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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이론

지난 해 필자의 책을 출간한 ‘사이언스북스’의 편집장이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의 최초 종신 여교수인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를 건네주었다.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전공의 그녀는 극미한 소립자의 세계부터 무한히 펼쳐진 우주까지 물리학자들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힘들게 얻은 지식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이 책을 읽고 “21세기는 리사 랜들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는 추천사를 썼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첨단과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이 곧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클린턴은 동시에 여러 책을 읽는 잡독가(雜讀家)로 알려져 있다. 그의 보좌관이 이 점을 지적하여 사람들이 그를 괴짜로 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원래 괴짜야.” 미국에서 가장 후미진 아칸소에서 의붓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자란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데는 왕성한 그의 지적 욕구가 큰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리사 랜들은 그의 저서의 일부를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에 할당했다. 유효이론은 물질을 측정하는 스케일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일상생활의 물리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뉴턴의 고전역학은 원자 이하의 소립자의 세계에는 부적합하여 양자역학으로 대치되고 그보다 더 작은 플랑크 길이(10-37m)의 세계에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이 지배이론이 된다. 그녀의 유효이론은 “결국 스케일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유효이론’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고 단지 공간의 스케일만 문제가 된다. 시간의 차원에서 유효이론의 대칭 이론은 무엇이 될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가 될 것이다. 고정된 공간의 한 지점에서도 시간은 끝없이 흘러간다. 즉 유효이론을 시공(時空)의 차원에서 일반화하면 바로 불교의 핵심인 ‘제행무상’이 된다.

불교는 미망에 속박되어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함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참선, 독경, 염불, 다라니 등이 모두 이 목적을 위한 방편이다. 만약 우리가 제행무상의 진리를 뼈저리게 각성한다면 굳이 이런 방편에 의지하지 않고도 편안히 해탈하는 길에 이르리라 생각한다. 인류 역사상 제행무상보다 더 위대한 가르침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다가오는 4.13 총선을 앞두고 극도로 혼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국민이 제19대 국회가 그 생산성과 품위에 있어 건국 이래 최악의 국회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누가 이 최악의 국회에 책임을 져야하는가? 두말할 것 없이 그런 국회를 만든 우리 국민이다. 20대 국회는 분명히 19대와 달라져야 한다.

혼미한 현재의 정국에서 가장 특출한 인물은 아마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가 아닌가 싶다. 그는 붕괴 직전의 당을 문재인 전 대표에게서 인수한 후에 현란한 풍운조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진정한 능력은 야당분열의 명분이 된 ‘낡은 진보’와 ‘운동권 의식’의 낡은 정치이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성공단, 북핵도발, 햇볕정책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전통적인 더민주당의 정책과 어긋나는 그의 발언에 항의하는 당내 강경파에 대하여 김 대표는 “일관성이 밥 먹여주느냐?”고 일축했다. 시대가 변했으니까 낡은 정치이념을 시대에 걸맞은 유효이념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더민주당을 개혁한다면 그는 역사의 갈채를 받게 될 것이다. 그 길이 제행무상의 진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시대에 걸맞지 않은 낡은 정치이념을 청산하려는 정치세력을 말살하려고 꼼수를 부린다면 그는 준엄한 역사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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