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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불광산 개산 50주년의 기쁨과 낙관-상

“일대사 성취는 때와 지리적 유리함, 사람간 화목에 있습니다”

▲ 성운 대사가 직접 쓴 글씨. 불광산은 대만의 불교문화발전을 위해 성운 대사의 글씨를 활용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저의 기쁨과 낙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기쁨을 버는 것은 세상의 재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누구나 남이 주는 것을 내가 받아야 기뻐하지만 사실 베푸는 것은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재산을 지니게 되면서 남한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식들 간에 재산 싸움이 되면서 사회에서조차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기쁨과 낙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마음 속 샘물에서 흘러나오고 사상의 통로에서 나오고 대중과 함께 하는 속에서 나오며 인간관계의 감사함으로부터 나오고 열심히 일하여 성취하는 속에서 나옵니다.

빈승은 성격이 매우 낙관적이라 매일을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우울하고 맥 빠진 분위기의 생활을 싫어하고 어렵고 궁색한 사상도 싫어하며 낙관적이고 진취적이며 안온하고 거리낌 없는 것을 좋아해서 불법을 추구함에서도 번뇌를 보리로 전환하고 고통을 즐거움으로 전환하는 불법을 배웠습니다. ‘반야심경’에 오온(五蘊)이 다 공함을 비추어 보면 모든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난다고 서두에서 요점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수행해야 할 길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빈승이 할 말이 있습니다’를 구술하면서 제 일생에서의 즐거움과 낙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이 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16년은 불광산 개산 50주년입니다. 50년 전, 대만 남부의 대수향(大樹鄕) 마죽원(麻竹園)에 정착해 불광산을 창건하면서 빈승은 전문가도 없고 건축가도 없이 가오슝에서 유치원 공사를 해준 인연이 있는, 단지 중학교 졸업 학력의 목수 소정순(蕭頂順) 선생에게 불광산 창건일을 하자고 데려왔습니다.

소 선생은 도면을 그릴 줄 몰랐고 빈승도 그릴 줄 몰랐기에 이 건물은 얼마나 넓고 얼마나 높으며 얼마나 길게 지어야 할지를 우리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렸고 그런 뒤에 소 선생은 건축공사를 하였습니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다되어 가는데 목수, 철공, 시멘트, 기와, 페인트, 철근을 묶는 인부까지 모두 예전 사람들이 그대로 일하고 있으며 바뀐 적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네스북’에 이런 기록도 있을까요?

소 선생은 불광산 공사를 시작한 이후 일을 하시도록 부친도 모시고 왔고 두 아들도 공과대학에서 건축전공으로 졸업한 후 역시 불광산으로 돌아와 공사에 참여하였으니 한 집안 몇 대가 불광산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광산 경내를 둘러보고서 “불광산 법당건물이 아주 장엄하고 가람의 높낮이 배치도 잘 되어 있어서 다니기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보잘것없는 기술자 셋이 모이면 제갈량도 이긴다는 말처럼 저와 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지어낸 것입니다.

불광산이 들어선 이 땅은 토지가 아주 척박하고 곳곳으로 계곡이 깊어서 건축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건설기간 내내 끊임없이 퍼져나갔지만 소 선생은 전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빈승이 소 선생을 얻은 것은 백락이 천리마를 얻은 것과 같은 경우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였습니다.

장엄하고 위용을 갖춘 건축물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소 선생을 모셔다가 그들의 사찰을 지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정이 많고 의리가 있는 소 선생은 “저는 불광산에서 기쁨을 맛본 사람으로 이는 세상의 어떤 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불광산은 이러한 기쁨의 팀워크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매번 건물이 한 채씩 지어지면 빈승은 소 선생의 수고를 격려해주고자 더욱 좋은 기술을 보고 배워서 일을 하라며 해외여행으로 포상하고자 하였지만 항상 “제가 다 준비해두었습니다”라며 사양하였습니다. “소 선생께 포상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해도 “저에게 여기서 일 할 기회를 주신 것이 바로 포상을 주신 것”이라며 사양하였기에 격려금이 탁자 위에서 밀려갔다 밀려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소선생이 웃음을 터트리며 “정말 이상하네요. 제가 다른 곳에서 공사를 하면 돈을 못 받아서 거의 싸우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스님께서 주시는 상금을 제가 받지 않으려 하는 것도 싸워야 하나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광산을 “환희산(歡喜山)”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쁘게 오시고, 보살께서 기쁘게 오시며, 불자들이 기쁘게 찾아오고, 국내외 인사들이 기쁘게 찾아주시고 있으며 심지어는 모든 노동자들도 기쁘게 와서 일하는 불광산은 바로 환희산입니다.

불광산의 기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빈승의 일생 또한 낙관적인 인생으로 기쁘게 생활하면서 매일매일을 설날처럼 느끼면서 즐겁게 생활하였습니다. 저의 기쁨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자세히 말해보라고 한다면 저도 말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상으로 날마다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과 운영경비를 마련해야 하고 학교운영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걱정이 끊이지 않지만 어떻게 기쁠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 세상 모든 일의 성취는 다 하늘의 때(天時)와 지리적인 유리함(地利)과 사람 간의 화목(人和)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50~60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대만 북부 타이베이에서 남부 가오슝으로 옮겨와서 발전을 하고자 하는 빈승을 보고 북부의 도반들은 제가 잘못된 생각으로 틀린 결정을 했다고 여겼습니다. 그 당시 남부의 문화발전은 북부만큼 번창하거나 발전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고 이곳 남부에는 하늘의 때와 지리적인 유리함과 사람간의 화목함이라는 우세한 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람간의 화목함으로 말한다면 그 당시 가오슝에는 출가자들이 많지 않아서 가오슝시불교회 회장 융도(隆道) 스님, 원형사(元亨寺) 주지 보묘(菩妙) 스님, 굉법사(宏法寺) 주지 개증(開證) 스님과 여러 곳의 비구니도량이 있었는데 모두들 서로 존중하며 돕고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전혀 질투하거나 장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부에서의 ‘사람간의 화목함’은 쉽사리 가질 수 없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유리함을 말한다면, 불광산 토지는 골짜기가 많고 또 깊었지만 땅값이 헐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골짜기를 메워서 평지로 만들면서 토양유실 방지작업을 철저하게 하면서 천천히 발전하였으니 시간적으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게으르지만 않으면 하루하루, 일년 일년을 천천히 건설하여서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의 경비조달도 그렇게 빠르지 못했기에 저는 시간을 벌면서 천천히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척박한 땅이라서 남들이 욕심을 내지도 않았으니 저는 ‘지리적인 유리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하늘의 때라 함은 바로 대만 남부의 날씨가 매년 9월부터 그 다음 해 4월까지 비가 오지 않고 우기는 단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남부는 봄과 겨울에 항상 햇살이 가득하고 비가 오지 않으니 신도들과 참배객들이 성지순례를 오기에 편합니다.

건설초기에 건축비용 조달의 어려움으로 공사를 계속할 수 없었지만 사중의 대중들은 “내일은 토요일이고 모레는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오면 불전이 들어오겠지?”라며 항상 신심을 가졌습니다. 50년의 세월은 아주 빠르게 흘러서 2016년은 불광산 50주년이 됩니다. 이 세월 속에서 하늘의 때와 지리적인 유리함과 사람간의 화목함, 이 모두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어찌 제가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빈승은 저를 낙관적인 성격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반 사람들은 누구나 남이 주는 것을 내가 받아야 기뻐하지만 사실 베푸는 것은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재산을 지니게 되면서 남한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식들 간에 재산 싸움이 되면서 사회에서조차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살아있을 때 분명하게 처리해 부모의 자애로움과 자식의 효심에 관한 미덕을 지켜나가도록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비록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소유하던 것들과 자신의 사업을 더욱 빛나게 하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한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사회 공익에 열심인 당신이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다면 자신도 즐거울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기쁨과 신심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희사금을 받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과 불법 두 가지 보시는 차별없이 평등하다(財法二施,等無差別)’는 것입니다. 주거나 받음에 있어서 서로 다 기쁘고, 모두 동일 신앙에 대한 성의와 공경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루어 내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애당초 저백사(褚柏思) 부부가 저에게 불광산이 척박한 땅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사람을 잘 찾아서 맡기셨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그분들은 아마도 천상세계에서든 인간세상에서든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입니다. 심지어 그분들이 다시 불광산에 오셔서 인연을 맺게 된다면 불광산 홍법사업을 맡아서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인연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미래에서 발전할 수 있어야 인간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생각인 것이고 가장 기뻐할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37호 / 2016년 3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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