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 서정춘의 죽편(竹篇)1-여행

기자명 김형중

백년 인생 푸른 대나무에 비유
대꽃 피는 마을은 ‘피안’ 상징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백 년 인생을 푸른 대나무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푸른 기차는 푸른 대나무이다. 대나무의 수명은 약 100년이므로 인간의 최대 수명과 비슷하다. 가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생사의 한 고개이다. 10년, 20년, 30년…을 단위로 인생의 단계를 나누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대꽃이 피면 대나무는 죽는다.

우리 인생은 어두운 터널 연속
5줄 37자로 아득한 인생 표현
상징성 뚜렷…압축미도 탁월

‘대꽃이 피는 마을’은 피안의 마을, 열반의 마을이다. 우리의 인생은 칸칸이 밤이 깊다. 한 고개 넘으면 또 언덕이고, 어두운 터널이고, 밤의 연속이다. 인생의 길은 아주 멀다.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인생의 길은 길고도 멀다”는 ‘법구경’ 말씀이다.

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으며 나는 누구인가? 이 명제를 푸는 것이 인생이다. 시간은 100년이다. 이 실타래를 푸는 만큼 자기 인생이고, 무엇을 느끼고 아는 만큼 자기 인생의 영역이고 한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부처로 살 것인가? 중생으로 살 것인가? 이것이 자신의 삶이고 행업이다. 대꽃은 백 년 만에 핀다. 그리고 죽는다. 우리의 백년 인생과 같다.

필자의 시골 고향집은 대밭 속의 죽림정사와 같은 대갓집이다. 주인은 청화대선사의 첫 상좌 법성 스님이요, 대지주의 장자였다. 불교 최초의 절이 왕사성의 죽림정사이다. 대나무는 사람이 청소년기에 성장하듯이 한때 우후죽순으로 자란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평생 자라지 않는다.

죽순이 솟아나면 그 종자를 알 수 있다. 잘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대나무도 왕대는 죽순이 처음부터 크고 굵다. 졸대는 처음 죽순이 가늘다. 우리 인간도 될 성싶은 놈은 어릴 때부터 싹수가 있고, 안될 성싶은 놈은 싹수가 노랗다고 하지 않은가.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른 특성이 마디마디가 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장년기·노년기로 구분되듯이 마다마디가 구분되어 있다.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회초리로 절도(節度) 있게 가르치는 것과 같다.

시인은 대나무의 백 년 생존에 비유하여 우리의 인생 백 년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젊은 날에 푸른 청룡열차를 타고 어디가 내려야 할 종착역인지도 모르면서 달려왔다. 80년을 살다 보니 이제 그곳이 거반 왔는가 짐작이 되어 초조하고 불안하다. 이제 저 강만 건너면 나의 여행이 끝나는 것을 안다.

강 건너 저 마을이 백 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죽는 대나무마을이다. 인생은 순간순간이 영원이다. 백년이 순간의 연속이다. 어느 한순간마다 아득하고 절실한 시간이다. 인생의 밤은 길고 깜깜하다. 한순간도 호락호락 녹록하지 않다. 시인은 “여기서, 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하고 읊고 있다.

5줄 37자 짧은 시에서 아득한 인생 100년을 읊은 상징과 의미가 뚜렷하고 압축과 긴장이 잘 표현이 된 좋은 시이다. ‘죽편여행’은 인생 백 년 여행을 상징한다.

대나무는 곧게 자란다. 그래서 선비의 고절한 절개를 상징한다. 대나무는 소리를 낸다. 피리소리를 낸다. 시인이 그 피리로 인생 백 년을 노래하고 있다.

대나무는 푸르다. 힘이 있는 청년과 같다. 파죽지세이다. 대나무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유연하기도 하고 강하다. 외유내강이다. 지조 있는 선비와 같다. 선방에서 깨우침을 주는 장군죽비 소리가 울린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