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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엘리트’들의 엽기적 국보 탈취 사건

 
1950~60년대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수난시대였다. 광복 이후 최대 미스터리라 일컬어지는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도난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수많은 국가지정문화재들이 잇따라 도난당하면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특히 1965년 벽두에 주요 일간지들의 지면을 장식했던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국보 75호) 도난사건은 문화재 보호에 대한 허술한 인식을 여실히 대변했던 사례로 손꼽힌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밀양교육청 조사에 의해
향완 도난 사실 알려져
송씨 등 일당 검거 후
2차례 추가 범행 확인

1965년 1월19일, 밀양교육청 이모 계장이 문화재 보존실태 조사 목적으로 표충사 사명당유물관에 도착했을 때였다. 유물관 바깥문 열쇠를 열고 들어간 그의 눈앞에 충격적인 광경이 나타났다. 삼중 자물쇠가 채워진 유물함이 볼썽 사납게 부서져있었고 내부는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유물함에는 표충사가 자랑하는 국보, 청동 은입사 향완이 보관돼 있었다. 금관저 1개와 가사고리 1조도 함께 종적을 감췄다. 그는 곧바로 표충사 측에 도난사건을 알렸고, 스님들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경내에 수사본부를 꾸렸다. 사찰 관계자도 아니고, 보존실태 조사차 방문했던 공무원이 국보 도난사건의 최초 발견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경찰은 사찰 주도권을 둘러싼 분쟁에 주목하고 주지의 반대편에 서 있던 스님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전날 오후, 부산에서 향완을 보기 위해 대학생 5명이 표충사를 찾았다는 제보에 따라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국보가 해외로 반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항만에 형사들을 배치하는 한편 전국 경찰청에 범인 체포 협조 요청을 전달했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언론은 청동 은입사 향완의 상세한 사진과 특징 등을 보도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70여일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의 관심도,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정녕 국보는 이토록 허무하게 잊히게 될 것인가.

3월2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들이 고척동의 한 주택을 급습했다. 그곳에 사는 송모씨가 표충사 도난사건의 확실한 진범이라는 제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서로 연행해 추궁한 결과 박모씨와 최모씨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3명은 1월18일 새벽 5시, 표충사 경내로 잠입해 유물함을 박살내고 국보를 탈취했다.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이틀 동안 밀양 인근에 숨어 있다 쌀 두 말을 산 뒤 그 안에 국보를 숨겨 서울로 상경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골동품상. 주인인 이모씨는 송씨 일당이 건넨 유물이 국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5만원에 사들였다. 이모씨는 자신의 집에 국보를 꽁꽁 숨겨뒀지만 결국 경찰에 구속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일당이 검거되면서 놀라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국보 탈취 직후인 2월10일 안양 염불암에서 산선대불도를, 2월15일 평창 상원사에서 석불좌상을 차례로 훔쳤고, 이씨는 각각 1500원과 2000원에 매수했던 것이다. 이씨 집에서 국보는 물론 염불암 대불도와 상원사 석불좌상이 함께 발견됐다. 전국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출귀몰하며 불교문화재를 훔쳐온 이들의 작태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편 세간에는 이들이 소위 ‘엘리트’였다는 사실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골동품상 이모씨는 은행에 고용돼 화폐컬렉션 감정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더욱이 예술대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주범인 송씨 역시 대학교육을 받은, 당시로서는 인재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전국 사찰에서 문화재를 탈취하는 엽기 행각을 펼쳤던 이들이 지능범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것은, 참혹했던 문화재 보호 인식 수준이 만들어낸 비극적 결과에 불과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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