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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6. 해탈품(解脫品)-하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3.14 14:44
  • 수정 2016.03.14 14:49
  • 댓글 0

부처님 가르침 배우고 실천하는 출발점은 지극한 신심

▲ 법안 스님이 논산 안심정사에서 불공을 집전하는 모습.

출·재가 모두에 해당하는 법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지녀야
재·계 지키고 어기지 않으면
비로소 해탈분법 얻을 수 있어

중생 구제 원력 세우는 순간
보살의 세계 눈앞에서 이뤄져

지난 강설에서 해탈분의 의미와 이를 얻을 수 있는 방편에 대해 공부했지요? 육바라밀 수행은 재가자와 출가자가 다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자기 자신만을 구제하려는 가르침이 아니라 재가불자와 출가불자, 또 모든 사람들이 열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르침이예요. 이 점 유념하고 ‘해탈품’ 이어가겠습니다.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설법하는 사람이 해탈분이 있는 사람들과 해탈분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 합니까?” “선남자여, 이러한 법은 두 종류의 사람이 얻을 수 있으니, 재가자와 출가자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은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듣고서는 받아 지니며 삼악도의 고통을 듣고서 두려운 마음에 몸의 털이 모두 일어나고 눈물을 흘리며 재(齋)와 계(戒)를 굳게 지켜 작은 죄일지라도 쉽게 어기지 않으니 이러한 사람은 해탈분법을 얻습니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모두 해탈을 할 수가 있지만 조건이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법을 듣고 지니는 지극한 마음(지심)과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운명의 장애(번뇌장, 업장, 보장)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법일지라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소용 없다는 말이예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심성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지극한 신앙심입니다. 불교는 신앙이지 철학이 아니예요. 물론 철학적 기반이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종교이고 또 지구상에서 최고 좋은 철학이 담겨있기는 합니다. 허나 대승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분명히 신앙입니다. 지극한 신앙심 없이는 원칙적으로 대승불교에 접근 자체가 안돼요. ‘대지도론’에서도 “믿음이 있어야 불법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고 고해의 바다는 지혜로 건너간다”고 했습니다. 지극한 신앙심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는 기본인 셈입니다.

두 번째는 도덕성입니다. 도덕성은 곧 여러분들이 지난 시간에 배운 혜시와 계율, 다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중에서도 계율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운동이 확산된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계율을 지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요. 오계를 다 지키려고 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대지도론’에는 다섯 가지 모두 반드시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지켜도 되며 한 가지부터 늘려나가라고 설하고 있지요. 한 가지 지키는 것을 조금 지킨다고 하고, 두 가지 내지 네 가지 지키는 것을 약간 지킨다고 하고 다섯 가지 지키는 것은 원만하게 지킨다고 표현합니다. 여러분들이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지킨다면 일상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지키지”하고 신뢰받는 거예요.

우리가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경전을 읽는 이유가 뭘까요? 현실에서 실천하며 나의 삶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거지요. 실천 없이 교리만 달달 외우면 뭐하나요? 지도 펼쳐놓고 경치를 논하는 것과 다를바 없어요.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느껴야 경험이고 자산이 되잖아요?

불자들이 간혹 “내가 기도를 많이 했는데 부처님이 안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당신이 부처님을 위해서 뭘 했나요?”하면 “이렇게 정성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어때요?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이 부처님을 위한 기도인가요? 아니면 모든 것이 심즉시불(心卽是佛)이니 공양이고 뭐고 필요 없고 마음으로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는 부처님 전에 한번 엎드렸다고 “내 일 해결해 달라”고 고집 피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부처님께 무한히 의지하고 책임을 지우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안하고 부처님만 의지하면 되겠어요? 실천행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매달림이 불과해요. 평소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부처님 전에 향공양이라도 올리거나 방생이든, 조상천도든, 불공이든 한 두가지를 정해 실천해야 합니다. 아무런 실천 없이 기도만 하면서 심즉시불이라고 하니 답답하고 안타까울수 밖에요.

“선남자여. 외도들이 수명이 무량겁인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의 정을 얻었더라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아비지옥에서 큰 고뇌를 받으면서 무량겁을 지내더라도 이러한 해탈분법을 얻는다면 이사람은 열반할 사람으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나는 웃다까라마뿟따(울두람불)에게는 가엾은 마음을 내지만 데바닷타에게는 불쌍한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해탈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찬찬히 살펴봅시다. 웃다까라마뿟따는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부처님 외에 최고의 선정가였어요. 부처님께서는 이 분을 통해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을 배웠지만 궁극의 경지가 아님을 알고 나옵니다. 웃다까라마뿟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만 하면 새가 와서 방해를 해 결국 해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다음 생에는 모든 새를 다 잡아 죽이겠다’고 원을 세워 정말 새 잡는 짐승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때요? 똑같이 고행을 하더라도 결과가 다르지요?
웃다까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천’을 이루어 무색계정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시고 제일 먼저 그 분들을 구제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반면 데바닷다는 살아생전 지옥에 빠져 있어도 부처님의 인연으로 해탈분법을 받고 열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불자들도 지금 비록 현실적으로 괴롭고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능히 헤쳐 나간다면 열반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는 거예요. 무간지옥, 아비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해탈분법을 아는 불자라면 이것이 곧 희망이고 열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외도와 불교의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공자님 말씀 중에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이 보인다는 뜻이지요. 푸를 때는 모든 나무가 똑같았지만 후에 보니 아니더라는 거죠. 이게 바로 해탈분법을 놓고 본 외도와 불자의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바새계를 부지런히 구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서 들은 대로 행하여도 계를 얻지 못하고, 출가한 어떤 사람은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구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서 들은 대로 행하여도 역시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해탈분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고 계를 닦는다고는 할 수 있지만 계를 지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때요? 계를 받기만하고 지녀서 지키지 않으면 소용 없다고 이미 부처님이 말씀하셨네요. 수계만 받고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겠네요. 이를 지계라고 합니다. 계를 오랫동안 지키는 것을 계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뜻의 득계라고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대목입니다. 다음을 봅시다.

“선남자여. 해탈분법을 얻는 보살이라면 욕계,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남을 구하는 업을 끝까지 짓지 않고 언제나 중생에게 유익한 곳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하늘에 날 업이 있음을 확실히 안다면 이 업을 돌려 사람들 중에 나기를 구합니다.”

내 앞가림을 하고 내 옆 사람도 불자로 만들어 성공시켜 주고 그 다음 가장 높은 단계에 가서는 이제는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곳에 태어난다는 말이지요. 이는 거꾸로 ‘내가 태어난 곳에서 늘 중생들에게 이롭게 하겠습니다’가 됩니다. 내가 금생에 복을 많이 지어 천상계에 태어날지라도 ‘다시 중생계로 오겠다’고 원을 세우면, 여러분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장애가 될 수 없어요. 이 같은 원력으로 의식 수준이 보살에 도달한 순간, 보살의 세계가 눈앞에서 이뤄지니까요.

“선남자여, 성문으로서 해탈분법을 얻으면 몸을 세 번 받음도 지나지 않아 구해탈(지혜로써 무지를 소멸시키고, 선정으로 탐욕을 소멸시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남. 또는 그러한 경지에 이른 아라한)을 얻고 벽지불도 역시 이와 같을 것입니다. 보살 마하살이 해탈분을 얻으면 비록 셀 수 없이 많은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언제나 퇴전하지 않으며 퇴전하지 않는 마음은 어떠한 성문이나 연각보다 뛰어날 것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으면 비록 베푸는 것이 적어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으니 계행이 적고 들은 것이 적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은 설령 삼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삼악도 중생과 같은 괴로움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으면 ‘조유지’라고 합니다.”

불교는 51학년의 공부 과정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지요? 곧 보살 수행의 계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총 51학년의 공부 중에서, 1학년부터 10학년까지의 공부는 십신위 즉 믿음을 공부하는 단계, 11학년부터 20학년까지는 십주라 하며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 21학년부터 30학년까지는 십행, 즉 실천해보는 단계, 31학년부터 40학년까지는 십회향으로 회향하는 과정입니다. 이 11학년부터 30학년까지의 십주, 십행, 십회향의 단계가 바로 조유지로서 환희지(기쁨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조유지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번뇌가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번뇌는 존재합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의심많은 마음이 금방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여러분들도 조급히 생각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 됩니다.

“선남자여, 이러한 보살의 씨앗을 늘리는 데는 또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 몸을 가벼이 여겨 ‘나는 아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몸으로 괴로움을 받아도 싫어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쉬거나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고, 넷째는 한량없는 괴로움과 번뇌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언제나 삼보의 미묘한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씨앗을 만드는 첫 번째는 바로 자기 자신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거예요. 부처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정각을 다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참 쉽지 않아요. 누구나 괴로움을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보살행을 하려면 때론 괴로움이 당면한 순간에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몸은 불구였으나 항상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녔어요. 새벽마다 물 길어오고 소 밥 끓여주고 마당 쓸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니 그 분이 오면 다 좋아하는 거예요. 몸의 불편함을 괴로움으로 받지 않고 타인을 위해 회향한 공덕은 하해와 같습니다. 범부중생은 화내는 것으로 재물을 삼고 수행자는 정진하는 것으로, 보살은 베푸는 것을 재물로 삼습니다. 쉬거나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실천하세요.

또 삼보의 미묘한 공덕을 찬탄하는 것은 불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불자이니 부처님을 늘 찬탄하셔야 돼요. 지극한 신앙이야말로 대승불교의 요체이며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이지요. 불교는 신앙이자 구원의 종교예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구원을 향해서 가기에 언제나 삼보의 미묘한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보리를 닦을 때는 언제나 이 다섯 가지를 닦습니다. 보리의 씨앗을 키워 왕성하게 함에는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시바라밀부터 반야바라밀까지(육바라밀)입니다.

이 여섯가지는 하나로 인하여 늘어나게 되니 바로 방일하지 않음입니다. 게으르지 않은 것, 보살이 방일하면 이러한 여섯 가지를 늘리거나 키울 수 없고 방일하지 않는다면 늘리고 키울 수 있습니다. 선남자여 보살이 보리를 구할 때 네 가지가 또 있습니다. 첫째는 좋은 벗과 친하여 가까운 것이고, 둘째는 무너지지 않는 굳센 마음이며, 셋째는 행하기 어렵지만 행하는 것이고 넷째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구체적이고 자세한 가르침이지요? 여러분들도 이를 닦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하나·하나씩 조금·조금씩 하다 보면 ‘자고 일어나 보니까 유명인사가 되어있더라’ 같은 느낌으로 어느새 내게 변화가 일어나 있을 겁니다.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 위없는 보리심을 처음 낼 때에는 곧 무상복전(無上福田)이란 이름을 얻으니 이 보살은 모든 세상의 어떤 일보다, 어떤 중생들 보다 뛰어납니다.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 위없는 보리심을 처음 낼 때에는 곧 무상복전이란 이름을 얻으니 이 보살은 모든 세상의 어떤 일보다, 어떤 중생들보다 뛰어납니다.”

무상복전은 위없는 복의 밭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은 보리심의 마음을 냈으니까 위없는 복의 밭이 된 거예요. 복의 밭이 되었으니까 자격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선남자여, 보살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보살이고, 둘째는 출가보살입니다. 출가보살이 해탈분법을 얻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는 얻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재가자는 나쁜 인연에 많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불자들은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예요. 오히려 재가불자들의 노력이 그만큼 더 값지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거예요 왜? 훨씬 많은 장애를 헤치고 오는 거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금생에 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가다보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조급한 마음 내지 말고 방일하지 아니하면, 퇴전하지 아니하면 된다’ 이렇게 꼭 말씀을 해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차분하게 한 단계 한 단계 들어가면서 이루면 됩니다. ‘세한연후 송백지후주’라고 했지요? 여러분들이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안날 지도 몰라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죠.

여러분, 그동안 ‘우바새계경’을 공부하면서, 보살불교의 핵심이 실천임을 잘 알게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따른 실천행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샌가 변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4품 ‘해탈품’까지 공부를 했는데, 앞으로도 이 내용이 거의 반복되면서 조금씩 어렵고 세세하게 진행이 될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 ‘우바새계경’ 강설이 끝날 때 쯤이면 정말로 진시보살, 희유보살, 희유불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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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1만원 보시’ 만가지 실천으로 복 짓는 방법

진정한 행복 설계하는
안심정사 ‘만선공덕회’

▲ 군법당에 전달되는 물품들.

매월 1만원으로 이 세상을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단돈 1만원으로 만가지 선업을 쌓는 효과를 얻고,  그로 인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극락정토로 이끄는 특별한 모임이 있다. 바로 행복도량 논산 안심정사의 ‘만선공덕회’가 그것이다. 만선공덕회는 매월 1만원을 계좌로 이체해 보시하고, 이를 적립해 군부대 포교 지원과 교도소 법회 지원 등 다양한 후원·포교 활동을 전개하는 봉사·후원 모임이다.

‘만선공덕회’라는 명칭은 회주 법안 스님이 직접 고안했다. 중국 송나라 연수 스님의 ‘만선동귀집’에서 의미를 따온 것으로, 육바라밀 그 자체인 ‘만가지 행’으로 정토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명칭 그대로 ‘만선공덕회’는 만가지 선으로 공덕을 쌓는 실천행이 핵심이자 목적이다.

과연 매월 1만원을 보시하는 것만으로 만가지 선행이 가능할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만선공덕회 회원들이 1만원씩 십시일반 동참한 금액은 매년 군부대에 소책자 ‘부처님 말씀’ 24만권, 초코파이 1만2000박스, 군장병을 위한 단주 ‘럭키체인’ 지원으로 이어진다. 매년 지원 물품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3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교도소 법회 지원과 재소자 간식·서적 지원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모든 입·지출 내역은 매월 결산해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되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1만원 십시일반 모연이 대규모 후원 활동으로 회향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법안 스님의 원력에 기반한 안심정사의 적극적인 후원에 있다.

법안 스님은 매월 부산 방생법회 수익금과 정월·가을 방생법회 수익금 전액을 ‘만선공덕회’몫으로 돌린다. 10원 한 장까지도 남김없이 입금하니 그 역시도 투명한 방식이다. 올초 정월 방생법회 수익금은 무려 3500만원 이상. 만선공덕회 활동기금의 90% 이상이 안심정사의 기금 지원이다. 결과적으로 회원들은 매월 1만원으로 10배에 달하는 공덕을 쌓게 되는 셈이다. 안심정사 도량이 없는 원주 등 지역에서도 만선공덕회의 형태를 따 자발적인 소규모 후원그룹이 형성되는 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안 스님은 “만선공덕회는 회원들이 지속적인 보시행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며 “어찌보면 월 1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가장 의미 있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안심정사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만선공덕회의 정식 출범은 2009년이다. 그러나 그 활동은 이미 25년 전 법안 스님이 교도소 포교를 시작한 무렵부터다. 초창기 회원은 극소수였지만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을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
자원봉사·후원 모임이지만 각종 영험담이 함께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회원 자녀가 군 입대를 할 경우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소위 ‘뒷백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좋은 곳으로 배정이 된다는 것. 간혹 사고가 많은 부대에 배정된 경우라도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제대한다. 이 같은 염험담(?)이 입소문을 타 안심정사 신도가 아닌 불자들도 자녀가 군입대를 앞둔 경우 만선공덕회에 가입하는 신기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법안 스님은 향후 만선공덕회를 법인으로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사찰과 완전한 독립체계를 구축하고 보다 확대되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 비, 희, 사’를 기치로 내건 4개의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국내외구호와 의료지원, 문화예술 지원, 포교·교육 등 각각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기반을 닦기 위함이다. 스님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며 “만선공덕회는 그 실천행의 토대를 구축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가입 문의: 논산본찰 041)742-4557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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