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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성의 시대가 두려운 이유

기자명 성원 스님

달빛을 잃어버리며 감성도 사라진 걸까

▲ 일러스트=강병호

오늘 초하루법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달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달을 중심으로 하는 삶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양력의 삶으로 전이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달빛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나누웠던 많은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삶의 언저리에 남아 지친 일상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슴속 달은 그런 추억입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아이들에게 달은 그냥 낯선 이야기 속 소품에 지나지 않은 듯합니다.

인류 대학살사 고뇌하던 중
달빛 통해 신선한 답 얻어
하루에 한 번쯤 밤하늘 보며
감성의 리듬 회복하게 되길

20세기 전기 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밤을 잊게 되었습니다. 먼 현생인류의 시작, 아니 첫 유인원으로의 진화에서부터 밤과 함께 동행한 달은 급속히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달의 추억과 달빛의 효용성이 현실에서 사라진 이후 감성의 시대, 낭만의 시대가 서서히 우리들 마음속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자꾸 서운해집니다.

대학 초년시절 이상하게도 인류의 대량 학살사에 큰 관심을 둔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배고픔도 아닌 상황에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들은 매일매일 직업처럼 같은 종을 살해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합리적 이성주의를 주창하는 현시대에 자행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뇌한 적이 있었답니다. 유대인 대학살과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대학살뿐만 아니라 일본이 자행한 731부대의 잔혹한 살육의 현실을 직면한뒤 젊은 나의 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안식처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달을, 달빛을, 그 아련한 추억을 좋아합니다. 인류 대량학살사로 고뇌하던 나의 의식에 신선한 답안을 준 것은 좀 아이러니하게도 달빛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강요받은 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이 말에는 엄청나게 냉혹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차디찰 정도의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한다면 감정적으로 한 번의 살상행위는 저질러질 수 있을지 몰라도 참혹한 대량학살은, 따스한 감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는 우리들을 이성으로 무장시켜놓고, 아기에게서 엄마의 손을 떼어놓게도 하고 무참히 살해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길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차가운 이성의 시대는 밤이 늦도록 밝은 전깃불을 켜놓고 우리들로 하여금 감성의 풍요로부터 눈 멀게 하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문학, 미술, 음악,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도도히 물결쳤던 복잡다단한 낭만주의적 사조를 명쾌히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해놓은 글을 봤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집단보다는 개인적이고,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조’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접한 후 망설임 없이 자신을 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차디찬 이성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던 시절에 스스로 선택되어진 분류였습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뉴욕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의 냉대에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모습이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아 놓고도 변명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또 다른 군국주의자들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 희생자가 어찌 위안부로 불리고 있는 할머니들뿐이겠습니까? 다소 역설적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젊음의 열정과 낭만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전쟁터에 내몰리고, 사랑이 아닌 욕망의 충족만을 강요받아야 했던 젊은이들도 또 다른 의미의 피해자들일 것입니다.

군국주의의 향수에 젖어 다시 한 번 부활을 꿈꾸는 자들을 향해 우리들이 지금 이 순간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차디찬 이성으로 젊은이들을 무장시키고 우리들을 사지로 거침없이 몰아넣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 달에 한 번은 달과의 명상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감성의 리듬을 회복할 것 같습니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이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감성을 전혀 접해보지도 못한 기계적인 이성이 활보할 때가 된 듯합니다. 우리 따스한 감성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가 이성으로 덧씌워졌을 때 겪어야 했던 엄청난 고통은 이제 겨우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번도 감성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한 인공지능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집니다. 그들이 달빛의 아름다움을 먼저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이오리듬의 감성지표는 달의 공전주기와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별빛 아래에서 달빛의 밝기에 맞추어 수백만 년을 길들여져 온 따스한 인간임을 다시 한 번 달빛을 바라보며 상기하면 좋겠습니다.
여성들이 가장 감성에 빠지게 되는 빛의 밝기가 보름달의 밝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밤에는 밤의 어둠으로, 낮에는 태양의 밝기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우리들의 차가워진 이성의 장벽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살자자 의식이 있습니다. 보름달빛 아래서 부처님과 모든 대중들이 함께 둘러앉아 대표자가 바라제목차 계목(戒目)을 낭송하면 그 계를 기준으로 대중들은 스스로의 허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른 대중을 바르게 이끌어 주기 위해 상대의 잘못을 사심 없이 지적해주는 불가의 오랜 전통의식입니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에 부처님과 함께 모여앉아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자신이 깊은 감성에 젖어 그 어떠한 타인의 잘못도 용서하지 못 할게 없어질 것 같습니다.

벌써 초하루 법회도 끝나 밤이 되어 모두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고 사원은 초하루 별빛만 머금은 채 적막하기만 합니다.

왜 사느냐 물어보셨네요. 긴 글이 답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가워진 이성으로 타인들에게 준 상처를 참회하며, 따스한 감성의 온전함을 느끼며 부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자연과 함께 살아보고 싶습니다.

내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
성원 두 손 모아 전합니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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