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선운산 선운사-도솔암-천마봉-참당암

조선 후기 풍미한 백파·초의·추사 도솔천에 꽃을 던지다

▲ 선운사에 ‘봄 동백’이 피기 시작했다. 수줍게 핀 동백을 보고 싶다면 지금, 수령 500년 이상의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피워 낸 꽃을 보고 싶다면 4월 중순 이후 찾으시라.

수줍게 피었을 선운사 ‘봄 동백’과의 만남은 잠시 미뤄둔 채, 지난 밤 내내 달빛 머금은 오솔길 걷는다. 선운사 유명세 따라 선운산이 됐지만 이 불산의 원래 이름은 도솔산(兜率山)이었다. 미륵보살이 상주하는 내원(內院)과 천인들이 노니는 외원(外院)으로 짜여진 도솔천이니, 내원궁으로 향하는 이 산길 홀로 걷고 있으나 실은 천인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리라.

도솔암 옆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여명의 빛살을 받으며 황금색으로 나투고 있다. 새침해 보이는 미륵불이신데 어찌 보면 퉁명스러워 보여 달래주고 싶다. 정감 넘치는 마애불이었으니 이 곳 다녀간 사람들은 따듯한 위안 받았으리라. 작은 마당에 흩뿌려지는 나한들의 두런거림을 스쳐 지나 몇 개의 계단 오르니 아침 햇살 머금은 내원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소나무 아래 다소곳이 앉은 작은 전각이 소담스럽다. 굳이 문을 열어 보이지 않고도 미륵의 품을 온전히 내보여주는 도솔산 내원궁이다.

▲ 도솔암, 마애불, 내원궁이 자리한 도솔산 전경. 조선 후기 때까지만 해도 89개의 암자와 24개의 수도굴, 189개의 요사채를 품었던 산이다.

천마봉에 오르니 선운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산 오른 사람 누구나 ‘구름 속 선정에 든 선사’와 다름없다 해서 ‘선운산(禪雲山)’이라고 했지 싶다. 그 이름 걸맞게 절은 고승을 배출했다.

조선 화엄 대가 설파상언, 조선 선문 중흥주 백파긍선, 대율사 환응탄영, 근대불교 중흥 선구자 석전정호가 선운사를 기반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절 초입에 자리한 부도전이 절의 역사를 방증하고 있다. 그 부도밭에 ‘대기대용지비(大機大用之卑)’ 글씨가 새겨진 탑비가 있는데, 조선 후기 선가와 유가를 호령했던 백파긍선의 탑이다. ‘100년 선리 논쟁’을 일으킨 장본인기도 한 백파의 일화가 전하는 울림이 깊다.

선교에 남다른 일가견이 있던 백파는 후학을 위해 책 한 권을 썼다. ‘수행자가 손거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필요 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선전(禪典)’이란 뜻으로 ‘선문수경(禪文手鏡)’이라 했다. 선 공부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핵심 23개 항을 단편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 도솔암 내원궁에 아침햇살이 들었다.

그 중 3번째 항목서 중국 임제선사의 삼구(三句)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피력했다. 선승은 도반이나 제자들이 대전환(혹은 반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마디를 던지곤 하는데 일전어(一轉語)혹은 일구어(一句語)라고 한다. 이 일전어에 의심이 돈발되거나 깨닫는 경우가 많다. 임제선사의 삼구란 임제의 ‘세 전어’ 즉 ‘세 마디’다.

백파는 첫마디인 제1구서 깨닫는 게 조사선(祖師禪)이고, 제2구서 깨달으면 여래선(如來禪), 제3구서 깨달으면 의리선(義理禪)이라 규정했다. “의리선으로는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평도 빼놓지 않았다. 이른바 ‘백파의 3종선’인데 언뜻 보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수행 당사자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고, 깨달음을 향한 단계도 존재한다는 논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선지식이라 해도 체득한 경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당대 선가의 전율을 일으킬만한 강력한 신론(新論)이었다.

▲ 선운사서 도솔암으로 가는 산길이 호젓하다. 선운사 숲길은 여느 산사의 길과 달리 가마니를 길 위에 깔아놓았다.

백파의 새 이론에 초의 선사가 대항했다. 백파를 향해 “예전의 것을 고찰하지 않는 것은 불법(不法)이고, 제 멋대로 바꾸고 개종해 주장하는 것은 요즘 사람들의 병”이라며 날선 비판을 날린 초의는 네 가지 항목으로 ‘선문수경’에 담긴 23개 항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초의는 종래의 조사선과 여래선 즉 ‘2종선’에 힘을 실었다. “선문은 곧바로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므로 말로 해석해 의리를 나타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선종은 이선(二禪)의 우열을 따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백파가 말하는 의리선은 아예 필요치 않다는 강변이다. 초의가 펼친 선리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선사의 선리논쟁은 이후 홍기, 유형 등을 중심으로 한 후학들의 논쟁으로 이어져 100년간 지속됐다.

▲ 도솔암 오르는 길 옆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 전체 높이 15.5m, 불상 높이 12.23m, 보물제1200호.

백파를 향해 시위를 당긴 유학자가 있었다. 초의의 친구요 불교 조예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다. 백파에게 보낸 ‘백파망증 15조’라는 편지를 통해 백파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비판해 가는데 백파를 빗댄 비유가 가관이다. ‘철부지 어린애’ ‘하룻강아지’ ‘이것저것 모아 지껄이는’ 등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를 본 백파의 한마디가 걸작이다.

“반딧불 한마리가 수미산을 다 태우려 덤비는구나!”

세 사람 중 백파가 제일 먼저 입적에 들었는데 백파와 추사의 인연은 계속된다. 추사의 집에 중국서 보내 온 달마도가 걸려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본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백파를 닮았다’고 했다. 그 소문 들은 백파 문도들이 추사를 찾아가 그 사연 전하니 추사도 “나 역시 그렇다”며 달마도를 내 주었다. 백파가 머물렀던 구암사가 그 달마도를 백파의 진영으로 삼았는데 이 진영을 두고 추사는 다음과 같이 찬했다.

▲ 백파긍선을 필두로 선운사를 빛낸 대선사, 대강백의 탑이 안치된 부도탑.

“멀리서 보면 달마요, 가까이서 보면 백파다/ 외신 들고 서로 가니 보신으로 동에 나타나/ 차별이 있음으로써 둘이 아닌 문에 드니/ 흐르는 물은 지금이고 명월에는 전생이다.”

선운사 부도전 백파율사비 역시 추사가 비문을 짓고 썼다. 그는 ‘화엄종주 백파대사비 대기대용지비’라 쓴 추사는 “최근 우리나라에는 일종(一宗)의 율사도 없었으나, 백파만은 율사라 할 수 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은 80여년을 살아온 변모”라고 기록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은 깨달은 사람만이 누리고 활용한다는 대자유, 자유자재(自由自在)다. 논적(論敵)을 일컬어 “진정한 율사요, 도인”이었다고 추앙하는 추사의 품 또한 바다보다 깊어 보인다. ‘하룻강아지’와 ‘반딧불’ 두 고수가 남긴 전투흔적, 멋지지 않은가?

 
선운사 대웅전 동백 숲은 이제 막 새 생명을 틔워내고 있었다. 백파와 추사도 동백숲서 저 꽃을 보았을까? 붉은 꽃 핀다는 백파의 전언에 초의선사도 한 걸음에 달려왔지 싶다.

그런데, 백파와 추사 중 누구 논설이 맞나? 동국대 명예 교수 법산 스님(논문, ‘백파와 초의의 선리논쟁 연구’)은 두 선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백파는 수행자 입장서, 초의는 선지식 입장서 선을 논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선사들의 첨예한 논쟁이 그립다. 500년 동안 피어 난 동백향이 선운사 도량에 가득하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고창 선운산 관광안내소 주차장. 1km 걸으면 선운사다. 700m 걷다보면 도솔쉼터를 만난다. 도솔암, 참당암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참당계곡길 1.2km 지점에 참당암과 도솔암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있다.

낙조대서 40여미터 지점(소리재 이르기 전)에 용문골과 도솔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깝다. 선운산주차장 원점회귀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3시간30분.


이것만은 꼭!

 
선운사 대웅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대웅전을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었다. 보물 제290호.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 삼세불(보물 1752호)을 봉안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상: 이 지장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은 소장자들의 꿈에 나타나 “본래있던 고창 도솔산으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도난 2년만인 1938년 11월 선운사로 돌아왔다. 보물 제279호.

 

 

 

 

 
참당암 대웅전: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고려시대 건축 부재(部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간직하고 있다. 보물 제803호.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