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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가(Nāga) 또는 용

‘나가’는 성실한 신자와 공격적 동물의 양가적 모습 묘사

▲ 인도 산치 제1탑. 기원전 1세기경. 동쪽 토라나의 남쪽 기둥 안쪽 면에 조각된 우루벨라의 카샤파 일화. 카샤파의 사원 안에 불을 지키고 있는 독뱀 세부. 붓다가 이 뱀을 굴복시키자 불을 숭배하던 카샤파 일원들이 불법에 귀의한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뱀이나 용만큼 다양한 지역과 역사에 걸쳐 전설이나 신화의 주인공이 된 동물도 드믈 것이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동물은 힌두교와 불교 심지어 자이나교에서도 특정 신이나 인물의 전설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로 그려지며 조각과 건축에서 장식적인 요소로 많이 차용되고 있다. 현지인들은 여전히 이들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데, 뱀이나 용에 관한 신앙이 불교에서 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부족민들의 신앙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불교·힌두교와 자이나교에서도
특정 인물의 전설 만드는 역할

뱀·용 신앙은 불교서 시작 아닌
부족민들의 신앙에서 시작된 것

나가는 특정한 고유명사 아니고
뱀이나 코브라 뜻하는 일반명사

초기경전 속에서 묘사된 뱀들은
극복해야할 이질적 신앙 상징물

동아시아에서는 인도불교의 ‘나가(Nāga)’를 한문으로 흔히 ‘용(龍)’이라고 번역하지만 이는 중국적인 번안일 뿐이며, 굳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용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인도의 토양에서 나가는 현실세계의 뱀, 특히 코브라를 인격화하면서 그것의 특징을 강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가가 인도의 뱀 특히 코브라의 특징을 강조한 상상의(또는 현실의) 뱀이라는 것은 문헌적 단서로 보거나 또는 도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매우 이른 시기부터 코브라의 형상, 특히 목 부위를 팽창시키는 특징(후드)을 강조한 존재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불교적 맥락에서 ‘용’이라고 말할 때 이는 거의 인도적인 의미의 ‘나가’를 뜻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창안된 불교의 어떤 전통 속에서 이는 동아시아적 ‘용’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도상 속에서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불교 속의 나가 또는 용은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된다.

한편 나가는 어떤 특정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뱀 또는 코브라를 뜻하는 일반 명사다. 인도 종교문헌들 속에서 나가의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신화적 뱀들은 바수키나 세샤, 무찰린다, 마나사 등 외에 수많은 뱀신들이 존재한다.  

▲ 아잔타 19번 석굴 좌측 입구 쪽에 조각된 나가 조각상. 5세기 후반경.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지고 좌대에 앉아있는 나가.

나가는 인도 전체의 문화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양가적인 의미를 모두 보여준다. 다시 말해 맥락에 따라서 어떤 때는 해로운 동물이거나 이로운 동물, 또는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힌두교의 영웅신 크리슈나가 탄생한 후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야무나 강을 건너야했을 때, 폭우로부터 그를 지켜준 것은 나가 바수키(vāsukī)였다. 그러나 크리슈나가 소년이 되어 브린다반에 살 때 야무나 강에서 그가 정복해야할 대상은 나가 칼리야(kāliya)였다.

이러한 점은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교에서도 나가(용)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성실한 신자였다가 어떤 때는 공격적인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가장 우호적이고 극적인 나가의 모습은 무찰린다(또는 무칠린다)를 통해서 나타난다. 율장 ‘마하박가(Mahāvagga)’ 가운데에서 이 나가의 모습은 처음 등장한다. 석가모니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를 옮겨가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되짚으며 법열의 명상에 잠기곤 했다. 무찰린다(muchalinda) 나무 밑으로 옮겨왔을 때 비가 칠일 동안 쏟아졌고 그와 함께 추위와 폭풍이 계속되었다. 이 때 나무 밑에 살던 나가 무찰린다는 자신의 거주처에서 나와 붓다의 몸을 일곱 번 감아 그의 몸을 보호했다. 또한 자신의 거대한 어깨를 붓다의 머리 위로 뻗은 다음 우산과 같이 펼쳐서 그의 몸이 젖지 않도록 드리웠다. 그리고 어떤 폭우나 햇빛도, 먼지나 벌레들이 그를 방해하지 않기를 무찰린다는 간절히 기원했다. 칠일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날씨는 온화해졌다. 무찰린다는 붓다를 감았던 몸을 풀고 홀연히 뱀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젊은 바라문의 모습으로 변하여 붓다에게 합장했다. 그리고 붓다는 나가에게 간명하게 삶의 행복에 대해 설명한다.

이 신비하고 극적인 장면은 이후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나 ‘대사(Mahavastu)’ 등을 통해 더 문학적으로 각색된다.

하지만 나가의 모습이 항상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힌두신 크리슈나가 칼리야를 굴복시킨 경우처럼, 불교의 관점에서도 나가는 극복하고 조복받아야 할 어떤 대상이었다. 초기 불교 내에서 나가는 불교가 마주하고 극복해야할 어떤 이질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더 많이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藥事)’에 나타나는 나가 아파랄라(Apalāla, 無稻稈)가 그런 존재였다. 경전에 따르면 아파랄라는 본래 마가다에서 전생에 주술을 쓰던 바라문이었는데 폭우를 그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사람들이 비를 그치게 하는 그의 능력을 알고 거듭 폭우가 내릴 때마다 그에게 부탁을 했는데, 한 번은 번번이 주술 쓰는 것이 번거로워 폭우가 완전히 없어지도록 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계속 치르지 않았고 그에게 대가를 더 이상 치르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오래 흘렀기 때문에 폭우를 다시 내리게 하는 주술방법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은 그 주술사는 사대성문(四大聲聞)에게 공양하고 그 선행으로 다음 생애에 뱀왕으로 태어나 사람들을 괴롭히기로 결심한다. 그러한 서원 때문에 뱀왕으로 태어난 주술사는 폭우를 쏟아 부어 사람들의 생존을 괴롭게 만든다. 사람들이 먹을 모든 쌀을 비로 다 쓸어버렸기 때문에 그를 ‘아파랄라’라고 불렀다. 그러던 차에 붓다와 그의 호위무사 바즈라파니가 그의 용궁으로 찾아가자 아파랄라는 폭우와 흙을 쏟아 부으면서 붓다를 공격한다. 그러나 그의 공격을 향과 꽃으로 무력화시키고 붓다는 바즈라파니와 협공하여 아파랄라를 항복시킨다.

▲ 스리랑카 폴론나루와 유적지의 바타다게(Vatadage) 정면 출입 계단 좌측면에 새겨진 나가. 12세기경. 나가는 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연꽃대와 푸르나가타(pūrṇaghaṭa)를 들고 있다.

불경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표면상, 무찰린다와 아파랄라의 경우는 각각 불교에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나가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인물들의 신화적 각색은 한결같이 토착적이거나 비불교적인 신앙을 불교가 흡수하거나 조복시킨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신화적 단서들이다. 이것은 불교가 등장한 순간부터 불교와 수많은 토착신앙들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종교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무찰린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불을 숭배하는 고행자 카샤파(Kasyapa) 무리를 불교로 귀의시켰던 석가모니의 우루벨라(Uruvela) 일화에서도 이들의 사당을 지키는 것은 독뱀이었다. 붓다는 이 독뱀과 일전을 벌이고 그의 신통력으로 카샤파 무리를 조복받았다. 아파랄라의 경우와 같이 우루벨라에서도 붓다는 의도적으로 나가 신앙과 대면하고자 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준다.

불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뱀은 엘라파트라(Elapatra)다. 이 뱀은 전생에 계율을 어기고 나무를 부러뜨린 비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석가모니가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법을 듣고자 엘라파트라는 짐짓 고귀한 왕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설법장소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비구들이 시샘을 하는 가운데 그는 붓다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붓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본래 뱀의 본모습으로 참석하기를 요청한다. 자리에서 쫓겨난 엘라파트라는 본래의 뱀으로 나타나지만, 수많은 벌레가 사는 나무를 머리 위에 지고 나타나는 다소 흉측한 뱀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같이 비교적 초기 경전 속에 묘사된 뱀들은 다소 극복되거나 조복되어야하는 이질적 신앙의 상징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뱀 자체의 속성상 불법을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따라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 대승경전 등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용녀(龍女)의 변성성불(變性成佛)과정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불경에 전해지는 설화들 가운데 특히 위의 무찰린다와 아파랄라, 엘라파트라의 일화는 주된 불교 조각의 소재가 되었다. 초기 인도 불교조각 속에서 이러한 나가 설화의 조각상은 비교적 빈번하지만, 후대에는 내러티브가 생략된 채로 이 나가 조각들이 사원의 벽면장식이나 출입문의 장식에 주로 많이 활용되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형상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남아시아에서 특별히 무찰린다의 일화는 인도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이 조각된 것으로 보인다. 나가 무찰린다가 보여주는 호불(護佛)의 모습, 뱀이 붓다의 몸을 감싸고 머리 뒤쪽으로 후드를 펴서 불두를 마치 캐노피처럼 덮고 있는 모습은 무찰린다의 일화와 연관해 동남아시아의 불상 조각이나 벽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유행은 동남아시아의 토착적 뱀 숭배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동남아시아나 스리랑카 등지에서 뱀의 조상이 유행하게 된 것은 농사를 위한 치수(治水)와 관계있으며, 비와 물의 주관자로서 그리고 풍요의 상징물로서 뱀과 그에 대한 신앙이 더 소중하게 간주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흔히 인도 사원조각에서 풍요와 사원보호의 기능으로서 뱀을 조각하는 것처럼, 동남아시아에서 이 나가 조각상은 더 풍부하게 나타난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나가상은 초기 인도조각과 같이 특정한 내러티브를 갖는 패널 대신, 사원출입구 상인방의 린텔장식이나 벽감장식, 계단과 난간의 장식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37호 / 2016년 3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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