독특한 머리장식과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륵이 물병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자(拂子)를 들게 되는 경우도 범천의 경우와 같다. 보관이나 터번을 쓴 채로 꽃다발이나 연꽃을 들고 있는 관음은 마찬가지로 보관을 쓰고 바즈라 등을 들고 있는 제석천과 비교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네 협시존들이 함께 등장하는 부조도 간다라에서 등장한다.

여기서 좀 더 범천과 미륵의 머리장식을 살펴보는 것이 범천의 형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초기의 범천과 미륵의 머리장식은 거의 동일하게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좌우로 접어 올린 다음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접어 올린 머리카락을 리본의 형태가 되도록 앞뒤로 묶어서 처리한 형태다. 반드시 이러한 머리형태가 아니라 머리카락을 정수리 위쪽으로 모아 올려 다시 다른 머리카락으로 봉긋하게 묶어준 형태나, 또는 머리를 땋아서 감아올린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머리 형태를 시기(尸棄)라고 음사했는데 이는 ‘봉우리가 있는 (자)’를 뜻하는 시킨(śikhin)에서 유래한다. 정수리쪽에 머리 뭉치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머리를 삭발하지 않고 고행을 하는 바라문들의 오랜 행색을 반영한 것이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에서는 시기(尸棄)를 지계(持髻)나, 나계(螺髻), 또는 화정(火頂)으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가 흔히 불상에서 보듯 소라머리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상투머리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마경’의 한역에도 구마라집과 현장은 지계나 나발로 옮기고 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이것이 불상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게 작게 말아 올려진 여러 개의 소라 형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마경’의 ‘불국토품’에서 범천을 ‘자티 브라흐마(jaṭī brahmā)’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때의 자티는 머리 위쪽의 솟아오른 머리뭉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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