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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유순자 씨-상

기자명 법보신문

입시·가족기도였던 신행
심장이식 수술 뒤 변화
서툰 붓글씨 사경 시작

▲ 무간수·59
불교와 인연이 된 것은 대구에서 살 때였다. 영천 은해사에서 무비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불자의 삶을 출발했다. 남편의 직업이 군인이었던 터라 이사가 잦았기에 한 사찰을 오랫동안 다니기는 힘들었다. 가까운 절을 찾아 가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고 2002년 부산 해운대로 이사 오면서 지금의 대광명사 주지 목종 스님이 주지로 계셨던 반야원을 다니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많은 주부들처럼 아들의 입시를 위한, 가족을 위한 기도가 내 신행생활의 전부였다. 2005년 5월27일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친정아버지는 심장이 좋지 않으셨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절에 다닌다는 이유로 나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세포 변이가 일어나는 유전적인 결함이라고 했다. 심장을 감싸는 근육이 붓고 이로 인해 심장을 오가는 혈액 공급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를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 기계 하나를 몸 안에 달고 살다가 2007년 심장이식의 기회를 만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다시 돌이켜봐도 부처님 가피라고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식을 받는다고 해서 병원생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약을 먹어야 했고 일상생활 중에서도 평소보다 조금 더 무리하면 피로감이 곱절로 찾아왔다. 그런 몸으로 절이나 참선수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간간히 법당을 찾는 것이 신행생활의 전부이다시피 했던 내게 사경수행은 심장이식을 받고 1년이 지난 2008년 7월4일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도반으로부터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금가루로 쓰는 사경 책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툰 붓글씨로 그리다시피 한문 금니 사경을 겨우 완성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뭘 한 것인지 몸으로 마음으로 와 닿지 않았다. 의무감이 컸던 만큼 마지막 페이지까지 끝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뜻도 모르고 써내려 간 경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 사경수행과 인연을 맺는 소중한 씨앗이 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정년퇴임 후 두 사람의 건강도 추스를 겸 경북 경산으로 이사를 갔을 무렵이다. 그곳에서는 대구 대관음사 경산법당에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 무일 우학 스님이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에 들어가셨고 스님의 정진 기간 동안 사찰 신도들은 사경 명상수행을 시작했다. 덜컥 동참자로 신청은 했지만 등록하자마자 처음부터 붓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심장이식 후 눈이 많이 나빠져 사경을 위해서는 돋보기안경이 필요했고 건강도 좋지 않아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차일피일 사경수행을 미루던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은 마침 ‘법화경’ 공부를 하는 날이었다. 절에 가자마자 사경 책 21권을 구입해서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는 ‘부처님! 이 경을 사경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식사 후 주변 정리를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1시간 이상 날마다 사경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빨리 써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간에 관계없이 사경을 하게 되었고 어떤 날은 한참 사경을 하고 난 뒤 시계를 보면 2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기도 했다.


[1337호 / 2016년 3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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